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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리 Apr 14. 2024

얼마간은 달라도 괜찮아

[나위쓰 2기] 감정을 중심으로 회고하는 에세이 글쓰기 9주차


 

생각해 보면 타인과 얼마간이나마 차이가 있는 것이야말로, 사람의 자아란 것을 형성하게 되고, 자립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유지해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내 경우를 말한다면, 소설을 계속 써나갈 수 있는 것이다. 하나의 풍경 속에 타인과 다른 모습을 파악하고, 타인과 다른 것을 느끼며, 타인과 다른 말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님으로써, 나만의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결코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내가 쓴 것을 손에 들고 읽어준다는 드문 상황도 생겨난다. 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라는 것은, 나에게 있어 하나의 소중한 자산인 것이다. 마음이 받게 되는 아픈 상처는 그와 같은 인간의 자립성이 세계에 대해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될 당연한 대가인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며, 그와 같은 생각에 따라 인생을 살아왔다.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어디까지나 결과적이긴 하지만, 자진해서 고립과 단절을 추구했는지도 모른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중




가족 여행을 했어. 공주의 한 시설에 가서 캠핑을 했지. 이튿날에는 공산성에 오르고 지역 맛집인 매향에 가서 편육 무침을 먹었어. 일요일에는 언니와 계룡산에 올랐고. 정상 코스는 왕복 6시간이라고 해서 동학사에서 출발해 관음봉을 찍고 내려오는 4시간 코스를 선택했는데 힘들었지만 기분이 정말 좋았어.


오랜만이야. 진심으로 쉬었다고 느낀 게.


분명 여행도 다니고, 드러누워서 아무것도 안 한 때도 있었지. 근데 항상, 마음은 바빴거든. 휴식했다고 말하면서도 어딘가 찝찝함은 있는 그런 거, 알아? 그런데 이번 주말 3일은 진짜, 제대로 쉰 기분이야. 상쾌해.


이번 캠핑에는 책을 세 권 챙겼어. 하루키의 달리기 책, 니체의 차라투스트라, 그리고 이민진 작가의 백만장자의 공짜 음식 (타이틀이 매번 헷갈려). 언뜻 보면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세 작품인데, 주말 동안 다 각자 다른 색깔을 가지고 나에게 필요한 에너지를 불어넣어 줬어. 니체 책은 여전히 어렵지만, 그래도 내 멋대로 해석하며 얻는 통찰이 있어서 좋아. 이번에는 삶의 무의미함과, 그 세계 속에서 몸과 정신에 더 힘을 쏟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어. 어차피 인생이 무의미하다면, 몸을 가꾸는 데 신경 쓰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말이야(여기서 몸 가꾸기는 신체, 정신 등 여러 차원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내 자산에 대한 것이라고 이해했어). 책을 읽고 나니까, 나를 억누르고 있는 것 같던 삶의 여러 가지 투두리스트들이 다 의미 없이 느껴지고, 그냥 매일 책 읽고 글을 쓰고 운동하고, 건강하게 먹고 잘 자고, 깨어있을 때 ‘정말로’ 깨어있는 게 최선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책은 참 좋아. 이만 원정도의 돈만 지불하면 세계 최고 지식인들의 지혜를 훔쳐 읽을 수 있잖아. 처음 책이라는 것이 퍼지기 시작했을 땐 얼마나 센세이셔널했겠어. 너무 흔한 이야기 같지만, 내가 누리는 혜택이 당연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 감사하고 겸손해지는 것 같아.


여행하며 틈틈이 책을 넘기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그런 순간들을 느꼈어. 언니들 덕분에 편하게 짐 하나만 챙겨서 캠핑을 하고, 이쁜 조카 두 녀석 덕분에 야매 배구도 하고, 작은 언니 덕분에 생각만 하던 국립공원 순례도 하고 (또 줍깅도 같이 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의 생각을 손쉽게 누리고.


자꾸만 내가 초라하게 느껴지는 시간들이 많았어. 햇수로 치자면, 음, 4-5년은 되었을까? 그런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나는 누군가와 ‘다른 것’뿐인데 왜 누군가와 같지 않다고 마음이 상해야 할까? 하고 말이야.


시간이 참 빨리 흘러.  점점 더 말이야. 제대로 깨어있기에도 부족하다고. 열심히 휴식한 만큼, 세상에 가치를 전달하는 일도 열심히 최선을 다 해내자고. 이런 마음가짐이라면, 뭔들 못 하겠어!


아, 요 근래 다시 되찾은 기쁨에 관해 덧붙이고 싶어. 일본어에 다시 불붙은 열정이야. 이전처럼 강렬히 불타는 열정이라기보단, 조금 잔잔한 불이랄까? 최근 저녁에 25-30분짜리 짧은 심야일드를 몰아보다 보니 낮에 가만히 있어도 일본어 표현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더라고. 한참 동안 일본어에 흥미를 잃어서 곤란했는데, 지속할 수 있는 길을 찾은 것 같아. 역시 즐겁게 하는 걸 열심히 하는 게 못 이긴다고, 일본어는 일드 보면서 (새로운 배우에 빠져들면서) 계속 공부해야겠다고 느꼈어.


‘언어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해놓고, 몇 년 간 제자리걸음인 기분이 들었는데 이제 어느 정도 일상 속 시스템을 만든 것 같아. 이제 매년 언어 하나씩 다시 차근차근 새로운 발견의 즐거움을 누려야지.


좋아하는 것을 더 잘 좋아하기 위해서라도, 타인과 얼마간 다른 나를 얼른 끌어안아야겠다고 느껴. 계속 주변을 둘러보다 보면 진짜 소중한 현재의 시간을 놓치기 십상이니까.


나의 이 주말을 함께 해준 하루키, 니체, 이민진, 가족들, 그리고 지나쳐간 친절했던 사람들, 등산객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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