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의 품격 2
메모가 중요하다고 이전 글에서 언급을 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20대에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교사를 하면서
수업이 끝나면 길 건너 시립도서관에 가곤 했었다.
책을 한 아름 빌려서 집으로 걸어가는 게 당시 루틴이었는데
그나마 운동 겸 버스비를 아껴보겠다고 걸어서 갔었다.
도착하면 얼른 씻고 앉아 책을 읽고 예쁜 다이어리에 날짜와 제목을 쓰고
남기고 싶은 문장들을 기록했는데
이게 나의 첫 번째 메모장이었던 거다.
기록하는 방법이 그때의 나에겐 오로지 노트와 펜이었다.
지금처럼 블로그도 티스토리도 SNS도 없는.
오로지 이메일만 보내던 그 시절엔.
다시 읽어보고 곱씹어보고
이런 문장을 메모했었나 의아해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다시 읽어보는 재미라는 게 있었는데 지금은 글감을 위해서만 메모하는 느낌이랄까.
물론 산책 중에 장 보는 중에
아니면 일하는 중간에도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들을 키워드로 적어놓는 편인데
사실 글이란 게 가장 좋은 게 어떤 생각이 팝콘처럼 튀어 오르는 그 순간에 써야
쭈욱 쓸 수 있는 게 아니던가, 후에 고칠지라도 말이다.
영화를 보는 중간에 적고 싶은 대사가 생각나는 순간처럼 메모는 너무나 필요한 것임에는 분명하다.
적어놓은 노트나 메모를 다시 보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어디에 적어놓은지조차 잊고 있다가 생각이 아예 안 나거나
이 생각 안나는 상황 때문에 다시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예지는 기억에 답답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기억력이 쇠퇴해져 가는 것인지, 뇌용량이 줄어드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대환장의 콜라보 속에서
지금 글을 쓰지 않으면 아, 이마저도 사라지겠구나 싶은 게
알면서도 상황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지금 당장 일을 해야 하고, 식사 준비를 해야 하는 일상의 시추에이션이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리해 보기로 했다.
메모하는 습관은 좋은 것이니 꼭 유지한다.
메모장과 볼펜은 늘 핸드백 속에 있다.
평소 가지고 다니는 일상백(bag)은 바꾸지 않으니 충분히 지킬 수 있다.
(가방을 바꾸는 날엔 카드 하나라도 잊고 나가기 마련이다)
혹시나 집에 돌아와 바로 글을 쓰지 않는다면 실망하지 않기로 했다.
작년 겨울 코트에서 생각지 못한 만원 짜리 돈을 발견하면 기쁘듯이
우연히 들춰본 메모가 선물처럼 다가올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중에 보면 별거 아닐 수도 있고
아니면 그 메모에서 또 다른 생각이 도출될 수 있을 테니까.
기록하자.
최대한 바로 글로 쓰자.
혹시 안돼도 실망하지 말자.
뫼비우스 띠처럼 돌고 돌아 다시 올 거라고 생각하자.
그 메모가 필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