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에 설득되다.

by 마음돌봄

'아주 야무져 보이네. 뭐든 잘하겠다 얘."


어렸을 때 어딜 가든 듣던 말이다. 동네 빵집을 가도, 학교 숙제로 동사무소를 친구들과 탐방할 때도

어른들의 눈에는 내가 야무지게 보였나 보다. 실제는 약간 소심하기도 하고 쭈뼛거리기도 하는 아이였는데 말이다. 겉으로라도 그렇게 보이니 다행인 건가. 대한민국에서 누구나 소싯적 반장 어린이 안 해본 사람 있을까. 초등학교 때 반장과 고등학교 때 반장은 소위 그 '명예'가 다르다. 초등 때는 그저 경험의 일환이나 순수한 마음으로 고등학교 때 반장은 더러운 마음이라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진지한 성찰로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반장의 경중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니 반장 이야기는 이쯤에서 하기로 한다.


어른들의 눈에는 다부져 보이는 얼굴과 믿음직한 무언가가 보임과 동시에 말 잘 듣는 모범생이라는 모습이 나에게 있었던 것으로 사료된다. 하나 실상은 소심쟁이에 눈물 공주, 친한 사람들과는 유머가 나름 넘치지만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걸려서 일로 만나는 사람들은 내가 웃기는 사람이라는 말에 커다란 물음표를 머리 위에 띄우기도 한다(아, 물론 내 눈에만 보인다) 외향적 내향성의 인간인 나는 익숙한 곳에선 대스타가 되지만 낯선 곳에서는 옷깃을 세운 '니콜라이 고골'의 <외투> 속 주인공인 '아카키'가 되기도 하는 뭐 그런 사람이랄까. 치명적인 이중성의 컬래버레이션의 간극을 극복하기 위해서 나름 방법을 찾은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설득'당하는 사람이 아닌 차라리 '설득'을 하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다. 이유인즉슨 한없이 리더처럼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팔로워가 되어 예스걸이 되는 내 모습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배려심이 많은 서번트형 인간이라고도 하지만 내 속에선 용광로처럼 부글부글 거리는 뜨거운 불덩이 하나가 작게 자리 잡고 있다. 요즘 사람 가슴속에 그런 뜨거운 등불 하나 다 있지 않던가. 10대나 20대에는 특히 인간관계, 친구와 연인 사이에서의 일이 인생의 가장 많은 퍼센티지를 차지한다. 그때 그 말할걸, 이렇게 받아쳤어야 속이 시원한데 왜 그 말을 못 했을까 후회하는 밤. 꼭 대화 중에는 생각나지 않고 뒤돌아서서, 며칠 후에,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그때서야 생각나서 이불킥 하면서 다음엔 꼭 이렇게 말하리라 다짐하는 불면의 밤(사실 잠은 잘 잤다).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하면서 무조건 네네 하는 착한 사람은 힘들다는 것을 깨달을 즈음, 어쩌면 어릴 적부터 큰 딸이라는 혹은 사회가 만든 전형적인 여성의 모습에 나를 꿰어 맞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 자유롭게 살지 못하는 사람은 결혼을 해서도 마찬가지라고 했던가.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나를 세우지 못한 채 한 결혼 생활은 마냥 소꿉놀이 같던 시절을 지나 '시댁'에 적응하는 과정이 필요했고, 비판을 받으며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생활은 새댁에게 조금은 힘든 생활이었다. 새로운 직장에 들어가 늘 질책하는 상사에게 인정받으려고 고군분투하는 그런 모습과도 비슷하다고나 할까. 결혼 전 나의 모습이나 삶의 태도가 부정당하는 느낌도 들었다. 선천적으로 귀가 얇은 나는 웬만하면 타인의 말에 수긍하는 편이고 특히나 나보다 어른이 하는 말에는 곧이곧대로 잘 듣고 인정하는 편이었다. 나보다 삶의 경험이나 지혜가 풍부하다고 생각했고 내가 잘못한 부분이 있고 배울 부분이 있으니 이런 말을 듣는다는 게 디폴트 값으로 형성된 자아였다.


그러던 내가.

마흔이 넘으면서 문득 두려움이 생겼다.

이대로 60대 할머니가 금방 될 것 같은 두려움(60대도 젊은데 죄송합니다. 상징적 표현으로 이해해 주시길).

건강히 급격히 나빠지면 어쩌나 하는 기약 없는 걱정.

이제 더 이상 할 말 못 하고 사는 것은 나에겐 너무 잔인하다는 각성.

그때 다시 펼쳐든 책이 '제인 오스틴'의 <설득>이다.

북클럽 도서로 <설득>을 읽기로 결정하고 다시 읽은 설득은 주인공 '앤 엘리엇'의 모습에서 나를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귀한 집안에서 태어나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19세의 아가씨'라는 설정은 다소 차이가 있으나 이 부분은 일단 넘어가기로 한다. 상황에 집중해야 하니까. 가진 건 미래에 대한 희망과 강한 포부와 자신감인 '엔트워스 대령'과의 뜨거운 사랑은 엄마처럼 믿고 따르는 '레이디 러셀'과 허영심과 공명심에 가득 찬 아버지 '월터 엘리엇'의 지참금 절대 못줘 선언으로 파사삭 식어버리고 상처받은 엔트워스 대령은 부유한 해군 제독이 되어 8년 후에 다시 '앤' 앞에 나타난다. 결혼하지 못하고 27살의 노처녀(당시 기준)가 된 '앤'과 '엔트워스 대령'과의 러브스토리.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지키지 못하고 그저 순종하고 배려만 할 때 '앤'처럼 먼 훗날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어쩌면 내가 그저 이렇게 '착하게만' 살아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더 놀랐던 사실은 '살면서 남에게 설득되어 결정한 일에 후회한 적 있나요?'라는 발제문에 북클럽 멤버들은 그런 일은 별로 없다고 답한 것을 보고 역시나 나의 순종적인 성향이 더 느껴졌는데 마치 캅사이신 범벅의 매운 갈비찜에 도전했다가 장과 항문이 타오르는 듯한 충격을 느꼈달까. '제인 오스틴'이 작품답게 마지막은 '앤'의 용기 있는 자아 발전과 선택(실은 로맨틱 소설 여주다운 모습)과 '엔트워스 대령'의 변치 않는 사랑으로 해피엔딩을 이룬다. 마치 내 인생도 이런 해피엔 등으로 마무리될 것 같은 강한 확신을 주면서.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읽는 이유는 오조 오억 개라도 말할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결국 주인공이 행복할 거라는 결론이 정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독자로써 굉장히 안심되는 부분, 예측되는 결말. 굳건한 성문처럼 꽉 막히 결말. <설득의 심리학>을 그렇게 읽었어도 적용하지 못했던 나란 인간은 '제인 오스틴'의 <설득>을 읽으며 여주인공처럼 잔잔한 용기를 내보게 된다.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나의 남은 찬란한 인생을 위해서 '앤 엘리어'처럼 부드럽고 따듯한 카리스마를 가져보겠다고. 인생을 살면서 조금 더 내 목소리를 내보겠다고. 다시 말하면 할 말 하고 살면서 화병만은 얻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해 본다.


내 인생도 꽉 닫힌 해피엔딩이길 꿈꿔본다. 다 이루어질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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