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를 생각 안 했네

by 마음돌봄
스토리텔링 = 스토리(story)를 이야기(telling)하다.


글을 쓰면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다.

스토리텔링. 그리고 재미.

요즘 핫한 웹툰이나 웹소설을 보면 훌륭한 스토리 라인과 개연성이 있고, 소설인걸 알면서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무언가가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 역시 재미없다 느껴지는 책이나 영화는 보지 않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다.

고전 소설도 뭔가 격정적인 치정극이 저변에 깔려 있거나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함께 휘둘리는 주인공들의 인생사가 커다란 재미이지 않던가.

<폭풍의 언덕>에서 히스클리프의 존재로 멀쩡한 삶들이 말 그대로 폭풍의 눈이 되어 버리거나 <제인 에어>의 가냘프면서도 강단 있는 모습을 동경하게 되는 뭐 그런 이야기와 서사.


글을 쓰면서 처음 생각은 오늘은 글감은 무엇인가.

그래 저번에 다이어리 귀퉁이에 적어 놓은 것 아니면 아까 갑자기 길 걷다 생각난 것.

뭐 이런 식으로 글감을 수집하기에 빠빴다.

두 번째로 생각하는 건 글의 양.

너무 짧은 건 안되고 글쓰기 연습도 하는 거니까 일단 길게 쓰는 연습을 해보자 뭐 이런 식.









그러다 문득 '내 글이 재미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내가 혼자 막 재밌다고 쓴 글도 있는데 독자들도 재미있나.

극적인 구조도 없는 것 같고, 반전은 안보이며 그냥 신변잡기 같은 글이라고나 할까.

물론 수많은 일기들이 책으로도 나와있는 건 익히 알고 있다.

내 글도 21세기 어느 한순간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것일 테니까.

나중에 후세 사람들이 '어라 저 때 마흔 즈음의 여자는 저러고 살았나 봐' 뭐 이럴 수도 있지 않을까.


웹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가 생각났다.

이런 글의 형태가 있다는 건 진짜 몰랐다. 동생이 당시 카카오페이지에 웹소설을 연재하고 있었는데

절대 작가명이나 글을 공개하지 않아서 제대로 모른 것도 한 몫했다.

출판사와 미팅이 있다고 해도 저게 진짜 맞나 생각도 들고 하루 종일 노트북에서 글만 쓰는 걸 보면서 작가이긴 한가보다 싶었다.

여전히 동생의 작가명과 글을 비밀이다. 언제 말해줄런지. 아마도 29금 소설을 썼나 보다.


첫 웹소설은 뱀파이어 비슷한 남자와 여리디 여린 여주인공의 이야기였는데 판타지가 섞여 있으면서 뭔가 도양의 프린스 느낌이 났다고나 할까. 글이라는 것이 정말 느껴지는 분위기가 있고 거기에다 그림 작가의 삽화까지 덧입혀지면 하나의 온전한 캐릭터로 탄생하고 만다.

두 번째 소설은 대기업 회장 비슷한 남자와 비서의 사랑이야기. 뭐 지금까지 많이 소비된 플롯이지만 당시 나에겐 꽤나 획기적이었고, 처음 읽은 두 웹소설 다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이었다.

이젠 웬만한 웹소설을 읽으면 아니 읽기도 전에 제목이나 삽화를 보면 나름의 느낌이 온다.

대박이네. 이 작가님은 천재인가. 연타석 홈런이겠다 뭐 이런 느낌들.


내 글은 고사하고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되겠다 아니다 작두를 타고 있다.

물론 이미 엄청난 필력의 작가님들이지만.

잘 쓰인 작품들을 보면 엄청난 내공이 느껴진다.

재미가 있는 건 말할 필요도 없고.

요즘 웹소설, 웹툰은 거의 무조건 드라마화되는데 몇 년 후엔 어떨지 모르겠다.

아직 필력도 안 되는 내가 유행을 쫓아갈 수만도 없고.

로맨스, 판타지 이런 것만 거의 읽지만 내 속의 로맨스 지수는 세이 굿바이를 외친 지 오래이다.

한 5년은 비가 안 온 땅처럼 메말랐다고나 할까.








몇 년 동안 드라마나 소설책을 읽지 않았었는데, 조금씩 나의 알을 깨준 작품이 있다.

중요한 건 일단 표지가 감각 있고 이뻐야 한다는 거다.

글씨체도 좀 중요하다.

당기는 글씨체가 있다.

바로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라는 책이 다시 소설을 읽게 만들었다.

읽으면서 이런 걸 써야 하는데, 아 이 느낌 아는데 난 안되고. 혹은 너무 좋다. 탄성이 터지는 느낌.

주인공 영주의 상황이 공감되고 이런 서점을 가고 싶고, 갖고 싶고 뭐 이런 기분.

이후로 <책들의 부엌>이나 <불편한 편의점> 같은 소설도 읽고, <리빙스턴 씨의 달빛 서점>을 읽으며 소설에 푹 빠지기도 했다.

영국병이 있는 걸 아는 지인 작가님들에게 <리빙스턴 씨의 달빛 서점>은 추천하기도 했으니까.

뭔가 맹숭맹숭한 것 같지만 소소한 사건이 있는 책이다.

마치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처럼.

처음 그녀의 소설을 읽었을 땐, 뭐 이런 신변잡기적인 게 소설이 되네 하는 느낌이었는데 굉장히 건방진 생각이었다. 무조건 제인 오스틴이라면 빠져들 수밖에 없어서 그녀의 책은 모조리 읽었다.

격정적인 클라이맥스가 없이 잔잔하면서도 위트 있는 문장들에 빠져들었다. 아마도 대부분의 책을 사랑하는 여인들이 그녀의 책을 좋아하리라 확신한다.

이름도 '제인 오스틴'이라 뭔가 영국 그 시대의 느낌을 갖고 있다고나 할까.

'제인 마치'처럼 제인이란 이름이 주는 아름다움이 있다.

이건 뭐 이름도 워킹 실력만큼이나 모델스러운 '지젤 번천'처럼 딱 이름이 주는 굴복할 수밖에 없는 느낌.


잔잔한 시냇물인 줄 알았는데 파도처럼 밀려오는 글.

술술 읽히고 쉬운 글.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지식이 많다고 아는 것을 다 쏟아내는 거 말고.

저 사람 책은 뭔가 쉬워서 손이 가네. 재밌네. 술술 넘어간다 이런 소리를 듣는다면 최고인 것 같다.

적당한 교훈도 있고, 적당히 반전 있고, 결론에 가선 안심하게 되는 그런 글.








우선 재미부터 시작해 봐야겠다.

벌써 두렵다. 재미있는 글.

재미있는 사람부터 돼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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