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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역사, 환영합니다!

by 김상원

상담시간에 내담자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뜻하지 않은 주제가 나올 때가 있다. 어떤 경우에는 내담자가 의식적으로 회피하고 싶은 이야기가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되는 것이다. 한 예로, 나의 내담자가 예전에 살이 많이 쪘었던 때가 있었고 그래서 살찌는 것에 대한 걱정이 있다고 언급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치부'를 꺼내고 싶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말씀하셨다. 그래서 기분이 어떤 지 묻자, 속이 후련하면서도 두렵다고 한다. 그럴 수 있겠다 이해가 되는 지점이다.


우리에게는 흔히 ‘흑역사’로 불리는 과거가 있다. 부끄럽거나 후회스러운 경험이나 사건으로, 감추고 싶거나 심지어 아예 지워버리고 싶어지기도 한다. 흑역사가 알려졌을 때 받게 될 비난이나 자신의 이미지가 타격을 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 따르게 된다. 현대인에게는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고 이를 특정한 방식으로 유지하려는 욕구가 있다. 그래서 자신의 이미지가 손상받는 것은 곧 자아에 대한 위협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흑역사가 없는 역사가 있을까? 의도적으로 왜곡하거나 편집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역사책에 비유한다면, 아마도 우리는 정직하게 쓰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기록된 역사책을 보고 싶어 할 것이다. 유사하게, 우리가 스스로를 마주할 때나 관계 안에서 우리 자신을 드러낼 때 이런 태도가 도움이 될 것이다. 어두운 시간을 감추기보다는 용기를 내어 마주할 때, 우리는 성숙이라는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물론, 세상에는 다른 사람의 흑역사를 희화화해서 웃음거리로 삼거나 약점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있고, 불필요하게 스스로를 취약한 위치에 놓이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상담실에서는 모든 것이 환영받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렇게 말해본다. "흑역사,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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