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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사 믿지는 않더라도) 멋진 미래를 상상하라

스콧 애덤스, ≪더 시스템≫ (배리북, 2020) 속 한 단락

by 김바리

나는 실패를 불러들인다. 실패를 견뎌 낸다. 실패가 지닌 가치를 인정한다. 그러고 나서 실패에서 배울 점을 뽑아먹는다.

- 스콧 애덤스, ≪더 시스템≫ (배리북, 2020)




이 책을 처음 손에 든 것은 아마도 누군가의 책에서 인용된 것을 보고 가지 뻗기 식으로 읽어보려 했거나, 어떤 매체를 통해 소개되어 궁금하여 사본 것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어떤 책에 푹 빠지고 나서야 이 책을 왜 사게 되었는지 곰곰 생각해 보지만, 매번 까먹고 만다. 저만 그런가요?). 이 책 또한 코로나 팬데믹이 극심할 때 즈음에 사서 보게 된 책이자, 그 시기에 나에게 절실히 필요했던 이야기를 해 준 몇 권의 책 중 하나이다. 이 책은 내가 인생의 과업들을 바라보는 관점을 단숨에 바꿔주었기 때문이다.


예전보다야 실패에 관용적인 분위기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실패를 바라보는 사회의 인식은 부정적이다.라고 말하지만 어쩌면 나부터가 실패를 여전히 부정적인 이미지로 바라봐 왔는지도 모른다. ‘거의 모든 일에서 실패하던 자가 결국 큰 성공을 이루어낸 방법'이라니. 표지에 적힌 카피만 봐도 책을 펼쳐보지 않을 수 없으리라.


20대 후반에 번아웃이라고 말하기는 조금 거창하고, 몸과 마음이 급격하게 안 좋아진 시기가 있었다. 요즘 많이 언급되는 단어로 표현하자면 ‘공허함' 비슷한 것이 찾아왔던 것 같다. 일은 점점 바쁘고 그것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상당한데 이 일을 내가 왜 하고 있는지, 그리고 3년 후, 5년 후 이 일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전혀 그려지지 않고 기대되지도 않는 그런 상황. 그 당시 내가 매일 하던 생각은 ‘더 이상 목표가 없다'와 ‘30대 이후에 나는 왜 살아야 할까’였다.


당시만 해도 기업에서는 공채로 신입을 채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대학에 들어가고, 스펙을 쌓고, 공채에 합격하는 것이 내 주변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따르는 단계별 목표였다. 그 사이에 나는 교환학생이라든지, 학교 졸업 프로젝트라든지 개인적 목표를 추가하여 하나씩 달성해 나갔고, 그 하나하나가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조금은 특별한 이벤트가 되어 때로는 좌절감, 때로는 성취감을 주었다.


그런데 직장에 들어오고부터는 매일이 비슷했다. 다른 거라고는 내 마음 건강의 온도, 내가 받는 스트레스의 크기, 회색 공간에서 느끼는 이름 모를 외로움의 무게와 같은 것이었다. 회사 밖으로 나가 새로운 걸 시도하고 싶어도 대부분의 생활이 회사 안에서 해결이 되었고, 그것을 ‘편안함'이라는 것으로 포장해 용기를 내지 않는 매일매일이 켜켜이 쌓여갔다.


책을 읽으며 나의 20대와 30대를 계속 비교해 보게 되었다. 나이대로 나누니 무언가 ‘어렸을 땐 이랬는데, 나이를 먹으니 이렇게 되었어요'라는 기준 같지만 사실 대기업 생활과 스타트업 생활의 구분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두 환경에서 가장 큰 차이라고 하면 단연 ‘실패를 대하는 태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대기업 신입일 당시 속해있던 부서에서 신규 서비스를 개발하고 임원진에게 데모 시연을 하는 이벤트가 가끔 있었다. 그리고 매년 말, 새해에는 새로 나오는 하드웨어를 선보이는 행사 준비에 소프트웨어 개발, 마케팅, 기획 등 여러 부서가 매진하였다. 인력도 예산도 리소스도 어마어마하게 들어가는 프로젝트 들이었기에 작은 실수도 허락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다 (최소한 신입인 나의 시선으로는 그렇게 느꼈다). 그렇기에 하나의 프로젝트가 잘못되면 누군가를 문책하고 조용히 서비스가 사라지고 몇 번 반복하면 부서가 사라지고 누군가는 하루아침에 다른 부서로 전배를 가는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마치 사람이, 하나의 기계 부품처럼 느껴졌다. 분명 내로라하는 복지 환경을 제공해 줌에도 이상하게 차갑고 회색빛이 났다.


본성이 지는 것을 싫어하는 성향이었지만, 경직된 조직에서 보고 듣는 것들을 통해 실패를 더 두려워하고 실수하면 어떻게 될까, 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 모든 게 어려운 신입이었고, 내가 하는 일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도, 내가 가장 잘하는 일도 아니었다. 그런 환경에서 실패를 하지 말자는 마음가짐으로 조용히 지내다, 빠르게 변화하는 것이 당연한 조직에서 가설을 기반으로 이것저것 마구마구 시도해 보면서 실패라는 것은 무엇이 발견될 만한 인사이트를 찾는 과정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나의 믿음을 조금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 책이 바로 스콧 애덤스의 ≪더 시스템≫이다.


책에서 말하는 시스템이란, 루틴의 묶음, 매일 반복하는 습관의 몇 가지 목록과 유사하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20대 후반의 나는 내가 원하지 않는 시스템 안에서 매일을 살고 있던 셈이다. 내가 만든 루틴, 내가 반복하고 싶은 습관이 아님에도 익숙함과 편안함, 다른 모든 이들이 당연한 듯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나도 따라 해야 정상일 것이라는 생각에서 오는 생각과 행동들. 저자는 환경의 영향이 20%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이것이 40% 이상은 된다고, 아니 50% 이상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각자의 성향에 따라서 환경의 영향은 크게 달라지는 것 아닐까.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것을 시도했을 때 실패하게 되면 따라오는 시간, 돈, 에너지의 소비가 두렵기도 하지만 분명 그 과정에서 최소한 한 가지는 ‘배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계속 새로운 도전을 향해 나의 몸을 움직이게 한다.



당신이 거대한 꿈을 꾸는 한, 대부분 실패를 맛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기억하라, 목표는 패배자에게나 어울리는 것이다. 당신의 원대한 계획들을 목표로 생각하지 마라. 당신의 에너지와 인맥, 그리고 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한 과정의 일부로 받아들여라. 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당신이 크고 흥미로운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는 동안 매일 승자의 기분을 느낄 수 있게 된다.

- 스콧 애덤스, ≪더 시스템≫ (배리북,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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