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안 고닉, ≪짝 없는 여자와 도시≫속 한 단락
엄마는 웃으며 말한다.
“요사이 알게 됐는데 화를 안 내니까 화낼 때보다 생각이 더 많아져. 인생이 재밌어지는 거지.”
- 비비안 고닉, ≪짝 없는 여자와 도시≫ (글항아리, 2023)
어느 게 먼저인지는 모르겠다. 화를 덜 내기 시작하면서 생각이 많아진 것인지, 생각이 많아지면서 화를 덜 내기 시작한 것인지.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 생각의 실타래를 새로 펼치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작된 생각의 뜨개는 어느 때는 기둥코만 세웠는데도 이해하게 될 때도 있고, 어느 때는 네모 뜨기를 완성했는데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 뭔가를 더 꿰어야 할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러나 더 꿰는 방법을 몰라 별안간 허둥댄다.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이 지나고 나면, 뭔가를 더 덧대려고 하는 건 사실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누군가의 마음을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단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시간’이다. 니트를 완성하지도, 장갑을 만들지도 못했을지라도 네모 뜨기만큼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한 뼘의 이해의 틈이, 한 피치 낮은 감정의 틈이 생긴다. 화가 나지만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나 스스로에게 더 많은, 인생이 재미있어지는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 되는 것이다.
얼마 전 활동하는 커뮤니티에서 에디터로서 행사 참여자를 인터뷰할 일이 있었다. 서로 포용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가 있다면 제안해 달라는 질문에 해주신 답변이 참 인상적이었다.
“모든 사람이 서로 다르며, 그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어울려야 합니다. 부모와 자식,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상황을 이해하고 여유를 주면, 말투가 달라지고 그로 인해 관계도 좋아질 거예요. 이러한 가치를 받아들이고 서로에게 말을 건네기 전 1~2초만 여유를 두는 환경을 조성하면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 가야금 연주가 박경소 님 인터뷰 중
내 생각과 다른 상황을 마주했을 때 나는 주로 북받쳐 오르는 감정에 못 이겨 자리를 뜨거나 때로는 화를 그대로 표현하곤 했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표현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차츰 알아가게 되었다. 그동안 이것을 성찰하는 데 ‘나 위주'의 사고를 해왔다. 그런데 ‘사회' 안의 맥락에서 나를 주인공으로 두는 게 아닌, ‘상대방', ‘모든 사람'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순간, 생각의 그릇이 더 커지는 것 같았다. 같은 물을 담아 흔들었을 때 입구가 좁은 컵에 담긴 물과 입구가 넓은 그릇 속 물의 출렁거림은 다르다. 나의 깨달음은 이와 닮아있다.
불편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내 감정을 위주로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더 넓은 대의명분의 관점에서 지금 이 상황을 지켜보는 마음의 여유, 잠시 멈춤의 시간을 가지고 싶다.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지향점을 위해 마련하는 1~2초의 시간. 그 시간이 나에게는 더더욱 필요하다. 훈련이 많이 필요한 일일 테지. 그렇지만 방향을 알았으니 훈련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딱 머릿속에서 하나의 네모를 뜰만큼, 그만큼 타래를 엮어보는 것이다.
*아침글쓰기챌린지 5/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