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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잡이가 전해준 깨달음

러셀 브런슨, ≪브랜드 설계자≫ (윌북, 2023) 중 한 단락

by 김바리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구매하지 않는다. 감정에 기반하여 구매한다. 그런 다음 논리를 사용하여 이미 내린 구매 결정을 정당화한다.

- 러셀 브런슨, ≪브랜드 설계자≫ (윌북, 2023)



에피파니란 무언가를 갑자기 이해하고 있다고 느끼거나, 갑자기 의식하게 되는 순간, 즉 번개처럼 떠오르는 통찰이나 깨달음을 의미한다 (캠브리지 영어 사전 참고). 러셀은 이러한 깨달음은 항상 ‘길잡이’를 통해 얻게 된다며, 이는 사람일 수도 있고 또한 신의 모습을 하고 나타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하려고 할 때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이런 에피파니 스토리 없이 논리적인 설득으로만 상품을 팔려고 할 때라고 말한다.


나와 달리 에피파니를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들에겐 논리적인 설득, 전문 용어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논리가 필요하지만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한다. 당신의 논리에 상대가 흥미를 보이기 전이라면 우선 감정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에피파니 브리지이다. 어떻게 큰 깨달음을 얻었는지 이야기하고 또 이 이야기를 올바르게 구조화한다면, 잠재고객들도 똑같은 깨달음을 얻을 테고 당신은 고객에게 상품이나 서비스를 팔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잠재 고객에게 제시하는 새로운 기회와 관련해 스스로에게 해야 할 첫 질문은 이것이다.


내가 이야기하는 스토리에서 길잡이가 전해준 깨달음은 무엇인가?





내 감정의 길잡이 : A과장님과 심리학


여유가 없는 시골에서 자랐기에 방과 후 활동이나 학원은 고사하고, 보수적인 두 부모님의 양육 방식으로 해가 지기 전에 집에 들어와 있어야만 했다. 그렇기에 고등학교에 들어가 기숙사 생활을 하기 전까지는 부모님과 집에서 정말 많은 시간을 보냈다. 경제적인 문제로 부모님이 다투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두 분은 상대에게 느끼는 불만을 표현하는 각자의 방식이 있었다. 가까이에서 그들의 감정 표현 방법을 목도하며 불편함을 느꼈지만 피할 수 있는 곳이라고는 학교 밖 놀이터, 오락실, 피시방 같은 곳뿐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불편한 상황에 부딪히면 나 또한 부모님의 방식대로 분노하거나 회피하기 일쑤였다.


유년 시절, 이러한 감정 표현법이 올바르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몇 번의 인간관계가 있었지만 그럭저럭 어떻게 나만의 벽을 쌓아 내가 초대하고 싶은 사람만을 초대하며 살아갔다. 하지만 더 넓은 세계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는 사람들에게 질투를 느끼는 내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나도 그들과 같아지고 싶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될 수 없다고 체념하고 좌절해 왔었다.


새로운 세계를 탐구하고 싶은 마음은 본능인 것인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김제에서 전주로, 전주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프랑스로, 그렇게 나를 두는 환경을 바꿔보고, 학교 바깥에서 만나는 새로운 인연에도 호기심을 가졌다. 그러나 번번이 나는 화를 느꼈고 슬픔을 느꼈고 그럴 때마다 피할 수 있으면 피했으며 그렇지 못하면 분노를 했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A 과장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한 번은 그가 나를 집까지 바래다준 적이 있다. 연립 빌라들이 옹기종기 늘어선 비좁은 골목가에 차를 대느라 동네 주민과 약간의 시비가 있었다. ‘저렇게 화를 낼 일인가’싶을 정도로 주민 분은 과장님에게 고성을 지르며 험한 말을 연신 내뱉었다. 금방이라도 몸싸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때 과장님이 보인 태도가 놀라웠다. 화를 내는 그분의 이야기를 인내심있게 들어주며 두 어깨를 가만히 감싸고는 “그러셨군요, 기분이 나쁘셨겠어요, 어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그분의 집 쪽으로 인도를 하는 것이 아닌가.


이후로 ‘나라면 화가 날 거야'라고 생각한 상황에서 여러 번, A과장님은 침착함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일을 할 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때마다 침착하게 상대의 말을

경청하며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이 사람처럼 화를 내고 싶다’, 아니, ‘이 사람처럼 감정을 표현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방법을 몰랐다. 그렇게 시간이 계속 흘렀고, 매번 과장님에게 감정을 어떻게 조절하는지 사람 간의 관계에서 어떻게 처세를 하는지 물어볼 수는 없었다. 운이 좋게도, 이후에 내가 하는 일 덕분에 ‘심리상담'과 ‘심리학', ‘마음 챙김'에 가까워질 수 있었고, 브랜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감정 관리와 관련된 많은 책을 읽었다.


아직 모든 개념이 내 머릿속에서 구조화된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 나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은, 나의 감정을 잘 돌보기 위해서는 나의 감정을 비롯하여 세계와도 적당한 경계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 그리고 감정을 표현할 때는 상대를 추궁하거나 책망하는 화법이 아닌, 내가 느끼는 감정을 말하는 ‘나 전달법’을 활용하여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 ‘슬픔', ‘우울', ‘분노'라는 감정은 나쁜 게 아니라는 것, 그것을 느낄 수 있지만 반드시 그 형태 그대로 외부에 표출할 필요는 없다는 것 (그것이 부적절하다고 느껴지는 상황이 많기 때문에), 그리고, 감정에 있어 관계에 있어 진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적은 이 모든 교훈은 노력을 통해 배울 수 있다는 것. 그렇기 위해는 불편함을 피하지 않고 마주해야 한다는 것.


나의 감정의 길잡이가 준 깨달음이 내일의 나를 조금 더 성장시켜 줄 것이라 믿으며, 오늘도 약간의 불편함을 마주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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