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싶어지는 고양이의 5가지 특징
신은 왜 고양이를 만들었을까?
옹구의 털은 만지고 나면 손에도 코에도 얼굴에도 묻는다.
바닥 이곳저곳에 굴러다닌다.
뭉친 털은 불편할 텐데, 정작 옹구는 아무렇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만지면 기분이 좋다. 보들보들.
털을 빗어주고, 뭉친 털을 잘라주고, 돌봐줘야 한다는 감각.
청소를 더 자주 해야겠다는 생각.
바닥 청소기를 한 번 더 밀어줘야겠다는 생각.
옹구는 혼자이고 싶어 하면서도 느닷없이 다가온다.
내 공간, 내 시간이 중요한 나에게
“너 너무 혼자 매몰되지 마. 내가 여기 있다구.”
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다른 동물을 감각하고, 타자라는 존재를 너무 극단적이지 않은 형태로 소통하는 일.
집고양이와의 관계는 어떤 면에서 그런 일이다.
세상의 ‘고립’이 0, ‘과도한 연결’이 10이라면
옹구는 늘 그 사이 어딘가, 2~3 정도에 머물게 도와주는 존재다.
그렇다면 인간이라면 더 좋을까?
함께하는 인간은 기본이 4~5쯤일 텐데,
그조차도 때때로 버거울 때가 있다.
나를 바라보되 판단하지 말아 줘.
나를 바라보지도 말고 그냥 옆에 있어줘.
그런 기분이 들 때 고양이야말로 최고의 동반자가 아닐까.
그리고 고양이는 잊지 않게끔 ‘그를 케어해야 하는 빌미’를 꾸준히 만들어준다.
매일 아침 물, 밥, 응가를 챙기고,
퇴근해 돌아오면 바닥 이곳저곳에 털이 날리고,
서로 부둥켜안을 때 어느새 자란 발톱과
눈가에 낀 눈곱을 보며
‘아, 잘라줘야겠네. 닦아줘야겠네.’
하며 다가가게 만든다.
고양이는 인간의 미세한 감정 회복 속도를 최적화하는 존재다.
정말 효율적인 생존 시스템과 공생 시스템을 가진 생명체.
이 녀석.
그런데 귀찮다.
단점은 귀찮다는 것!
귀찮다고 말해도 못 알아듣는다.
손사래를 쳐도 다시 다가온다.
그러다 내가 너무 매몰차게 떼어냈나 싶을 정도로
나를 빤히 바라보거나,
나는 아무렇지 않게 내 일을 하고 있는데
계속 내 근처에서 식빵을 굽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기다리는 걸까, 내 관심을?’
싶다가도 막상 내가 다가가면 피한다.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되는 건
비단 인간의 관계, 연인의 관계만의 영역은 아닌 것 같다.
어떤 때는 그 실이 팽팽해지고,
어떤 때는 느슨해지지만
절대 끊어질 일은 없을 것 같다는 믿음.
그 믿음을 주는 존재.
말로 천 냥 빚을 갚지 않아도,
인간보다 조금 더 따뜻한 체온과
인간보다 조금 더 무심한 시선과
인간보다 조금 덜 상처 주는 행동과
인간보다 조금 덜 부지런한 너는
왜 이토록 사랑스러운지.
지금도 너는 내 팔에 너의 몸과 얼굴을 폭 기대어
네 모든 것을 온전히 나에게 맡기고 있다.
옹구야, 너는 꿈이 뭐니?
너는 2025년을 어떻게 보냈니?
2026년에는 무엇을 이룰 거니?
음냐옹—
냐옹도, 미야옹도,
한국어도 일본어도 영어도 아닌
너만의 언어로 말해줘도
나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괜찮아.
완전한 이해가 없어도 갈증이 생기지 않는 관계.
완전한 이해가 없어도 공존할 수 있고,
내 몸에서 옥시토신이 넘치게 하는 존재.
나는 옹구를 사랑해.
옹구의 오래 목욕 안 해서 조금 누렇게 보이는 털을 사랑해.
옹구의 그릉그릉 소리를 사랑해.
옹구의 어느새 자란 날카로운 발톱도 사랑해.
옹구의 귀에 자주 끼는 때도 사랑해.
그리고 그중에 가장 사랑하는 건
옹구의 쫑긋한 두 귀 사이로 정돈이 덜 된 정수리 털.
마구마구 만지고, 맡고, 먹고 싶어.
먹고 싶어, 귀여운 고양이 옹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