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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돌봄 Oct 14. 2024

혼자 살고 싶다는 거짓말

'진짜 집 얻어서 나가라는 말 들었을 때, 순간 어느 동네로 가지. 이런 생각부터 들었어.'

최근 만난 남사친 A는 이런 말을 했다. 

친구들과 모인 자리, 연말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애매한 시기. 소설 같은 말.

어쩌면 우리 인생이 소설 속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애써 시트콤 속 삶인 양 평범하게 살아갔는데, 부부 싸움의 간극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면 꺼내온 말에 친구들 모두 다양한 표정이었다. 

최근 이혼한 사람들이 출현하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거나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는 그는

평행선처럼 달리는 부부와의 대화에 희망이 있을까 생각하는 나날이라고 했다. 


사소한 말 한마디를 부풀리고 부풀리거나 주제와 다른 길로 가다 보며 서로를 비난하고 탓을 하게 된다. 

핵심 내용이 아닌 지엽적인 부분에 서운하고, 분노하고, 한참을 곱씹게 된다. 

미안하다는 말은 쉽지 않고, 간혹 부부 관계가 아니어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게 멈칫할 때가 있다. 

지금 미안하다고 하는 게 맞나, 이게 미안하다고 할 일일까, 미안하거나 죄송한 게 뭘까 하는 근원적인 부분까지.


설거지하는 법, 신발 정리 하는 습관과 그렇지 않은 습관, 막 벗어놓은 옷을 식탁 의자가 아닌 본인 방에 걸어줬으면 하는 마음까지 우리네는 맞춰갈 작고도 사소한 부분이 많다. 

방금 먹고 난 유산균 봉지 쓰레기는 바로 휴지통에 버려줬으면 좋겠다. 

빨래가 쌓여있을 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개켜서 정리해 줬으면 좋겠다.

세탁함의 바지 속 주머니에 쓰레기가 들어있는지 일일이 확인하지 않도록 빨래를 넣는 사람이 알아서 정리해서 빨래함에 넣어줬으면 좋겠다. 

내가 해놓은 설거지를 그다음 날 물기가 빠졌을 때, 그릇과 컵을 제자리에 정리해 줬으면 좋겠다. 

물값 내가 낼 테니 또 설거지를 이중으로 하든 신경 쓰지 말라며, 당신이나 제대로 하라는 말에 싸움으로 번지는 대화가 종국엔 남자가 잘못했다고 싹싹 빌어야 하는 결말이 더 이상 싫다고, 그래서 이젠 무조건 미안하다고 하고 싶지 않다고, 참다 참다 건넨 말에 아빠는 폭력적이라며 득달같이 달려드는 사랑하는 딸들의 모습이 섭섭하고 답답하다 말하는 친구는, 개인의 행복을 위해 '헤어짐'이라는 선택지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겠다 말했다. 




사진: Unsplash의Evelyn Semenyuk


우리는 누구나 행복 추구권이 있고, 자기 삶을 주도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살림이 여자의 일이라 생각하고 자신이 도와주는 거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는 친구의 말에 정말 집안일 많이 하는 거 안다고, 너처럼 처가에서도 하는 사람 없다고 말해주면서도 사실, 여자들도 우리 세대 요즘 여자들도 살림을 당연히 내 일인 양 배운 게 아니라고 그냥 평범한 딸이었다고 말했다. 살림도 잘하고, 재테크도 잘해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고, 자식도 보란 듯이 키워내는 게 엄마의 일이자 아내의 일이라고 암묵적으로 동의된 사회에서 사는 게 우리도 쉽지 않다고.


단지 부부가 세월이 갈수록 서로 맞춰가며, 싫은 부분 서로 하지 않고 존중해 주고 대화를 하고 싶지 싸움으로 번지는 게 싫다는 친구에 말에 네 말이 맞다고 맞장구를 치며 그래도 부인의 입장도 있을 거니 대화를 더 해보라고 아니면 상담을 받아보면 어떻겠냐고 이야기를 하다가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 떠올라 불현듯 위대한 작가의 혜안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냥 서로 잠깐만 양보해 주는 거, 그래 미안해. 이거 싫어하지. 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원하는 그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밖엔. 그리고 잠시 나를 돌아보기. 부부라는 게 뭔지, 인간사이 감정이란 게 무언지 한참을 들여다보게 된다. 남자라는 가장이라는 무게에 힘든 그들이나 엄마, 아내, 며느리라는 자리에 있는 우리네나 다 같은 존재들일뿐인데. 그냥 따뜻한 말 한마디 인간이 인간에게 건넬 수 있다면 참 좋겠는데. 삶은 어쨌든 흐르고 있고, 나를 보고 자라고 있는 아이들이 또 그런 삶 속으로 들어가고. 막힌 하수구 뚫듯 뻥 뚫리길 바랄 수밖에.

헤어짐이 절대적인 정답이 될 수 없듯이 그냥 뚫고 가라고 말할 수밖에. 


작년, 집에서 나가는 게 어떻냐는 아내의 말에 순간 그럴까 하다가 이것저것 알아보기 귀찮아서 안 했다는 그의 말에, 거봐 너도 그렇지. 그게 아닌 거지 하면서 웃어줬지만, 씁쓸한 그의 웃음에 뒤끝에 보인 절망에 조용히 응원을 할 뿐이다. 여자 대 남자가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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