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씨네큐브에 걸린 영화포스터를 보고 이끌리듯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보았다. 영화는 주인공, 빌 펄롱의 심리에 집중한다. 빌은 일과를 마치고 집에 오면 가장 먼저 손을 씻는데, 석탄배달을 하면서 손에 낀 까만 때를 솔로 씻어낸다.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면, 이 일상적인 손 씻는 장면에서 빌의 내적 고뇌가 정점에 이르며 폭발적으로 묘사된다. 이후에 그는 주변의 현실적이고 이해되는 충고와 전혀 다른 선택을 하는데, 수녀원의 석탄창고에 갇혀있던 ‘세라’라는 아이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간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빌은 아이의 불행을 모른척하지 않는다. 이 선택은 앞으로 그의 삶이 어려워질 수 있고 딸들의 장래에도 부정적 영향이 있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왜? 아마도 친절하고 동정심이 어린 성품의 그가 자기 내면의 소리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동명의 원작 소설에서 빌은 마흔 살이다. 매일매일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가고, 아내와 다섯 딸들과 특별한 문제없이 살고 있다. 그렇지만 종종 마음이 공허하고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이고 어디에 있는지 고민한다. 어떤 면에서 밖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빌은 내적으로 중년의 위기를 맞고 있었을 수도 있다. 물론 여기에는 어린 시절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고, 수녀원에서 자행되는 폭력을 알게 되면서 그 부분이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된다.
아기를 낳고 빼앗긴 세라는 빌의 어머니와 같은 이름을 가졌다. 어쩌면 그의 어머니도 세라와 같은 처지가 되었을 수도 있고, 빌도 세라의 아이처럼 엄마와 이별을 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 만약 윌슨 부인의 받아들임이 없었다면. 빌의 어머니는 임신 후에도 계속해서 윌슨 부인의 대저택에서 일할 수 있었고, 빌은 12살에 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뒤에도 윌슨 부인의 친절과 격려 속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네드. 윌슨 부인댁의 일꾼인 그는 빌의 일상에 늘 함께 했다. 소설에서 보면, 아주 우연히 뜻밖의 사람을 통해서 빌은 네드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일상의 은총을 깨달았을 때, 빌은 아버지가 어디에 있는지 고민하던 아이 자아에서 벗어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윌슨 부인을 기억하면서 눈앞의 세라를 돌볼 수 있는 어른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소설과 영화에는 그 뒷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상상컨대, 외적인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쌓아온 사업적 명성이나 관계를 잃게 될 수도, 아내와 전과 달리 다투는 일이 잦아질 수도, 딸들이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좋은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어쩌면 빌이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는 순간이 오게 될 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은 세라와의 만남을 통해서 자기 내면의 소리를 따르게 되었고 세라와 자신을 함께 구원하게 된 듯하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는 문장을 곱씹으며, 빌의 공허한 마음이 삶의 의미로 채워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그리고 외부의 폭풍우를 맞으면서도 빌이 내적으로 더욱 성장하고 통합되어 가길 바라고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