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바리 Mar 14. 2024

10년을 달렸던 소녀

김지수, ≪위대한 대화≫중 장명숙(밀라논나)의 말 (생각의힘, 2023)

삶에서 진짜 귀한 것은 시간입니다. 부자나 빈자나 24시간은 똑같이 받아요. 시간의 본질은 성실입니다. 성실은 내 인생에 대한 예의예요. 자존과도 연결되죠. 저는 일단 눈뜨면 저를 토닥여요. “잘 잤니? 명숙아, 넌 잘하고 있어. 여태껏 잘 해왔잖아.” 기도하고 산책하면서 루틴을 다져요. 스트레칭, 신문 읽기, 독서도 빼놓지 않죠. 루틴은 나를 함부로 하지 않겠다는 다짐 같은 거예요. 몸의 뼈대 같아서 루틴이 튼튼하면 일상이 무너지지 않아요.

-김지수, ≪위대한 대화≫중 장명숙(밀라논나)의 말 (생각의힘, 2023)



노력하면 뭐든 다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았던 호기로움의 열기가 차츰 식어가고, 계속 걷다 보니 어느덧 중년이라는 문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떠한 세계가 있을까. 아직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이 공간에서 둘러보지 못한 곳들이 너무 많은 것 같은데, 하는 미련도 있음과 동시에 실컷 둘러본다 한들 다른 곳에서 느꼈던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회의감도 함께 몰려온다.


“10년 동안 이룬 게 없는 것 같아요.”

“그럼 선택하지 않고 그곳에서 머물렀을 10년을 생각해 보세요.”


안정적인 삶을 버리고 택한 불안한 세계에서의 약 10년의 시간은, 나를 계속해서 ‘이루지 못한 것', ‘이뤄야 하는 것'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나서 깨달은 것은, 변화를 선택하지 않고 머물렀을 10년의 삶도 크게 다를 바 없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어떤 특정 영역–예를 들면 재정적 영역–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여유가 있었을 수도 있다. 타고난 성정을 보았을 때 유지를 했을까 의문이지만. 하지만 다른 영역 예를 들면 정신적인 부분, 신체적인 부분, 관계적인 면 등에서 과연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을 거라는 확신은 없다.


관계에 있어서는 특히 좋다, 나쁘다 쉽게 가를 만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를 얼마나 배우게 했는가',에 관점에서는 지금의 불안한 시간의 축적이 훨씬, 더 가치 있는 본질에 대해 고민하도록 도와주었다고 생각한다. 1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어리석은 말과 행동을 하며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았는가. 경험으로 깨우쳐야만 했는가,라는 점이 스스로 부끄럽긴 하지만 돌이켜 보았을 때 그만큼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것이 없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그 흔적을 감싸 안겠습니다.


중년을 맞이하는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 보자면, 앞으로 10년, 20년, 30년을 어떻게 살아가야 내가 나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앞선다. 그 고민에 대한 해답이 어느 정도 실마리를 잡혀야 중년의 문을 열 용기가 생길 것 같고 말이다.


10년 전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던 것들이 점점 더 중요해지지 않아 지고, 소홀했던 것들에서 점점 더 감사함과 소중함을 느끼고 있다. 아마도 내가 50대를 마주하고, 60대를 마주하고 70을 마주할 때는 또 그때 가서 다른 가치가 중요해지고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가치들도 생기겠지. 이렇게 계속 변하는 나를 ‘변덕쟁이'라는 시선으로 보지 않고, 조금 더 따뜻한 시선에서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결국, 어떻게 하면 ‘나이 듦'에 따라 변하는 나를 더 잘, 돌봐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일을 통해 공동체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느껴야 합니다. 함께 어울리는 소속감도 매우 중요하지요. 공부는 스스로가 얼마나 무지했던가를 깨닫게 만드는 ‘자기 구제'의 핵심입니다. 일, 참여, 공부… 이 세 가지를 통해 삶은 단시간 내에 충만해질 수 있어요.

김지수, ≪위대한 대화≫중 파스칼 브뤼크네르의 말 (생각의힘, 2023)


나보다 먼저 삶을 산 사람들의 지혜가 소중하다.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삶을 사랑하며 꿋꿋이 버티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감사하다. ‘밀라논나'의 말에서 루틴의 중요성을, ‘파스칼 브뤼크네르'의 말에서 일과 참여, 공부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삶이 허무하고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싶어질 때, 나를 맥없는 시간에서 구원해 줄 그 무엇이 '타인'이라고 생각했던 시기가 있다.


이제는 나를 더 잘 돌보고, 일하고 공동체에 기여하고, 소속감을 느끼고 배움을 통해 계속해서 나의 무지함을 성찰하는 것에 집중하고 싶다. 이 깨달음이 삶의 여정 10년 동안 이룬 가장 중요한 ‘무형’의 성취이자, 중년의 문을 열고 들어서기 위한 열쇠일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 불평하지 않기로 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