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귀에 거슬린다.
한껏 귀가 예민해진 탓일까.
남편은 MZ세대 음악을 잘 듣는다.
운동을 하러 체육관에 가면 중학생부터 성인까지 있는데 요즘 음악을 알아야 꼰대가 안된다는 것이다.
벌써 주짓수 10년 차다 보니 이젠 관장님 급이라 여러 세대를 만나고 운동을 가르칠 때도 있는데
자칫 라테 시절 아저씨 역할만 할까 봐 그런단다.
동호회에서도 벌써 20대 회원들까지 있으니 그들의 문화를 모르면 대화가 안 된다고 한다.
거기까진 좋다.
생각이 참 괜찮다고 본다.
문제는 함께 차로 이동할 때 음악 소리가 크면 내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볼륨을 줄여도 뭔가 불편하다.
그나마 남편 덕에 최신 곡을 많이 들어서 조금씩 익숙해지긴 했다.
'뉴진스, 여자(아이들), 정국' 등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악도 듣고, 특히 최근 'BTS 정국'의 노래를 들으며
노래를 참 잘한다고 생각하던 중이다.
하지만 뭔가 불편하다.
자꾸 조용히 있고 싶다.
운전대를 남편이 주로 잡기 때문에 선곡의 우선권은 그에게 있는 편이다.
졸음운전을 하면 안 되니까.
시부모님을 모시고 외출을 하는 날에는 무조건 트로트다.
트로트 음악의 우수성을 알고 있지만 난 귀에서 피가 날 지경이다.
몇 시간씩 트로트를 듣는 날엔 귀가 헤롱헤롱해지는 기분이다.
그렇다면 나의 취향은?
어릴 땐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은 무조건 구입하고 라디오에 출연하면 공테이프에 녹음을 했다.
지금도 어딘가에 있을 텐데.
찾는다면 1996년 유영석의 FM데이트 '솔리드' 편일 것이다.
온갖 가요를 다 섭렵했고, 고등학교 땐 방송국 PD가 꿈인 친구가 있어서 고전 클래식 음악을 끼여 듣곤 했다.
한 때 영화학도를 꿈꿨던지라 고전 영화 음악이나 당시 영화, 드라마 ost는 싹 꾀고 있었다.
그러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대중가요를 잘 안 듣게 됐을까.
아마 아이들을 키우면서 인 것 같다.
자녀를 양육할 때 엄마는 다른 자아가 튀어나온다.
특히 나처럼 자식에 착 붙어있는 엄마라면 더 그러겠지.
우리나라 동요. 영어 동요, 심지어 중국어 동요까지 엄마의 취향은 동요 세상이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니 이젠 내가 뮤지컬 음악에 꽂혀 있다.
느리면서 격정적인 순간엔 한없이 감정을 고조시키는 게 딱이다.
'팬텀싱어'를 보면서 그 매력에 더 빠졌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이 있다니.
잔잔바리 격동의 음표가 뭔가 고급지면서도 마음을 동요시킨달까.
차로 이동해야 하는 일정에선 마냥 편하지가 않다.
또 나의 귀는 민감해지겠지.
나의 선곡을 들을 때도 있지만 요즘은 거의 남편의 선곡이다.
그럴 땐 난 그냥 아이들과 이야기하거나 이어폰을 꽂는다.
이미 10대인 아이들은 아빠와도 음악 취향이 맞고 나와도 맞다.
방송반인 둘째는 특히 대중가요나 영화음악을 좋아한다.
'위대한 쇼맨 ost'나 '지올팍'의 노래도 즐겨 듣는다.
아이들과 남편이 게임 유튜브를 보는 게 싫은 건지 원래 시끄러운 소리라서 그런 건지 모르지만
밤에 술 한잔 하면서 유튜브를 보는 남편도 별로다.
소리를 줄여달라고 요구하면 볼륨을 최대한 낮추는데 그냥 처음부터 아이팟프로 쓰면 안 되겠니.
이건 뭐 남편 디스하는 글 같지만 딱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내 귀가 예민해졌다는 말.
점점 요즘 음악에 적응도 되고 알아가고 있지만
역시나 지금의 취향은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잔나비'의 노래를 들으며 분위기에 취해 글을 쓰다가도
꽂히는 한국어에 생각이 방해되면 이 또한 시끄럽게 들린다.
그럴 땐 팝송을 들으며 가사를 아는 노래를 빼놓고는 안 들리니 다시 편안해진다.
나도 꼰대가 안되려면 남편처럼 계속 요즘 노래를 들어야 할까.
머리로는 가사 좋네. 인기 있을 만하네 하면서 듣지만
마음으로는 그냥 다 시끄럽다.
그래서 한동안 ASMR을 들었나 보다.
인간의 인생에서 음악을 뺀다면 참 퍼석퍼석 메마르겠지?
어떤 노래엔 누군가의 소중한 인생이 담겨있기도 하니까.
추억이 방울방울 매달려 있기도 하고.
다시 한번 음악을 사랑했던 그때의 나를 소환해 보겠다.
하지만 내 귀를 편안하게 하는 것도 포기할 수 없다.
편견 없이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남은 음악 인생 잘 꾸려봐야겠다.
아직은 여전히 시끄러운 게 싫다.
아침이라 밖에서 새소리가 들린다.
편안하다.
이래서 자연의 소리를 찾게 되나 보다.
물 흐르는 소리, 비 오는 소리, 새 지저귀는 소리.
아, 조용히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