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 영화 <아멜리에>에 대하여

21세기 보바리 부인으로 당당하게 살아남기

by 김바리


2007년, 나는 내 인생의 가장 게으른 20대를 보내고 있었다. 사람과 과제보다 이불과 노트북에 둘러싸이는 것이 더 좋았던 그때의 나는 굽기를 좋아했다. 이불속에서 식빵 굽기, 따뜻한 물에 쪄낸 베이글 굽기, 그리고 렌탈샵 츠타야에서 빌려온 앨범 굽기. 음악과 영화를 그 어느 때보다 가까이했던, 만으로 스무 살의 나는 그렇게 인생 영화를 만났다.





https://youtu.be/o3OcLhAs8wQ





영화 ‘아멜리에’ 속 주인공 아멜리 뿔랑은 영국 다이애나 비의 사망 소식을 접한 충격에 놀라 들고 있던 향수 뚜껑을 떨어뜨린다. 도르르 굴러가던 뚜껑이 화장실 타일에 부딪히고, 깨져 나온 타일 벽 너머 깊게 파인 공간에서 작은 상자를 발견한다. 아멜리는 발견한 상자의 주인을 찾아주기로 한다.


d0039374_4e4ccf620eeef.jpeg 출처 Nova의 영화 세상



영화 속 인물들은 하나하나 다들 자신만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아멜리는 그들이 행복을 찾는 과정을 돕는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행복을 찾는 것을 소홀히 한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할아버지, 함께 일하는 레스토랑 직원이 여주인공의 행복을 돕는다. 결국 모두가 제각각의 방식으로 조금은 더 행복해진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 가 너무 좋았다. 나는 꽤 이기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의 행복에 내 주변 사람의 행복에 소홀했다.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아멜리는 가지고 있었다. 삶이란 무엇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하던 때의 스물한 살의 나에게 주변 사람의 행복을 찾아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멋지게 다가왔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하며 막상 자신을 위해서는 어찌할 바를 몰라 슬퍼하는 그녀에게 큰 연민을 느꼈다. 마치 그때의 나를 보는 것만 같았다.


영화를 공부하는 친구들과 인생 영화가 무엇인지 질문과 답을 주고받을 때 꽤나 거창하고 멋있는 이유들이 오고 갔다. ‘내 인생 영화는 <아멜리에>인데’. 여자 주인공에게 연민을 느끼고 영화 속 주인공의 감정에 공감하며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고 대답하는 게 너무 유치해 보이진 않을까 걱정했다. 그랬다. 20대의 나는 뒷자리 숫자가 0에서 5를 거치는 과정에서도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당당하게 표현할 줄 몰라 방황하고 있었다.


대학교 3학년 때 ‘영상 기호학’이라는 교양 수업을 들었다. 이미지를 기호학적으로 분석하여 그 속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찾아내고 토론하는 수업이었다. <아멜리에>가 빨강과 연두 색채를 중심으로 정서를 표현하는 방식, 장면 속 소도구 배치를 통해 보여주는 미장센,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방법 등 내가 왜 그 장면을 좋아했고 이 영화를 사랑했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제 어딜 가서 무언가를 ‘왜’ 좋아하는지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는 그런 경험이었다.


더 이상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말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그 후 더 적극적으로 비슷한 메시지를 전하는 시와 소설, 이야기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아멜리에에, 영상 기호학에 많은 빚을 졌다. 장영희를 에밀리 디킨슨을 마담 보바리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이들이 서로 어떤 관계가 있기에 좋아하나요?'라고 묻는 다면 여전히 나는 눈알을 요리조리 굴리며 머릿속에 떠다니는 다양한 단어들을 제법 그럴싸하게 조합하여 멋진 문장을 만들어보려 애쓰다 이내 포기하고 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가지, 나는 사람을 사랑하고 또 살면서 단 한 명의 소중한 행복을 위해 노력하고 싶은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보바리 부인이 시대적 상황 때문에, 자신의 변덕스럽고 열정적인 성격 때문에 포기해버린 그 멋진 삶을 살아내고 싶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 주인공처럼 한 겨울의 따뜻한 포켓 손난로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마음이 들게 해주는 <아멜리에>는 나의 꿈인 귀여운 할머니 되기를 이룰 때까지 꽤 오래 인생 영화로 남아있을 듯하다.



Amelie-1218.jpeg 출처 네이버 블로그 양파의 일기장



그런데, 내 짝꿍 ‘니노(아멜리 남주인공)’는 어디에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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