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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리 Mar 15. 2024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제니 오델,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필로우, 2023) 중

소셜미디어를 건강하게 사용하는 법에 대한 책을 읽고 싶은 사람은 어쩌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은 우리의 스크린 타임을 줄여주는 자기 계발서가 아니다.

- 제니 오델, 김하현 옮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필로우, 2023)



어느 날, 사장님의 취향이 진하게 묻어나는 독립서점에 갔고,  핑크색 표지에 세련된 서체로 재출판된 이 책을 발견했다. 타이틀에 끌려 장바구니에 담아 놓고선 잊어버린 책이었다. 이름 몇 번 들어본 연예인을  실제로 보게 되었을 때 ‘나 저 사람 알아'와 같은, 내적 친밀감이 불쑥 일어 덜컥 사버리곤 두 달이 지났다.


사실 그동안 몇 번 시도는 해보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두 페이지 이상 읽히지가 않았다. 자꾸만 잠이 왔다. 자기 계발서 독서 경력 N년차로서, 책의 한 챕터가 시작하면 이쯤 되면 중요한 주장이 나와야 하는데, 하는 기대를 매번 져버렸다. 무엇보다 정말 책 제목을 보고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다. 책의 ‘해제’에서 그녀의 지인이 설명한 것처럼, 나는 ‘실망'을 인정하지 않으려 매번 무거운 눈꺼풀을 부여잡고 어떻게든 자기 계발 계몽적인 메시지를 뽑아보려 애썼었다.


결론은, 어려웠다. 이번에도 읽으면서 자꾸만 뚝뚝 흐름이 끊겨서 몇 번이고 내려놓았다. 이런, 인내심 없는 독자를 배려하는 차원인 것인지 책의 해제에서는 그녀의 지인이, 서문에서는 영화 <벌새>의 감독 김보라 님이 아주 쉽게, 이 책에 대해서 풀어 주었다. 


제니 오델은 공백을 허용하지 않는 삶에서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살아가는지, 끝없는 불안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다층적으로 다루며 진짜 세계에 접속하자고 제안한다. 그가 말하는 진짜 세계는 우리가 더는 슈퍼마리오처럼 커질 필요가 없는 세계다. 슬롯머신 같은 SNS 속 새로고침의 정보들이 아닌 내 주변의, 거리의, 지하철의, 자연의 ‘진짜' 존재들의 세계다. 

- 제니 오델, 김하현 옮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필로우, 2023)


두려움과 불안에 의존하는 관심 경제 속 바쁨이 당연시되는 사회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기술로부터 멀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이야기 인지 읽으면 읽을수록 궁금해졌다. 페이지를 한 장 더 넘기면 힌트가 나오겠지, 한 장 더 넘기면 힌트가 나오겠지, 하고 버텨보았지만 넘길 때마다 등장하는 낯선 철학자의 이름과 사회 정치 이야기, 들어본 적 없는 지역 이름들이 내 눈을 점점 더 흐릿하게 만들었다. 


생산성과 탄탄한 커리어에 따라 자신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 자본주의에 이용당하지 않는다는 다소 애매모호한 생각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 머물고자 애쓰는 것. 이 애매모호한 생각은 바로 유지와 보존을 위한 작업이 곧 생산성으로 연결된다는 것, 비언어적 의사소통이 중요하다는 것, 그저 인생을 경험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는 것이다.
- 제니 오델, 김하현 옮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필로우, 2023)


작가는 이것은 마치 드레스 코드가 정해진 장소에서 엉뚱한 옷을 입고 잇는 것만큼 불편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의지와 자제력, 헌신이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작가가 명명한 방식 ‘한 발짝 떨어지기'를 통해 이 세계를 떠나지 않으면서도 외부자의 관점을 갖는 것이 가능하다. 한 발짝 떨어지면 불안과 두려움을 조장하는 디지털 세계로부터 자신을 지키면서도 무언가에 연결될 수 있다 말한다.


작가가 권하는 연결과 관찰은 ‘성장의 수사학'과는 관련이 없다. 우리가 삶을 더 알아차려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 되고자 하거나 더 큰 생산성을 갖추기 위함이 아니다. 그저 ‘알아차림'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 삶을 경험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내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주고 다른 체제에서 다른 무언가를 도모하기 위해 현재의 체재(관심경제)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의미한다. 
- 제니 오델, 김하현 옮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필로우, 2023)


사회적 관점에서든 생태학적 관점에서든 ‘아무것도 하지 않음'의 궁극적 목표는 초점을 관심경제에서 거두어 공적이고 물리적인 영역에 옮겨 심는 것 , 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방향성은 자연으로 향하고, 그녀가 택한 것은 새를 알아차리는 행위, 즉 생태 지역 주의이다.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자신이 앞으로 펼칠 주장이 여러 요소가 맞물려 논리적 전체를 이루는 깔끔한 형태가 아닌, 에세이와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강의라기보다는 산책으로의 초대라고 이야기한다. 솔직히, 그녀의 이런 난해한 산책에 두 번 더 초대받고 싶지는 않다. 당분간은 이 한 번으로 족하다. 



*안 읽히는 외서를 만나면 작가가 글을 어렵게 쓰는 건지, 번역이 어렵게 된 건지 궁금할 때가 있다. 이 책도 그런 책이었다. 또 모른다. 10년 후에 내 전전두엽이 더 두꺼워졌을 즈음에는 잘 읽힐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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