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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리 Apr 29. 2024

적어도 마지막까지 걷지는 않았다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속 한 단락


여러분은 어떤 이유로 운동을 하시나요? 체중 감량을 위해, 건강을 위해, 누군가와 함께 땀흘리는 게 좋아서, 고통이 즐거워서 (물론 절대 즐겁지만은 않지만)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텐데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자신에게 계속 달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소개합니다. 


오랜 작가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부가 된 이 루틴을 그는 ‘선택 사항으로서 고통'이라고 설명하는데요. 여러 나라에서 거주하며 매일 새벽 네 시간씩 글을 써온 그가 작품 밖 세계에서 어떤 일상을 보내왔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왔는지, 달리기라는 주제를 통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줍니다. 



제가 오늘 읽은 챕터 <죽는 날까지 열어덟 살>은 좋아서 시작한 일에 권태를 마주했거나, 지금 그 고통스러운 언덕을 지나고 있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어요. 하루키는 열심히 연습했음에도 만족스럽지 않았던 뉴욕 마라톤 결과를 만회하기 위해 약 반년 후, 보스턴 마라톤을 달립니다. 지난 마라톤에서 연습을 지나치게 했는지도 모른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적당히 해보자, 와 같은 냉정한 자세로 달린 결과는 뉴욕 때와 거의 차이가 없었습니다. 하루키는 결승점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내의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라는 반응에 정확한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왜 그런지 스스로도 알 수 없다고 말이죠. 하지만 그럼에도 달리는 것을 포기하진 않으리라고 다짐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나는 내가 좋아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내가 좋아서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주우의 어떤 것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고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아왔다. 설사 다른 사람들이 말려도, 모질게 비난을 받아도 내 방식을 변경한 일은 없었다. 그런 사람이 누구를 향해서 무엇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인가?

 -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저는 이 부분이 참 좋았어요. 하루키는 자신이 좋아서 시작한 일이기에 가령 주위 사람들이 “이제 슬슬 달리는 것은 그만두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이제 나이도 먹었고"라고 충고해도 개의치 않고 계속 달리겠다고 말하거든요. 그는 이것이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성격일 뿐이라며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은 ‘자신만의 영역, 자신만의 목표'를 강조합니다. 개인적이고, 완고하고, 협조성이 결여된, 때로 자기 멋대로인 스스로를 의심하기도 하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어도 거기에 우스꽝 스러운 것을 찾아내려고 하는 자신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합니다. 이 본성이 때로 너무 무겁고, 겉모습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않지만, 이것 이외에는 짊어지고 갈 것이 없기에 어쩔 수 없이 메고 왔으며 그만큼 애착도 간다고 덧붙입니다. 


‘다음에는 더 잘 달릴 수 있을 거야’나, ‘이제 틀려먹었군'과 같이 자신의 노력의 결과에 따라, 주변의 의견에 따라 쉽게 흔들리는 사람이 아닌, 단단한 자신만의 원칙을 가진 사람이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있어서는 그것으로부터 신 레몬을 건네 받더라도, 썩은 샌드위치를 건네 받더라도 계속 꿋꿋이 하던 일을 계속 해나갈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있기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계속 좋아하고,  누가 뭐라해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이 해 나가는 것. 오랜 시간동안 포기하지 않고  글을 쓰고 달려온 그이기에 더욱 믿음이 가는 이야기 입니다.


그러니 때로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이 버겁다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늘에 앉아 숨을 돌리며  내가 가진 짐이 주는 다채로운 감정을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요? 그 짐 속에는 어쩌면 나를 계속 걷게 해주는, 복잡하고 다채로운 차원의 반짝이는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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