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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리 Feb 25. 2024

나를 일으키는 '진짜' 힘

넘어졌을 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책이 아니다 





“논문 때문에 인터뷰를 하는데,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냐는 거야. 계속 움직이게 만들어주는 사람.”

“그래서?”

“내가 책을 가까이하게 된 건 너 영향도 있다고 했지.”



고추냉이를 한술 더 얹어 밥을 펐다. 코가 시큰했지만 몸 전체에 퍼지는 짜릿한 기분이 고추냉이 때문이 아니라 언니의 말 때문이라고 믿고 싶었다. 


나에게 종종 묻는다. 어떤 이유로 그렇게 책을 자주 읽고, 항상 새로운 걸 시도하려는지 말이다. 곰곰 생각해 봐도 코로나가 아니었나 싶다. 할 게 없었다. 회사도 잠시 휴업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7-8개월 정도는 일을 하지도 않았다. 집에서 책을 읽거나, 바깥을 달리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뭘 하며 지냈을까?). 


환경적인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셀프 고립이라고 말하면 거창하지만, 성인이 된 후 혼자 지내야 하는 시간들이 많았다. 가위바위보에 져서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해 자취를 했고,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집에 오래 머물렀으며, (조금 슬픈 이야기지만) 방학 때 다른 주로 여행할 경비가 없어 기숙사와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런 조각조각의 기억들 속에 나는 도서관에 있거나, 서점에 있거나, 어쨌든 책이 많고 사람이 많고 하지만 서로 대화는 하지 않는 그런 공기 속에 머물러 있었다. 


책을 가까이하는 것과 나의 셀프 리뉴얼이 관계가 있을까?


책을 읽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그런 것도 같다. 소설이나 시는 잘 읽지 않는다. 내가 초라하고 세상이 너무 무겁게 느껴질 때면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고 나면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졌다. 뒤처진 거 같다거나 두려운 일을 맞닥뜨렸을 땐 자기 계발서와 관련 경제경영서를 급하게 찾아 훑곤 했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막막할 땐 가끔, 철학서에도 손을 댔다. 


나에게 독서는 생존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이상하게 짜릿했다. 하기 싫어하는 일이 아닌, 하고 싶은 일 중에 하나였다. 삶이 고통스러울 때마다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가장 쉬운 쾌락을 찾는 것 또는 책을 읽는 것이었다. 


하지만 삶은 책을 읽는 것만으로, 책에서 읽은 내용을 실행하는 것만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은 일어나고 그것들은 예측하지 못한 감정들을 가져다준다. 좋은 의미로, 안 좋은 의미로도 말이다. 


괜찮은 업무 제안을 받았고, 나를 지키고 싶은 마음에 의견을 표했지만 'NO'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최악의 경우를 그려봤지만 그것보단 나았다. 그럼에도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은 며칠 더 지속되었다. 시간이 어영부영 흐르는 사이 2월이 지나가 버렸다. 


어쩌면 책이 아닐 수도 있다. 어려운 시기를 거친 후 다시 시작하도록 만들어준 것 말이다. 언니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나의 오늘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꽤나 상실감이 드는 시간이었는데, 덮밥을 사이에 두고 언니와 나눈 짧은 대화가 나를 다시 일으켜 주었다.


항상 곁에 있기에 소중함을 잊어버리는 것들이 있다. 나의 가족, 나의 언니들. 어쩌면 나를 계속 셀프 리뉴얼 하게 만든 것은 책이 아니라 나의 가족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의 가족의 조건 없는 따뜻한 응원과 말.

이것에 감사함을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이것의 소중함을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대학교 때 여행을 하지 못하고 귀국하는 나에게 미국 동/서부를 한 바퀴 돌 수 있도록 여행비를 지원해 준 사람이 바로 나의 큰언니다. 그녀의 그런 사랑이 나를 계속 움직이게 한다. 언니들과의 대화가, 그들의 응원이 넘어진 나를 일으키게 한다. 나는 셀프리뉴얼이 아니라 시스터(덕분) 리뉴얼을 하며 산다!


성장하는 태도를 가지고 싶은 사람으로서 운명론을 너무 믿진 않으려고 하지만, 신이 나에게 두 사람의 언니를 보내준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책 보다, 책을 읽고 그들과 나누는 대화가 나를 다시 일으키게 해 줬던 건 아닐까. 그런 그들에게 조금 더 따뜻해져야 하는 게 나의 새로운 과제이다. 










* 셀프리뉴얼(Self-renewal)이란, 어려운 시기를 거친 후에 이전보다 더 나은 방법으로 다시 시작하는 행위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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