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1. 사랑에도 훈련이 필요하다는데

도시 여성의 로맨스에 대하여

by 김바리



밀당이 없는 사람의 연애란 어떠한가. 그것은 마치 눈앞의 끝없이 펼쳐진 직선 도로와 같다. 경치는 명확하나 예상외의 회전이나 굽이가 없다. 솔직한 표현이 주는 안도감에 취해 유효기간이 영원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함께하는 시간이 투자이길 바라는 소망으로 도로를 달리다 보면 어느새 나는 길 없는 도로 끝에 홀로 서 있다.


인간은 학습의 동물이 아니던가. 또한 생존의 동물이 아니던가. 그렇기에 조금 덜 아파하고 조금 더 오래 살아남기 위해 언젠가부터 ‘회피’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귀여니 소설을 보고 자란 판타지 로맨스 덕후의 기질은 쉽게 감출 수 없었다. 연애를 할수록 '사랑'에 대한 의문은 커지고, 이별 경력자답게 회피 스킬은 점점 늘어만 갔다.


사랑이란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감정이다. 그 복잡성을 이해하려면, 사랑에 대한 다양한 경험과 시각을 살펴보아야 한다. 작은 시골에서 매일 비슷한 사람들과 부대끼던 일상에서 벗어나 눈을 뜨고 문 밖을 나서면 언제나 새로운 것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것이 신기했고 그렇기에 그들의 호감에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그렇게 누군가와 쉽게 가까워지고 쉽게 멀어지는 경험을 몇 번 반복하고 나니 내면의 공허감이라는 그릇의 크기는 점점 더 크고 깊어졌다. 어렸을 땐 사랑이란 단순한 게임처럼 느껴졌다. 그렇다면 왜 이제는 그렇게 복잡한 것이 되었을까?


‘혼란형 애착’이라는 용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20대에 쌓인 연애 경력을 통해 내가 얻은 대면 스킬의 이름을 정의 내리자면 이와 같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는 건 내게 쾌락이자 고통이었다. 끊임없이 누군가의 사랑을 갈구했지만, 동시에 그 누구의 사랑도 믿을 수 없었다.


한편 도시의 바쁜 삶은 혼자라도 충분히 살만하다는 착각을 준다. 외로움의 체취를 분주함이라는 향으로 덮어버릴 수 있다. 때때로 ‘이것은 무엇을 위한 분주함인가’라는 다소 철학적인 물음이 찾아올 때면 합법적인 정신 교란 수단들로 잽싸게 그러한 생각을 덮어버린다.


짝 없는 외로움이 주는 불편함을 빠르게 해소할 수 있는 이 도시의 삶은 나쁘지 않다. 쉽게 잠들지 않는 도시에서는 연애도, 우정도, 취미도, 쾌락도 쉽게 누릴 수 있다. 데이팅 앱을 몇 개 설치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사람을 만나본다.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 배우고 싶었던 악기 수업, 마시고 싶고 피우고 싶고 즐기고 싶은 그 무언가가 도보로 몇 분 거리에 넘쳐 난다.


선택지가 많다는 것과 이것이 일시적이라는 것은 혜택이자 고통이다. 새로운 자극과 경험과 실망과 기쁨이 거듭될수록 ‘이다음에 또 무언가가 있겠지'라는 희망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기대치는 점점 높아만 가고, 이것은 관계에 있어서도 비슷하게 이어진다. 내가 나다운 모습으로 누군가를 대하기보다 다음에는 조금 덜 아파하기 위해 손을 내밀 때 잠시 기다렸다 맞잡고, 밀어냈을 때 아무렇지 않은 척 방향을 바꿔 걸어본다.


사랑에 대한 접근 방식이 건강하다고 볼 수 있을지 의견은 분분할 것이나, 결국 '잘 먹고 잘 살기'위함이다. 이를 위해 돈이 되는 일을 해야 하고 돈이 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의 삶과 부대껴야 하고 이런 부대낌만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나를 즐겁게 해주는 것이 ‘확실한’ 수단을 택할 것인지, 나를 괴롭힐지 모르는 불확실한 것을 선택할 것인지는 답이 너무 빤히 보이는 문제이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에도 훈련이 필요한다고 말한다. 사랑은 훈련과 인내와 습득이 필요한 능력으로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의 생각에 어느 정도는 동의하지만, 색채 없는 차가운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써야 할 에너지가 너무 많다. 끝이 없는 모험의 무인도에서 한 사람의 고통을 줄여주는 '망각'과 '회피'의 씨앗이 불확실한 '사랑'의 열매보다 생존에 더 유용할지도 모른다. 자신마저 사랑하는 것이 어려운 세상에서,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쉽지 않은 도전이자 모험이다.


확실한 쾌락과 불확실한 행복의 카드. 어떤 쪽을 집었든 선택에는 분명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이렇게 된 이상, 다시 본질적인 질문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렇다면 나는 왜 아직도 누군가를 사랑하려 하는 걸까?’.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사랑을 통해 우리는 다른 사람과 깊은 연결을 맺을 수 있고, 그것은 인생의 비밀을 알아가는 방법이다. 나는 누군가와 깊이 연결하고자 하는가? 그 사람이 나에게 깊숙이 다가오도록 허락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사랑에는 명확한 답이나 해법이 없다. 그것은 항상 변화하며, 각자의 경험과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과거의 직접적이고 순수했던 사랑의 방식을 다시 되찾고 싶은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우리 삶의 중심에 있으며, 사랑이 변화하고 진화할지라도 그 본질은 우리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그것을 깊이 이해하고 진정으로 경험하는 것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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