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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리 Mar 13. 2024

불평하지 않기로 합니다

엘리자베스 길버트, ≪빅매직≫ (민음사, 2017) 중

그러고 나서 우리 모두 함께 떠나는 것이다. — 나와 창조성과 두려움이 — 영원히 서로 나란히 앉아서, 여행 끝의 결과가 불확실하고 두렵지만, 동시에 경이를 안겨 줄 그 미지의 지형으로 한 번 더 나아가면서.

- 엘리자베스 길버트, 박소현 옮김 ≪빅매직≫ (민음사, 2017)



철학가 쇼펜하우어는 인생은 권태나 고통 둘 중 하나라고 말한다. 권태를 건강하게 다루기 위해 나는, 창조성의 길을 선택했다. 그런데 그것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 내 자의식은 틈만 나면 자꾸만 쉬운 쾌락의 길을 선택한다. 예를 들면 술, 미디어, 자극인 것. 왜일까? 습관의 문제일까? 무의식의 문제일까?

이 책을 읽은 이유는 ‘동기부여'를 얻기 위함도 있지만, 내가 쉽게 무너지는 습관의 영역 (특히, 권태나 고통을 마주했을 때 행동하는 회로의 영역)의 문제를 창조적 탈출구를 통해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서였다

책을 읽고 내가 기대하는 답은 이런 식이다. 당신이 일상에서 겪는 회피성 행동, 예를 들면 자기 전 무분별한 미디어, 과음, 즉각적인 쾌락의 추구는 창조적 삶을 통해 극복 또는 완화될 수 있다. 오히려 그러한 에너지를 창조적 삶에 투사함으로써 더욱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 고 말해주길 바랐다.


이 얼마나 명쾌한 솔루션인가. 하지만 이렇게 쉬운 일이라면 세상 모든 중독자들이 다 창작자의 삶을 살고 있겠지. 엘리자베스 길버트, 그녀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우리 모두는 잠시 우리 자신에 대한 것들을 잊게 도와줄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 단시간 동안 어떤 마법의 주문으로 우리의 관심과 주의를 온전히 흡수해 버리는 것. 그러면서 우리가 오직 우리 자신으로서 존재해야만 한다는 그 지독한 부담감으로부터 잠시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 

- 엘리자베스 길버트, 박소현 옮김 ≪빅매직≫ (민음사, 2017)


그녀가 말하는 “창조적 삶"은 오직 전문적이고 독점적으로 예술 분야에 헌신하는 삶의 추구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에게 “창조적 삶”은 보다 광범위한 범주를 대상으로 한다. 두려움이 아니라 그보다 더욱 강한 호기심으로 인생을 이끌어가는 삶에 대한 이야기. 이에 대한 예로 마흔 살에 피겨 스케이팅을 시작한 친구 수잔 이야기를 꺼낸다.


일주일에 세 번, 수전은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서, 낮 시간 내내 고달픈 직장에서의 하루가 시작되기 전 바로 그 숨 가쁜 시간에 스케이트를 탔다. 그녀는 계속 스케이트를 타고, 타고, 또 탔다. 그리고 정말 그녀는 그것을 사랑했다. (...) 그녀는 자신이 그저 일상의 소비자로서 매일 주어진 일들을 의무적으로 처리하는 수동적인 존재밖에 되지 않는다는 자괴감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기 자신에게서, 그리고 자신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갔다. 

- 엘리자베스 길버트, 박소현 옮김 ≪빅매직≫ (민음사, 2017)


작가는 우리 모두에게는 우주로부터 부여받은 내면의 보물이 있으며 그것은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발견하기 위한 여정이 창조적인 삶이라고.


자칫 유사과학 적, 종교적인 관점, 영적인 관점에서 해석, 약간 거부감이 들 수도 있고, 믿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의 친구의 사례를 보면 결국 창조적 삶이란 삶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두려움보다는 용기를 택하는 삶, 인생의 책무에서 벗어나 나의 호기심을 기반으로 무언가를 시도하는 삶.

인생의 책무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왜 창조성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리적인 해답은 여전히 찾기 어렵다. 책을 다 읽고 느낀 건, 창조적이어야 하는 ‘강제적’ 이유는 없다지만, 창조적이지 않아야 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라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why not?’. 왜냐하면, 창조적인 일상을 삶으로써 그 어떤 흥미로운 곳에 가 볼 수도, 흥미로운 일도 할 수 있고, 세상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는데 그 시도를 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 그 어느 쉬운 쾌락보다 사후 허무함도 적을뿐더러 여정이 끝나면 나를 위한 작은 선물도 남기도하고 말이다. 


창조적 삶을 위해 필요한 건, 계속해 나가기 위한 환경을 만드는 것, 그리고 내 할 일을 하는 것. 열심히 작업하고 집중하는 일. 그것을 위해 언제나 에너지를 마련해 두자고,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불평에 대해 이야기했던 내용 중, 두 가지 맘에 들었던 부분이 있다. 하나는 누구도 내 불평을 정말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는다는 사실. 왜냐면 우리 모두는 각자가 겪고 있는 거룩한 고난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누구에게 불평을 늘어놓든 사실상은 그냥 벽에다 대고 말하는 격이라고 말이다. 두 번째는 내 불평이 창조적 영감에게 겁을 줘서 멀리 쫓아버릴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러므로 나는 앞으로 계속, 창조적 삶을 살기 위해, 세상의 경이로움을 발견하기 위해 불평하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다.


매번 교훈을 얻고 다짐을 하는 흐름으로 마무리되는 듯 하지만, 그러려고 책을 읽는 것이니까요.


생계를 유지하는 것,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불평하지 않는 것. 나의 창조성이 도망가지 않도록 나와 함께 잘 오래 지낼 수 있도록 내가 신경 써야 할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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