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을 삼키는 마음을 이해하며
누구는 너무 자주 사용하는 단어가 있다.
눈이 마주치면 나오고 헤어지며 건네는 인사처럼 자연스럽게 입 밖으로 나오는 말, “사랑해"
하지만 누군가는
그 짧은 단어를 뱉기까지 멈칫하게 되고
목 끝까지, 입술까지 나오다가 다시 삼켜버린다.
하기 싫은 것만은 아닌데
하지 못하고,
사랑이라 느끼는데도 표현하지 못한다.
같은 말을 두고도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건네고,
또 누군가는 마음속에서만 수없이 되뇌다가
결국 말하지 못한 채 흘려보낸다.
무슨 차이일까? 왜 그럴까?
쑥스러움?
그저 감정 표현이 서툴러서?
이런 단순한 이유는 아닌 듯하다. 그 짧은 단어 하나에 너무 많은 것이 얽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상대가 너무 소중해서
그 말을 쉽게 뱉고 싶지 않을 수 있다.
입 밖으로 내는 순간 가벼워질까 봐,
마치 그 말을 하는 순간 감정이 흩어질까 봐
세 글자를 꾹꾹 눌러 가슴에 간직한다.
사랑을 가볍게 소비하지 않겠다는 진중한 마음이 그 사람을 침묵하게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예전의 기억 때문에 그 말을 어렵게 여길 수 있다.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돌아온 상처,
진심을 꺼냈다가 무시당했던 기억,
한 번 표현한 마음이 거절당했던 장면,
등등이 ‘사랑해' 라는 말을 두려운 감정으로 덧칠해져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말하지 않는 사람은 종종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너무 깊어 꺼내는 순간
아프거나 잃을까 봐 두려워한다.
애정표현이 아니더라도
말로 하는 표현은 나를 드러내는 창이기도 하고,
관계를 이어주는 다리이기도 하다.
그 다리를 건너는 일은 누군가에게는 설렘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용기를 시험당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말하지 않으면, 결국 전해지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마음은 느끼는 것과 표현하는 것 사이에 언제나 간극을 가지고 있다. 그 간극을 메우는 일이 때로는 사랑하는 마음 자체보다 더 어렵다.
그런데 표현을 어려워하는 당신 옆에 그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꼭 존재하지 않는가? 그래서 그 관계에서 늘 시험당하는 듯한 숙제 같은 마음의 갈등을 겪을 수 있다.
그 상대는 왜 그럴까?
그에게는 “사랑해”라는 말 한마디가
그 사람에게는 관계의 온도계이고,
신뢰의 증명이고,
사랑받고 있다는 믿음의 기둥이 된다.
말을 듣고 싶다는 건, 사랑이라는 감정을 내 안에서만 갇혀있지 않도록, 당신도 그 감정 안에 함께 있다는 확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말이 뭐 그리 중요해?”라고 말하는 쪽과
“그 말 하나면 되는데…”라고 바라는 쪽 사이에는
애착의 방식과 정서 표현의 문법이 다르다.
그런데 그 다른 방식을 가진 둘은 서로 심리적으로 끌리는 기묘한 법칙과 같은 심리적 끌림이 있다. 끌렸다면, 그 관계를 유지하는 일은 서로의 방식을 이해해 보고, 변화해 보며 섞어질 때 건강하게 이어질 수 있다.
자주 말해주지 않는 부모,
사랑한다는 표현에 인색한 연인,
마음은 알지만 말로는 못 건네는 친구.
이들 사이의 갈등, 오해는 감정의 유무 때문이 아니다.
표현의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랑을 말하는 방법은 즉, 애정표현 유무는 타고나는 게 아닌 거 같다. 개인의 경험과 수용받아봄으로써 쌓이는 언어, 태도인 듯하다.
감정을 말했을 때 무시당하지 않았던 경험,
표현해도 괜찮았던 기억이
그 사람을 표현하는 사람으로 성장시킨다.
어릴 때부터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게 허락되지 않았던 사람은 자신의 감정 가치를 인정받은 경험이 부족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결국 그 단어가 안 나오는 건 결국 내 감정과 경험의 문제인 거 같다. 내 마음의 무게를 내가 얼마나 인정하고 있는지 두드려보면 좋겠다.
못하는 게 아니다.
아직 준비되지 않았을 뿐이다.
잘못된 게 아니라, 안전한 경험이 부족했을 뿐이다.
사랑이라고 말하는 대신,
행동으로 배우고 그렇게 해 왔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 감정이 너무 크거나,
그 말을 꺼내는 순간
내가 더 취약해질까 봐,
상대가 거절할까 봐,
그 말이 가볍게 흘러갈까 봐,
너무 조심스럽고,
소중하고 혹은
너무 무서워서일 수도 있다.
그러니, 한 번쯤은 그 마음을 두드려보자.
왜 나는 그 말을 어렵게 느끼는지,
왜 그 말을 듣고 싶다고 느끼는지,
왜 그 말이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지.
사랑을 말하기 전에
사랑을 느끼는 나 자신을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
그 감정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마음을 존중하는 일이 먼저인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그 말이 더는 무겁지 않고,
오히려 나를 더 살아있음을 느끼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까지, 말하지 못한 사랑을 조심스럽게 품은 자신을 당연시하거나, 정당하다고 우기는 일은 멈추었으면 좋겠다. 표현을 하지 않아도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얼마나 어리고, 누군가에게 기대하려는 약간은 미숙한 마음인지.... 언젠가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당신의 진심 어린 마음이 언어라는 흐름을 타고
조용히 흘러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