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펙트 데이즈>와 책 <삶의 격>에서 배우는 삶의 태도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이야.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보았습니다. 도쿄의 공중화장실 청소부로 살아가는 히라야마는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지만, 그 속에서 깊은 만족감을 느낍니다. 청소를 마치고 같은 공원에서 식사하고, 늘 보던 하늘을 바라보며,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듣고, 나무와 풍경을 사진에 담습니다.
엄마와의 다툼 끝에 집을 나온 조카는 불쑥 히라야마의 집에 찾아옵니다. 어색하고 불편한 둘은 어느새 함께 일터에도 나가고 휴식 시간도 함께 보낼 정도로 가까워집니다. "다음에 또 같이 자전거 타러 가요?"라는 조카의 말에 히라야마는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이야"라고 답합니다. 미래를 약속하는 대신 현재의 순간을 온전히 느끼자는 그의 대답은, 단순한 위로를 넘어 삶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페터 비에리의 책 <삶의 격>에서는 존엄성을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특정한 방법'이라고 정의합니다. 존엄성은 세 가지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가, 내가 타인을 어떻게 대하는가, 그리고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는가. 이 중에서 저는 특히 후자의 두 가지에 주목했습니다. 스스로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에서 존엄성을 지키는 방법을 찾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세일즈 맨의 죽음>에서 윌리 로먼이 일자리를 잃는 과정은 이 세 가지 차원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회사로부터 버려진 경험(타인이 나를 대하는 방식), 자신의 가치를 의심하게 되는 과정(내가 나를 대하는 방식), 그리고 가족과의 관계가 흔들리는 모습(내가 타인을 대하는 방식)은 존엄성이 어떻게 위협받고 지켜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책에서는 '독립성으로서의 존엄성'을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독립성은 홀로 고립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약점을 드러낼 수 있고,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내면에 대한 태도입니다. 내적 독립성은 성공이나 실패가 아닌, 자신의 삶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부단한 노력에서 비롯됩니다. 시도했다가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시도조차 하지 않을 때 존엄성이 상실되는 것입니다.
히라야마의 "지금은 지금이다"라는 말은 이런 맥락에서 더욱 의미심장합니다. 그의 존엄성은 미래의 성공이나 타인의 인정이 아닌, 현재에 충실한 자세에서 비롯됩니다. 매일 같은 일을 하고, 같은 풍경을 보면서도 그 순간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존엄한 삶의 한 형태일 것입니다.
<삶의 격>은 철학적 개념을 다양한 소설 속 인물들의 구체적인 상황을 통해 설명하며, 우리의 실제 삶과 연결시킵니다. 다만 존엄성이라는 개념의 깊이 때문인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이 책의 가치를 증명합니다.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읽으면, 더 넓어진 사고의 지평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의 존엄성은 언제 올지 모르는 미래가 아니라, 지나버린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 집중함으로써 지켜낸다." 이것이 제가 영화와 책을 통해 얻은 깨달음입니다. 히라야마처럼 현재의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 그 작은 용기가 존엄성을 지키는 시작점이 되지 않을까요.
"사실 아주 새로운 것은 없었어. 이미 알고 있는 내용도 많아. 하지만 누군가가 그것을 말로 정리해 주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사고의 주변에 머무를 뿐 명확하고 뚜렷하게 규정지을 수 없는 것들도 실제로는 아주 많다는 것을 저자가 숨기지 않았다는 점도 좋다."
이 책을 읽고 누군가가 이렇게 말해준다면, 나는 목표를 이루었다고 안도할 수 있을 것이다.
- <삶의 격>의 서문에서 작가 페터 비에리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