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좋은 것을 골라내는 사람≫속 한 단락
미스터포터에서는 콘텐츠를 제작할 때 세 단어를 늘 염두에 둡니다.
정보를 알리고 (inform), 마음을 움직이고 (inspire), 보는 사람을 즐겁게 (entertain) 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에디터가 이루고자 하는 바와 같을 겁니다.
- REFERENCE by B, ≪잡스 에디터 :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좋은 것을 골라내는 사람≫ (매거진 B, 2019)
나의 업(業)의 형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여러 갈래로 변화해 왔다. 처음엔 스마트 TV 광고 개발자였다가, (잠깐이었지만) 독립 영화 스태프였다가, 영상 편집자, PD, 콘텐츠 기획자, 콘텐츠 매니저. ‘시청각 미디어'라는 매체를 중심으로 그것을 기획하고 제작하고 배포하는 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관여를 해왔다. 누군가가 “직업이 어떻게 되세요?”라고 물어오는 것보다 “무슨 일을 하세요?”라는 질문을 해주는 것이 스스로 답을 하기도 더 편했다.
‘경험을 해봐야 안다'는 것은 나의 경력의 모양을 만드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막연히 영상이 좋아서 현장에 뛰어들었지만 생각보다 내가 현장 타입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의도한 대로 카메라에 담는다는 것이 (특히 그 역할의 메인이 된다는 것이)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것을 경험하고서는 점점 더 촬영 현장 스태프보다는 기획이나 편집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그렇게 되면서 트렌드를 조사하고 글을 쓰고, 수정하고, 영상 위에 글을 올리면서 흐름을 생각하고, 맞춤법을 확인하고, 강조할 부분을 고려하는 작업의 빈도가 늘어나면서 굳이 열심히 이론적인 공부를 하지 않아도 경험의 수 덕분인지 어떤 주제에 대해 내 생각을 글로 쓰고 전문가의 의견을 덧대고 구성을 검토하고 맞춤법을 확인하고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한 번 더 검토하는 이 일련의 창작 프로세스가 굉장히 ‘익숙’해졌다.
여러 번의 경험을 반복한 끝에 알게 된 창작에 관한 몇 가지 사실이 있다. 첫째로, 창조성은 신의 계시를 내려받는 것과 같은 극적 경험이 아니라는 것이다. 창작하기 위해서는 다른 모든 영역과 마찬가지로 노력과 끈기를 요구한다. 멋진 결과물을 만들겠다는 의지만으로는 금세 고갈되고 마는 것이 창조성이 아닌가 싶다. 두 번째로, 창작의 실력은 (대체로) 천부적 재능이 아니라 오랜 기간의 노력과 실험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성공한 창작자를 대할 때 우리는 그를 내가 노력해도 이를 수 없는 어떤 대상으로 구별 짓기 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창작에 투여했는지 눈으로 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스토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언론이 그들의 삶을 극적으로 편집해서 내보내기 때문에도 그렇다. 세 번째로 모든 창작물은 레퍼런스의 짜깁기라는 것이다. 완전히 0에서 시작한 창작물은 없다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정말 참신한 예술 작품을 보아도 작가가 그것을 창작해 내는 과정에서 소위 칼 융이 말하는 ‘집단적 무의식’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이다. 만드는 창작물이 시청각 형태를 띠든, 활자의 형태를 띠든, 우리는 이전에 누군가가 해왔던 이야기를 어느 정도 계속 반복하게 된다. 왜냐하면 살아가는 양태는 시대에 따라 변할지라도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는 생애 주기와 느끼는 감정의 모양은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신화와 종교와 철학이 오랜 기간 사람들의 곁에 머물러 있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이야기의 ‘원형'은 변하지 않는다.
에디터이자 크리에이터로서 창작물을 세상에 내놓을 때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결과물은 무엇일까.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더 중요해진 능력은 같은 이야기를 하지만 좀 더 나에게 딱 맞는 정보를 주고(맞춤화), 그 방식이 단순히 사실 전달이 아니라 보는 사람,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고(스토리), 즐겁게 해 주어야 (유머, 깨달음, 감동 등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요소) 하는 것 아닐까.
그러나 모든 창작자가 동의할 것이다. 말로는 비교적 쉽지만, 언제나 의도한 것과 실제 결과물은 꽤 달라져 있다는 것을. 그런 결과의 불확실성까지 염두에 두고 끊임없이 만들어가는 것만이 창작자에게 필요한 진정한 역량이자 고려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불확실성의 확실성(uncertainty). 콘텐츠를 제작할 때 꼭 필요한 네 번째 단어가 아닐까.
*아침 글쓰기 챌린지 6/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