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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리 Apr 17. 2024

쉽지 않은 일을 해내는 사람

야마구치 슈, ≪비즈니스의 미래≫ (흐름출판, 2022)  중  한 단락


현대 사회를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는 사회'라고 종종 일컫습니다. 의, 식, 주 기본적인 욕구는 어느 정도 해소되었고, 이제 돈의 흐름은 미래의 가능성, 혹은 사람들의 관심을 따라 움직이는 시대가 된 것이죠. 이러한 시대 흐름의 변화로 인공 지능, 메타 버스, 우주 탐사 등 새로운 기술에 막대한 투자가 이루어지고, 크리에이터라는 직업에 대한 인식도 점점 더 바뀌어 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자 야마구치 슈는 물질적 불만의 해소라는 측면에서는 게임을 종료한 이 상태를 ‘저성장의 시대'로 봅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수반되는 의미적 가치의 상실과 관련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죠. 이를 위해 성장을 끊임없이 추구할 것이 아니라, 문명화가 완성된 ‘성숙의 시대'로 보고, 이 성숙의 시대에 우리가 본질적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되묻습니다. 애초에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가?’를 확실히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면서요.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그는 세 가지 대안을 제안합니다. 바로 1. 예술로서의 비즈니스 추구, 2. 투표적인 소비 실천, 3. 보편적 기본 소득의 도입인데요. 이중 오늘 제가 읽은 챕터 ‘예술로서의 비즈니스 추구’에서는 비즈니스를 예술 프로젝트로 인식해 가치 창출의 방향을 ‘문명적 풍요로움'에서  ‘문화적 풍요로움’으로 전환할 것을 제시합니다. 왜냐하면, 무한 경제 성장을 지향하려면, 쉽사리 물건을 계속해 소비하고 버리는 사치와 탕진을 예찬하는 가치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이미 이러한 가치관은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문화적 풍요로움'이라는 가치 창출 전환을 성공한 사례로 일본 전국 시대 무장 오다 노부나가를 듭니다. 전국시대 무장의 격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는 미곡의 수확량이었습니다. 섬나라인 일본에서 국토를 무한히 확장하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에 경작지 넓이를 둘러싸고 다투다가 누군가가 이득을 보면 누군가는 손해를 입는 제로섬 게임을 반복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안정적인 통치도 불가능했겠죠. 노부나가는 이 문제를 굉장히 깔끔하게 해결했습니다. 바로 다도(茶道)에 착안한 것이죠. 


노부나가가 다시 명품을 수집하는 모습을 본 무장들은 너도나도 앞다투어 똑같은 명품을 소유하려고 했다. 그러자 다기의 가격은 천문학적인 수준까지 치솟았고 마침내 다시 한 개가 영지나 성과 거래될 정도의 가치를 갖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해서 노부나가는 자신이 목적한 대로 토지의 제로섬 게임이라는 유한성에 제한받지 않고 마치 연금술처럼 무한한 가치를 창출해 냈다. 

- 야마구치 슈, ≪비즈니스의 미래≫ (흐름출판, 2022) 


독일 경제학자 좀바르트는 사치에 관해 이야기 할 때 웅장한 성당을 황금으로 장식해 신에게 바치는 행위와 자신이 사용할 실크 셔츠를 주문하는 행위 두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주장하는 문화적 가치의 창출이란, 말할 것도 없이 좀바르트가 대성당 건설을 비유로 제시한 측의 사치, 즉 결코 소비되어 없어지지 않아 영속적이며 타자에게 개방된 풍요로움을 창출하는 활동을 의미합니다. 


한편, 이러한 소비되지 않는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노부나가가 이러한 소비되지 않는 무한한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자신이 한 나라의 수장이라는 영향력 있는 권위자였다는 점, 그리고 그 권위와 명성을 이용해 사람들의 심리를 자극해 움직이게 했다는 점, 마지막으로 다도(茶道)라는 일반적인 차를 마시는 행위에 고차원적 의미를 부여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을 테니까요. 


따라서 한 개인이 예술로써 비즈니스를 추구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어 보입니다. 현재 경제의 주류 흐름인 물질적 가치 창조를 반하는 태도를 가져야 하고, 문화적 가치를 만들기 위해 영향력을 가짐과 동시에 사람의 심리를 간파하고, 특정 행위나 물건에 의미를 심어내야 하는 이 모든 과정이 지난하고 어려운 일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속해서 주류에 편승해 끝이 보이지 않는 저성장의 늪에서 의미를 잃고 힘없이 걸어야 하는가, 하면 그 또한 ‘깨어있는 삶'인가, 하고 자문해 봅니다. 분명 오래 걸리겠지만, 한 사람의 삶이 다할 때까지 변화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여러 사람의 작은 날갯짓이 모여 분명 언젠가는 문화적인 가치가 물질적 가치를 대체하는, 그런 비즈니스가 당연시되는 그런 세상이 도래할 지도요. 이미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 몇몇 분들이 머릿속에서 떠오르기도 합니다 (마인드마이너 송길영 박사님은 자신의 직업을 이해시키는 데 10년이 넘게 걸렸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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