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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필사

by 마음돌봄

본격적으로 필사를 시작한 지 N년 정도 된다. 고전 독서에 관한 글을 투고했다가 출판사로부터 영어 고전 필사 책을 써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받게 되었다. 필사책이라라니, 내가 필사를 그만큼 염두에 두고 살았던가. 간혹 유명 작가들이 <무진기행>이나 <토지 1>를 필사를 했다고 말하며, 글쓰기 실력 향상의 일환으로 권했을 때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순간엔 남의 글을 베끼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되겠냐 생각했었고, 딱히 재미있는 일이라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책을 쓰게 된 것도 좋아하는 고전 책을 실컷 읽을 생각에 덥석 시작했는데 아뿔싸 내가 가랑비에 옷 젖듯이 필사에 빠져들 줄이야. 사실 우리 모두는 글을 쓰며 살아가고 있고, 필사도 이미 하고 있다. 책을 읽다가 좋은 구절을 일기장 한구석에 옮겨 적거나 카카오톡 프로필에 나에게 힘을 주는 문구 하나 정도는 올려놓지 않던가. 그렇게 따지면 꽤나 오래 필사를 해온 셈이다. ‘재산깨나 있는 남자에게 아내가 필요하다는 진리’를 피력하거나 ‘남을 비난하게 전에 생각해라, 남들이 너보다 더 유리한 입장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이라며 조언하는 인물들의 말을 옮겨 적으며 고개를 끄덕여보고 이런 문장을 쓴 작가의 필력에 무한한 감동을 느낀다. 문장 하나를 베껴 쓰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렇게만 끝난다면 이는 필사의 절반만 한 것이다. 필사의 꽃은 그 이후다. 오늘 베껴 쓴 문장을 곱씹어 읽어보고 내 생각을 적어보는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의 문장은 타인을 대하는 태도 면에서 나에게 지표가 되고 있다. 우리는 쉽게 남 이야기를 하거나 타인의 행동을 비난하곤 한다. 당장 집에서도 어떠한가. 아이들의 태도가 못마땅할 때 순간 화를 내고 뒤돌아 후회하지 않던가. 문장의 힘이란 실로 놀라워서 나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 된다. 때론 문장 하나를 쓰는 그 순간 차분해지고 깊은 생각을 하게 되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 사각사각대는 연필의 느낌, 부드럽게 휘어지는 펜의 질감 속에서 꽤나 소란했던 마음의 소리가 일렬종대하고 누워있는 냉동실 속 국수 가락처럼 일정한 크기로 정리가 된다. 마음뿐만이 아니다, 더 좋은 글, 진솔하고 유려한 문장의 이중적 하모니를 갖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져간다. 아름다운 문장을 베껴 쓰는 것은 단순히 활자를 옮기는 일이 아니다. 작가의 마음을 오롯이 느끼고 나의 언어로 재탄생 시키는 일이다. 문학 작품을 옮겨 적으며 문장의 위대함을 신문 기사나 칼럼을 옮겨 적으며 기승전결이 있는 글을 느끼고 내 것으로 흡수하는 시간은 그 어떤 글쓰기 수업보다 내실 있고 온기가 감도는 순간이다. 그것은 내 언어로 바뀌는 순간 나의 감정과 생각이 깃든 살아있는 문장이 되기 때문이다.






‘도착하길 바란다면 달려가야 한다. 그러나 여행을 하고 싶은 거라면 걸어가야 한다’는 장자크 루소의 <에밀>속 한 구절을 보며, 인생이란 여행을 어떤 태도로 항해해야 할지 잠시 생각해 본다. 결국 필사의 과정은 좋은 글에서 감동을 받는 것이 다가 아닌 나의 삶을 재정립하는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오직 마음으로 봐야 한다는 어린 왕자의 말처럼 몇 문장의 문장은 국수 가락을 재빨리 호로록 거리며 먹듯이 읽어낼 것이 아니다. 좋아하는 책 속 익숙한 문장, 때론 미처 몰랐던 문장을 필사 책에서 발견하는 기쁨도 쓰는 마음을 계속하게 한다. 좋은 책을 발견하는 것은 덤이다. 내가 몰랐던 멋진 책을 발견하는 기쁨이 꽤 쏠쏠하다. 한 글자 한 글자, 한 문장 한 문장을 옮겨 적으면서 복잡다단한 마음을 정리하고 새로운 생각으로 입혀본다. 차곡차곡 정리된 마음으로 하루를 또 시작한다. 매일 쓰며드는 하루는 자신과 타인에게 좀 더 너그러워지면서 돌아보는 기회가 된다. 매일 아침 필사로 하루를 시작하는 이유다.





고전 문학을 영어로 필사하고 싶다면,

마음돌봄의 신간 <하루 한 장 일상이 빛이 되는 영어 고전 필사>책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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