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문화,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을까?

by 김상원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우연히 옆 테이블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세 사람이 함께였는데, 그중 누군가가 최근에 만난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그 사람은 상대의 MBTI 유형을 거론하면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하고 있었고(내지는 파악했다고 생각하는 듯 보였고), 일행들도 이에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나는 MBTI를 소재로 한 일상적 대화가 흥미롭게 여겨지는 한편, 적잖이 놀랐다. 분명 MBTI는 매우 대중적이고 인기 있는 대화의 주제이고, 나와 상대를 이해하는 유용한 언어인 듯하다. 나도 오래전에 심리학도로서 MBTI 검사를 받고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다. 지금처럼 MBTI가 대중적이지는 않았지만, 당시 심리학계에서는 잘 알려진 성격유형검사였다. 그런데 막상 이 검사가 유래된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MBTI는 거의 거론된 적이 없었고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배경에서 MBTI가 일상적 언어로 사용되는 문화현상이 내 눈길을 끌었다.


나는 왜 옆 테이블의 대화에 내심 놀랐을까. 아마도 사람을 대할 때 자동반사처럼 작동하는 분류(labeling) 때문이었을 것이다. MBTI가 제공하는 틀을 이용해 top-down 방식으로 상대를 빠르게 이해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 이는 시간과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 틀에 어긋나는 정보는 쉽게 걸러지거나 무시되면서 고정관념이 강화될 위험도 함께 안고 있다.


이러한 정보처리 방식만으로는 상대를 온전히 바라보고 이해하는 데 근본적 한계가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top-down의 반대 방향인 bottom-up의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는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분류의 충동에 잠시 제동을 걸고, 지금 눈앞에 주어진 정보를 가능한 한 충실히 살펴본다. 자연스럽게 판단이 유보되고, 그만큼 느리고 인내심이 필요한 과정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마음챙김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마음챙김은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해 온 top-down에서 벗어나, 낯설지만 보다 섬세한 bottom-up의 인지 과정을 활성화시킨다. 그럴 때 우리 앞에 있는 사람은 이미 알고 있고 파악했다고 여겼던 ‘뻔한’ 사람이 아니라, 매 순간 새롭게 발견되는 입체적인 존재가 된다.


기존의 틀에 그를 서둘러 끼워 맞추기보다는, 그가 지니고 있을 다양한 모습에 마음을 여는 것이다. 이때 내 앞의 사람은 더 이상 파악하고 처리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느끼고 알아가는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