기댈 곳 없는 당신에게

침묵과 따뜻함


어릴 적, 우리는 자연스럽게 어딘가 기대게 됩니다.

엄마의 무릎, 아빠의 어깨,

선생님의 손끝, 친구의 웃음.

기대면, 쓰다듬어주었고

기대면, 들어주었고

기대면, 잠시 울 수 있었죠.


우리는 모두 기댐과

누군가의 돌봄으로 살아낸 결과물 일 것입니다.


그런데 어른이 된 우리는

‘기댄다’는 말이 조심스럽습니다.

누군가에게 짐이 될까 봐,

아픈 이야기를 꺼내면 부담이 될까 봐,

“나는 괜찮아”를 당연히 말하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라도 잠깐만이라도 기대고 싶다고,

안아달라고 … 마음이 말할 때도 있는데 말이죠.


많은 내담자들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기댈 곳이 없어요.”

이 말은 상담이 꽤 진행된 이후에 다뤄지는 주제인 것도 같습니다. 자신의 외로움, 공허함을 인식하지 못했다가 상담을 하며 깨닫게 되는 것… 그동안 혼자 어떻게든 해오다가, 정말 더는 버틸 수 없음을 수용하게 되는 시점일 것입니다.


상담을 통해 자신의 말이 시작되면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터져 나오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그저 단순한 외로움 같았어요.

하지만 지금, 저는 그 말 안에

얼마나 많은 감정이 녹아 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기댈 곳이 없다는 건, 누군가에게 기대려다 미끄러진 적이 있다는 뜻이고 누군가에게 아프다고 말했는데

“나도 힘들어”라는 답만 들었던 적이 있다는 뜻이고 그래서 결국 ‘말해도 소용없다’는 체념 끝에 침묵을 선택한 시간들이 있었다는 뜻이니…


그게 아이든 청소년이든… 어른이든

그 과정이 어떠했을까요?


어쩌면 당신은

더 조심했고, 더 미뤘고, 더 견뎠을 겁니다. 마음속으로는 얼마나 수없이 기댈 틈을 찾았을까요. 하지만 현실의 엄마는 늘 피해자였고 늘 자신이 더 힘들다는 말을 먼저 꺼냈고 어느 순간, 기댐은 나를 더 무너뜨리는 일이구나 그렇게 믿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대고 싶었다는 건
이미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는 뜻이고
기댈 수 없었다는 건
그 힘듦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뜻


그러니 내 마음은 말합니다.

‘나는 혼자도 괜찮아 ‘


하지만 그 말속에는

사실은 정말 괜찮지 않다는,

기대고 싶지만 더는 실망하고 싶지 않다는,

안쓰럽고 조심스러운 마음이 담겨 있을 겁니다.


기댄다는 건, 누군가 내 무게를 조금이라도 받아주는 경험입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 나의 엄마는 언제나 자신이 더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어떨까요?


우리는 자연스럽게 ‘엄마’를 기대는 대상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늘 피해자로만 존재하면 그 아이는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다고 합니다.


‘내가 더 힘든 것 같아도,

엄마가 더 약해 보이니까 내가 참아야 해.’

‘내가 아프다고 하면

엄마는 더 아파질 테니까, 말하지 말자.’


무슨 이야기를 해도

(결국 또 엄마의 이야기로 끝나겠지)

그래서 침묵이 더 편해집니다.


기댈 곳 없는 침묵


이렇게 스스로 감정을 눌러야 했던

‘기댐’보다는 ‘스스로 해내는 삶’에 익숙해져 갑니다.

너무 일찍부터 스스로를 책임지게 된 아이는, ‘도움 요청’이라는 경험 자체가 낯설고 어색해집니다. 그렇게 성장한 어른은, 누구에게 감정을 기대는 일 자체가 마치 민폐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내가 아프다고 말하면 그 사람도 힘들 거야.’

‘그냥 나 혼자 감당하는 게 낫지.’

이런 생각들이 쌓여, 결국은 누구에게도 진짜 속마음을 보이지 못한 채 “나는 잘 지내요”라는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그저, 충분히 기대 볼 수 있는 누군가가 곁에 없었고 그 빈자리로 인해 지금도 기댄다는 건 어렵고 불안한 일로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기댈 곳이 없다는 건 기대의 감각을 잃어버렸다는 뜻인 것이다. 기대를 해본 적이 없거나, 기대는 건 늘 나를 더 아프게 만들었기에 그 감정을 아예 접어두고 살아왔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말하고 싶습니다.

기대는 것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어쩌면 심리상담의 경험은 ‘기댐’을 배워가는 공간입니다. 조금씩, 안전한 공간에서, 내 이야기를 꺼내고 누군가가 그 말을 가만히 들어주는 경험. 그것만으로도 ‘기댐’은 시작될 수 있습니다.


상담은 단지 조언을 듣는 시간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본질적인 일은, 어쩌면 누군가에게 마음을 기대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그 연습을 통해 진짜 혼자 살아내는 성숙의 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나를 판단하지 않는 눈빛,

정리되지 않은 말도 그대로 들어주는 태도,

잠시 멈춰도 기다려주는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조금씩 안심합니다.


어떤 내담자는 상담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무의식적으로 묻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은 나를 끝까지 들어줄까?”

“내가 이만큼 말하면, 실망하지 않을까?”

“이제 도망치지 않을까?”


상담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재양육의 경험이라고 합니다. 상담자는 부모처럼, 절대적인 이해자나 구원자가 아니지만 내담자에게는 잠시 “이해받을 수 있는 가능성” 그 자체가 됩니다.


그 가능성은 서서히 마음을 열게 하고,

천천히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하고, 마침내 “기대도 괜찮다” 는 감각을 만들어주게 되니까요.


“선생님, 제가 이런 사람이었네요.”

“누군가 저한테 이렇게

오래 집중해 주는 게 처음이에요.”

“힘든 이야기 하면 무너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더욱이 곁에 사람이 없을 때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일 때

내 마음을 터놓을 사람이 없을 때

외로움은 더 크게 느껴집니다.


누군가에게 기대어 울어도 되는 밤,

말없이 등을 토닥여주는 손,

“그동안 참았구나” 하고 알아봐 주는 시선.

그게 없었다면,

지금 이 글이라도 잠시 기대어도 좋습니다.


한 번쯤은 내 무게를 누군가가 받아줬으면,
말없이 등을 토닥여줬으면,
내가 미소 짓지 않아도 먼저 웃어줬으면,


혼자 살아내는 사람은 강해 보이지만,

사실은 무너지지 않기 위해 고립을 택한 사람일 수 있으니까요.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충분히 기대는 경험을 해본 사람만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안전한 내면기반’을 갖게 되고, 기대본 사람은, 언젠가 누군가에게 또 기댈 곳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기대는 행위는 개인을 위한 것이자, 서로 연결된 삶의 방식이라 생각합니다. 기댄다는 건 약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살아가게 하는 힘입니다. 혼자 버텨온 당신은, 잠시 기대어도 되는 사람입니다.


휴식과 충전이 필요한 보통 사람입니다.

기대는 것도 용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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