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픽션을 쓰고자 한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 - 버지니아 울프-
버지니아 울프는 글을 쓰려하는 여성들에게 자기만을 먼저 마련하고 500파운드의 현금, 지금으로 치면 5000만 원 정도는 꼭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1년에 500파운드이다. 그렇다면 대단히 중요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단언한다.
뛰어난 문인이었지만 전문직이었던 아버지는 아들들에게만 많은 학비를 지불했다.
어머니는 순종적인 여성의 역할만을 강조했으며 버지니아는 평생 '버지니아, 차를 내와야지'라는 말이 들리는 것 같은 착각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지적 욕구를 엄청난 양의 책을 읽어냄으로써 증명할 수밖에 없었다.
브론테 자매 또한 어떠한가. 너무나 가난해서 <폭풍의 언덕> <제인 에어>를 쓸 종이를 한꺼번에 한 첩 이상 사들일 여유가 없었다. 글 쓰는 작업실 또한 없어서 가족 공동의 거실에서 온갖 간섭을 받아가며 글을 써야 했다.
제인 오스틴 또한 생에 마지막 그날까지 자신만의 서재를 가져보지 못했다.
거실 한 귀퉁이에서 글을 쓰다가 누군가 응접실의 출입문을 밀고 들어오면 황급히 원고를 숨기고 차를 준비해야 했다.
조앤 K. 롤링은 동네 카페의 비좁은 테이블에서 유모차에서 잠든 딸을 봐가며 책을 썼다.
해리의 2층으로 가는 계단 밑 작은 창고 같은 공간에서 말이다.
소설가 오정희는 주부로서의 역할이 끝난 시간에야 글을 쓸 수 있었고, 빈 원고지 앞에서 암담하고 참담한 모습을 가족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나도 나만의 방은 없다.
500파운드의 돈도 마련되지 않았다.
거실 긴 책상에 앉아 스탠드를 켜고 앉아있는 지금이 그냥 '자기만의 방', '자기만의 공간'이다.
하지만 그녀들처럼 위대한 작품은 아닐지언정 글을 쓰고 있다.
예전엔 아예 글을 쓸 생각을 하지 못했으니까.
이런 이야기들이 감히 글이 될 거란 생각을 못했다.
전문적인 글들도 많지만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가 글이 되는 브런치 스토리라는 세상 속에서
글을 쓰고 있다.
절대 내가 쓸 수 없는 전문가 영역의 글들을 보면서 '아, 이 정도는 써야 하는데.'라는 생각도 하고 자신이 좀 초라한가 생각도 했지만 그것은 다름의 차이일 뿐 상하의 차이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평범한 일상도 글이 될 수 있다.
글쓰기는 그 자체가 인생이니까.
쓰는 인생은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쓰는 것이 아니던가.
소설 속 사람들도 에세이 속 사람들도 시 속에서도 SF소설도 결국은 인간이 사는 다채로운 형태를 그려놓는 것이다.
더군다나 커피 한 잔에 하루를 보내며 쫓기며 글을 쓰지도 누군가가 볼까 봐 황급히 글을 덮을 필요도 없는 내가 이런 모든 상황에 감사하며 살아야 맞는 게 아닐까.
위에 언급한 작가들의 책을 읽으며 글 쓰는 삶을 꿈꾸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만의 절박함을 만들어야겠다.
그리고 감사해야겠다.
매달 25일이면 카드값에 헛헛하지만 글을 쓸 수 있어 감사합니다.
'글쓰기 그거 돈이 됩니까'라고 농담인 듯 물어보는 것도 감사합니다.
엄마의 글을 응원해 주고 느낌을 표현해 주는 아들들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먼저 견뎌주고 애써준 그녀들에게 감사합니다.
버지니아 울프, 제인 오스틴, 조앤 K. 롤링, 에밀리 & 샬롯 브론테.
아울러 세탁 공장에서 빨래를 와는 와중에도 글을 쓴 스티븐 킹 작가여.
계란말이를 하고 김치를 써는 중간에도 글을 썼다고 말할 나를 꿈꿔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