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콤한 떡닭볶음과 쉽게 먹을 수 없는 동파육까지 앞에 두고도 위가 역류하는 느낌인지 진짜 역류성 식도염인 건지 게워내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과거 간호사였던 한 선생님(현 대형어학원 원장)은 이렇게 말해주었다.
"내일부터 하면 돼요. 그 병원에서 준거 약이랑 액체약 잘 먹고요. 진짜 식이섬유 종류는 하나도 먹으면 안돼요. 아유, 대장에 걸려있는 미역이며 김이며 얼마나 고생했게요. 그리고 세척하는 것도 어찌나 힘들던지. 일단 업체 맡기기 전에 사람 손은 무조건 들어가야 하니까. 이왕이면 대형 병원 예약하지 그러셨어요."
그 말을 듣고 나니 마음속에 약간의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시간을 맞춰 약을 먹는 것부터 그 약을 먹고 난 후에 화장실을 자주 가야 할 텐데 수업 중에 가고 싶으면 어쩌나 안절부절 걱정을 하게 되었다. 음식을 못 먹는 것도 한몫했다. 아이들이 먹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에게 먹는 행위란 얼마나 삶에 큰 위로가 되는지 새삼 깨달았다. 맛있다고 느끼는 감각. 씹어 넘기는 행위. 긴 일과를 마치고 돌아온 후 먹는 뜨끈한 어묵 국물이 주는 그 위로. 이틀은 느끼지 못할지니.
일요일부터 강제 굶기에 들어갔다. 바나나와 감자만 반복해 잠깐 먹고 물만 계속 마셨다. 물은 연신 마셔댔다.
내 인생에 이렇게 물을 마신 게 언제던가. 평소에 이랬으면 참 건강했겠지.
포카리 스웨트 같은 이온 음료도 괜찮다길래 남편에게 사 오라고 했다.
물 말고 다른 맛을 느끼고 싶었다. 물 맛이 영 익숙지 않았다.
두부와 이온 음료를 들고 들어온 남편, 제발 의사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합시다.
"여보, 왜 게토레이 사 왔어? 포카리 스웨트라고 여기 적혀 있는데."
"아, 응. 게토레이가 싸길래."
하, 제발 전문가의 말을 무시하지 말고, 글의 행간을 잘 읽자.
분명 무색의 이온 음료라고 되어 있다.
월요일 아침엔 본격적으로 남은 알약 14개를 아침 6시부터 털어 넣었다.
그전에 물을 300CC 마셨다.
식은땀을 흘리고 나니 더 몸이 묵직하다.
알약 14개를 천천히 물과 함께 마신다.
움직일 기운이 없어 침대에 기대고 누웠더니 갑자기 신물이 올라온다.
개운하게 욕실 바닥에 쏟아냈다.
다행히 건더기는 없고, 폭포수처럼 액체만 왈칵 쏟아낸다.
사실 하마터면 6시에 알약을 먹지 못할 뻔했다.
남편이 사용 설명서를 7시 30분까지 먹어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 제발 전문가의 말을 무시하지 말고, 작가의 의도를 파악해 보자.
분명 6시에 일어나 물 300CC를 마신다. 알약 14알을 물과 함께 7시 30분까지 천천히 먹는다. 8시 30분까지 물 1L를 천천히 마신다. 8시 30분에 가스콜을 마신다. 이후엔 물 금지. 병원에 운전하지 말고 오기.
분명히 쓰여 있다.
시간에 맞게 잘 먹고, 어지러울 수 있으니 운전은 하지 말란다, 이 남자야.
분명 우리는 수능을 치른 세대이므로, main idea 찾기와 작가의 의도 파악에 익숙해져 있다.
이런 항목에서 제발 창의성을 발휘하지 말지어다, 남자여.
병원에 도착했다.
남편보다 한 시간 후에 예약된 나는 책 한 권을 챙겨 왔다.
바로 'H마트에서 울다'라는 책이다.
작가는 암으로 돌아가신 엄마의 이야기를 한다.
불현듯 깔끔한 병원이 무섭게 느껴지고, 몇 달 전 대장내시경을 하셨던 우리 엄마가 생각났다.
일한다는 핑계로 함께 가지 못해서, 동생이 엄마를 모시고 다녀왔는데
내가 얼마나 무심한 딸인지 깨달았다.
엄마도 이렇게 속이 느믈거리고 힘드셨을 텐데, 역시 사람은 자기가 아파봐야 남을 이해하는 어리석은 존재인가 보다.
책이 흥미롭고 재미있었지만 나의 신경은 온통 내시경에 쏠려 있었다.
위내시경도 하니 입 속도 강타 할 것이고, 대장 내시경도 하니 아래도 강타할 것이다.
그 순간 어제 오후에 봤던 '하와이 대저택'의 영상이 떠올랐다.
요지는 사람들이 너무나 목표에만 심취하느라 목표 달성 이후의 삶에 대해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월 1000만 원 수입을 달성했다.'
'외부 강의 3건을 달성했다.'
'올해 임용고사는 반드시 합격한다.'
이런 식으로 목표를 이루는 것에만 목적을 두다 보니 늘 인생이 같다는 것이다.
목표를 이루면 또다시 반복되는 변화 없는 삶.
목표 달성 이후를 상상하라고 했다.
월 1000만 원 수입을 달성하면 50퍼센트는 무조건 적금이다. 30퍼센트는 투자이다.
또 자신이 그 돈으로 여유 있게 살면서 하고 싶은 걸 하는 모습.
가족들이 축하해 주고 기뻐해주는 모습.
더 이상 매일 출근하는 일상이 아닌 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일을 하는 모습.
이렇게 그 이후의 모습을 생생하게 생각하라고 했다.
나는 그것을 실현하기로 했다.
더 이상 내시경을 두려워말고(사실 많이 두렵고 긴장됐다), 이렇게 자꾸 상상했다.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이 내시경 할 때 힘들지 않게 해 주세요.
편안하게 한숨 자고 일어난 느낌으로 다 끝나게 해 주세요.
끝나고 남편과 편안하게 식사하는 모습
침대에 누워서 책을 읽다가 자는 모습을 자꾸 생각했다.
간호사 선생님이 내시경 순서 설명과 이후 관리, 부작용까지 설명하며 사인을 받을 땐
긴장이 배가 됐지만 믿기로 했다. 상상한 미래가 올 것임을.
간호사 두 분이 입에 무엇인가를 끼우고 채혈을 했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약간 추웠지만 내시경 검사는 무사히 끝났고, 장을 깨끗이 하고 왔다는 의사 선생님의 친절한 설명을 들었다.
다행히 용종이랄 것은 없고 조직을 살짝 떼어내는 정도로 끝이 났다.
뱃살을 빼야 피하 지방이 많이 없어질 것이며, 예상대로 운동을 해야 한다는 말.
그리고 역류성 식도염이 있으니 약을 처방해 주겠다는 말을 들었다.
인바디까지 체크하고 나니 드디어 오늘의 내시경 검사가 끝이 났다.
미래는 내가 생각한 대로 이루어졌다.
검사는 무사히 잘 끝났고, 결과도 좋았다.
수면내시경 중에 헛소리도 하지 않았고, 반수면 상태에서 검사하는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죽과 보드라운 빵을 사고 집으로 들어왔다.
침대는 온천처럼 따뜻했고, 죽은 달콤했다. 생전 먹지도 않는 호박죽을 먹었는데 설탕처럼 달아서 절반 밖에 먹지 못했다.
블루베리 생크림이 있는 폭삭한 빵이 마음까지 감싸는 것 같았다.
역류성 식도염 약은 당분간 먹어야겠지만,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잔을 천천히 마셨다.
이제 내가 상상할 일은 뱃살이 빠진 나의 모습이다.
피하지방을 제거하고 근력을 키운 나의 웃는 모습을 상상하며 사는 것뿐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병원은 점점 더 무서울 것 같고, 늙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씩 밀려오는 요즘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