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은 존버하는 거야
요즘 스토아 철학에 관심이 생겼다. 이 몹쓸 기억력이 굉장히 한심할 정도로 출처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최근에 봤던 유튜브 영상이었는지 뭔지 세네카며 에픽테토스며 아우렐리우스를 운운하며 스토아 철학의 지혜를 설파하는 콘텐츠를 접했다 (라고 이 글을 쓰는 순간 생각이 났다!). <엑셀런스>라는 책에서 미셸 오바마의 마인드셋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 부분에서 미셸이 스토아 철학을 신봉한다는 맥락이 있었지, 맞아! (휴 기억력아 고맙다)
여하튼 다시 이야기하자면 요즘 스토아 철학에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이번 주에 빌려온 책 또한 스토아 철학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교양서 두 권이다. <가장 단호한 행복> 그리고 <스토아 수업>.
“내 손에 달린 것과 달려 있지 않은 것을 구분하자.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
이것이 스토아 철학이 전하고자 하는 하나의 메시지다. 내 식대로 이 메시지를 해석하자면 이러하다.
“쓸데없는 걱정일랑 제발 그만하고 일단 지금 할 수 있는 걸 해!”
생각이 많다. 이 많은 생각을 줄여보려고 일상의 틈이 생기지 않게 빼곡하게 스케줄을 짠다. 자기계발이니 성장이니 하지만, 단순히 ‘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은 것이 두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꾸 틈이 생기면 무언가 관심을 돌릴 다른 요소를 끼워넣기 바쁘고, 실질적으로 이렇게 요소요소들이 일상 속에 질서 없이 채워져 있으면 정작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모르게 되는 상황이 생겨버리는 것 같다.
지금이 그렇다. 나의 하루가, 일주일이 정말 바쁘게 흘러간다. 출근 전에, 퇴근 후에 내 삶은 ‘해야 할 것’들로 넘쳐난다. 그런 와중에 저녁에 폰을 보다가 술을 마시다가 게으름이라도 피우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흘려보낸 시간을 되돌아보며 자책을 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그 ‘해야 할 것’들이 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일까.
우선순위를 세우고 하나의 목표에 집중한다는 게 참 쉽지 않다. 특히 나를 둘러싼 상황이 내 맘같이 흘러가지 않을 때, 불황이어서 조직 분위기가 많이 안 좋다든지 집에 일이 생겨서 신경 써야 하는 일들이 생긴다든지 하면 내 삶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내가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건 무엇인지 혼란스러워지기 마련이다.
‘내 인생에 중요한 건 뭘까’, ‘내가 행복한 건 뭘까’,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인 상황에서 난 뭘 할 수 있을까?’ ‘왜 이런 일이 나한테 일어나는 걸까?’ ‘내가 지금 뭔갈 하지 않아서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러한 말풍선이 자꾸만 내 머리 위로 떠오른다. 그리곤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영역에서 사건 사고가 생기는 것을 지켜보는 데 무력감을 느낀다.
요즘 부쩍 행복하지가 않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그렇다고 해서 불행한 건 아닌데, 일상이 즐겁지가 않아 억지로 나를 끌어올리기 위해 더 악착같이 재미있는 걸 시도해보고 싶어지는 것 같다. 새로운 영화 관람도, 전시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썩 나에게 행복감을 가져다주지 않는 요즘이다.
지금 상황은 ‘존버’의 시간인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인생이 항상 즐겁고 내가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도 있고, 또 뭘 해도 잘 안 풀리는 시기도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동안은 그런 일, 시기가 나에게 찾아오면 도망치려고만 했다. 그 일을 한 게 내가 아니라고 어떻게든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발악했고, 잘 안 풀리는 시기에는 그 상황을 외면하거나 피하려고 했다.
‘존버’라는 말은 나에겐 썩 맘에 들지 않는 단어이다. 자칫 무능해 보이지 않을까, 내가 사회에서 쓸모없는 사람으로 비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 그런 것들이 나를 존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Grit, 끈기 혹은 투지로 해석되는 단어. 나는 위기가 찾아오면 도망치기 바빴다. 나는 그릿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요즘 내가 느꼈던 무력감은 어쩌면, 나의 착각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착각, 내가 노력하면 회사가 잘 될 거라는 착각, 사람들이 변할 거라는 착각. 회사는 잘 될 수 있다. 사람들도 변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하는 액션들과 이것들의 관계는 일대일이 아니다. 그것을 깨닫고 있다.
무기력의 시간을 지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세계를 조금 더 겸손하게 좁혀보기로 했다. 이유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까지 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으로 인해 결과가 좋지 못할 때 감당할 수 없는 나의 부정적 감정의 파도를 피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아는 것’, ‘그리고 그것을 망설이지 말고 적극적으로 해내는 것’. 이를 깨닫는 데 스토아 철학이 분명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미 도움을 얻고 있는 중이다.
계단을 잘 오르고 있다고 착각하던 나는, 지금 잠시 예상치 못한 층계참을 만나 덕분에 쉬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비유를 하자면 층계참의 시간을 갖고 있고,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존버’를 하고 있다. 관건은 존버의 시간을 얼마나 더 의미 있게 보낼 것이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는 최선을 다하되 그것을 넘어선 일은 과감히 내려놓을 것. 그리고 내가 원하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더 잘 알게 되는 시간을 보낼 것. 계단참에 앉아 앞으로 삼 개월 동안 내가 할 일은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