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융의 그림자 작업을 통해 나의 분노와 혐오감의 기원과 마주하기
"네가 나랑 같은 실수를 안 했으면 해서 그래.
내 커리어를 망친 게 실수란 얘기야."
영화 <블랙 스완>에서 주인공 니나는 정신 상태가 점점 불안정해져 가던 중 엄마와 대화를 하게 됩니다. 엄마는 발레리나로서의 과거에 실패한 자신의 경력에 대해 니나에게 이야기하는데요. 이 장면에서 어머니의 기대와 억압된 욕망, 두려움에서 비롯된 니나의 그림자의 뿌리가 드러나게 됩니다.
과거의 상처와 억압에 얽매여 개인의 성장 여정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너무 슬픈 일이겠죠. 한 심리학자의 '그림자' 개념을 이해함으로써 지금 현재를 좀 더 진실하고 성취감 있게 살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요?
모든 내용을 이해하기에는 두껍고, 어려웠지만 그 와중에도 제 시선을 사로잡은 몇몇 문장들이 있어 공유해 봅니다.
사람들은 우선 행동을 하지만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거기에 대해 숙고해 보는 것이다.
이렇게 결실 없는 토론을 할 적마다 아버지와 나는 화를 냈으며, 결국 두 사람 다 특유의 열등감을 안은 채 물러서고 말았다. 신학은 아버지와 나 사이를 멀어지게 했다. 나는 그것을 다시 한번 숙명적인 패배로 여겼지만 그렇다고 물론 고독감에 빠지지는 않았다. 나는 아버지가 자신의 운명에 꼼짝없이 매여 있음을 어렴풋이 예감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외로웠고 함께 대화를 나눌 친구도 없었다. 적어도 우리 주변에는 구원의 말을 해줄 만큼 신뢰가 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자기반성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러하듯이, 나는 처음에는 인격의 이분화를 당연히 나 개인의 문제이며 책임으로 여겼다. 파우스트가 “아, 내 가슴에 두 영혼이 살고 있다”라고 나에게 구원과도 같은 말을 하긴 했지만, 그런 이분성의 원인을 규명해주지는 않았다. 파우스트의 통찰은 바로 나의 경우에 맞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충분한 이유로 자극을 받아 더 넓은 곳을 향해 자기 자신의 발로 걸어가겠다고 마음먹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에게 제공된 온갖 껍데기, 형식, 울타리, 생활방식, 분위기에서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홀로 걸어갈 것이며 동반자는 자기 자신밖에 없다. 그 자신이 여러 가지 의견과 경향으로 이루어진 다양성 그 자체인 셈이다.
그런데 이런 경향들이 반드시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자신의 다양성을 공동행동으로 통합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그가 외부적으로는 중간단계의 사회체제로 보호받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는 아직 내적 다양성에 대해 자신을 보호할 수는 없다. 내적 다양성은 그를 자기 자신과 불화하게 하고 외부세계와의 동일성에서 옆길로 빠지게 만든다.
고독이란 주변에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을 전할 수 없거나 자기는 가치 있다고 여기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황당무계한 것으로 간주될 때 생기는 법이다. 나의 고독은 어릴 적 꿈의 체험과 함께 시작되었고, 내가 무의식에 대한 연구를 할 시기에 최고조에 달했다.
책 안의 용어 해설 내용에 따르면, 그림자란 의식의 빛 가운데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빛을 피하는 속성이 있다고 합니다. 자기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싫은 부분으로, 의식적으로 밝고 선한 것을 내세우는 사람들일수록 그 내면의 그림자는 더욱 짙어지기 쉽다고 해요. 겉으로 완벽해 보이는 사람이 의외로 엉뚱한 사고를 치는 경향도 여기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그동안의 스스로를 돌아보며 '나의 그림자의 농도는 어떠한가'를 생각해 봅니다.
한편, 이 '그림자'라는 것은 전적으로 부정적이고 부도덕한 것만은 아니며, 의식의 빛 가운데 드러나기만 하면, 다시 말해 자기에게 그늘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자기의 일부로 받아들이면, 그늘도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기능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지금 이렇게 그림자를 마주하기 위해 글을 열심히 읽고 있을 여러분에게도 또 저에게도 그림자를 내면의 성장의 윤활제로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이죠.
일본의 철학가이자, 전략 컨설턴트인 야마구치 슈는 <독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에서 강한 분노나 혐오감은 자신 안의 어떤 아픔을 가리키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지금까지 인생에서 가장 큰 분노를 느꼈던 경험을 한 번 떠올려보고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잠시 생각해 볼까요. 작가는 아마도 그 배경에는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것이 유린당했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일상에서 마주하는 긍정적인 감정뿐만 아니라 강한 반감이나 혐오감을 떠올릴 때도 메모해 두면, 나중에 여러 가지 깨달음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이죠.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할 때 우리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무언가를 찾아내 미워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내면에 없는 것이라면 우리를 흥분시키지 않을 테니까.
- 헤르만 헤세, <데미안>
부정적 감정을 강하게 느꼈던 순간들을 떠올려봅니다. 구체적이지 않고 막연하게만 느껴지는, 여러 짧은 단편적 상황들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 경험들과 관련 있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 있는지도 곰곰 생각해 봅니다. 잠깐 멍하니 있었을 뿐인데 정말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갑니다. 게다가 이 생각들을 어떻게 언어로 구체화할지도 막막하고요. 조금은 구체적인 상황을 떠올리는 데 도움을 얻고자 영문으로 된 기사를 하나 찾았습니다.
https://www.purewow.com/wellness/shadow-work-prompts
이 기사에서는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을 부끄러워하는지, 또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우리 자신의 어떤 부분을 감추는지를 묻는 것과 같이 그림자와 마주하는 것을 돕기 위한 30가지 질문을 제공합니다. 몇 가지 질문 중에 지금 가장 시선을 끈 것은 '4. 내가 반복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가족 패턴은 무엇인가요?'입니다. 저는 이 질문부터 시작해보려 해요. 내 안에 빛을 피하고 있는 그림자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서요.
나다운 삶, 좀 더 진실하고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이 여러분의 올해의 계획 중 하나라면 이 기사에서 제안하는 30개의 질문에 천천히 답해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