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에게 가슴이란 무엇인가

by 마음돌봄

어린 시절 보물 찾기를 해 본 사람이라면 그 기분을 잘 알 것이다.

나뭇가지 사이, 풀 숲 어딘가에 보물이 숨겨졌다는 걸 알면서 찾아다니는 발걸음.

친구들의 까르르 거리는 소리.

누군가 먼저 발견할까 봐 가슴 졸이는 그때.

나에겐 글쓰기란 그런 것이었다.

오랜만에 시작한 글쓰기는 매일매일을 써나가도 마르지 않는 샘처럼 넘쳐나곤 했다.

한참 토해내듯 글을 쓰다가 멈춘 시점은 그만큼 속을 게워내고 난 후였다.

어느 정도 일상에 대해서 내 삶에 대해서 쓰고 나니 장을 비워내고 텅 빈 느낌을 가진 건강검진 하루 전날처럼

'비었음'이 느껴졌고, 이제는 정말 글을 잘 쓰고 싶어졌다.

잘 쓰고 싶은데, 잘 써지지 않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지금까지 펼쳐지고 있다.

이 기분은 지난 화요일부터 더 배가 되었다.

올해가 가기 전 유방 검진을 해야 했고, 새로 생긴 여성 병원에 예약을 한 나는

예약 시간보다 20분 더 일찍 도착했다.

깔끔한 실내, 딱 그만큼 친절한 간호사 선생님들.

지나치게 다정하지도 섭섭할 정도로 건조하지도 않은 말투로 과정을 안내했다.


"처음 오셨죠? 신분증 주시고요. 오늘 하실 검사는 국가 검진으로 진행되지만 원장님께서 진료하신 후

다른 과정이 추가되실 수도 있어요. 탈의실에서 탈의하시고, 진료 보실게요."


탈의실에서 상의를 탈의하고 가운으로 갈아입었다.

일부러 반지나 목걸이를 하고 오진 않았다.

엑스레이를 찍을 때는 역시 무척 아프다. 정말 과일즙을 짜듯이 쥐어짜는 느낌이다.

그럴 땐 생각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밖으로 돌출된 신체 부위는 고통을 수반한 점검이 필요하다.

아름다우면서도 실용적이며 범상치 않은 위치에 있는 신체 부위, 그게 여성의 가슴이다.


누군가에겐 미의 상징이자 여자로서의 자긍심이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에겐 내 아이를 위한 어머니의 숭고함이며 또 어떤 이에겐 숨기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다.

학생 때는 체력장이라는 것을 해서 체력 측정을 하는데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 순간이 여학생들에겐 그리 유쾌한 순간은 아니다. 우리는 각각 다양한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었는데 모델처럼 마른 체형의 친구들은 달릴 때 가슴이 많이 흔들리진 않지만 할머니에게 우월한 유전자(?)를 타고난 나는 제법 큰 가슴의 소유자라 뛰는 순간이 참 싫었다. 빨리 들어올 수 있는 거리도 느릿느릿 뛰어서 체력장 점수는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가슴에 대해 별 신경을 쓰지 않게 된 건 대학생이 되어서다. 사춘기의 그 시절이 지나니 가슴 크기란 게 그다지 인생에 큰 방해 요소는 아니었다. 아이를 출산하고 모성애가 폭발한 난 모유 수유를 열심히 했는데 그 결과 나의 가슴은 중력의 법칙을 열심히 따르고 있는 중이다. 속옷이 없었다면 엿가락처럼 쭈욱 늘어졌겠지.


엑스레이를 찍고 나서 원장님이 초음파로 가슴을 살핀다. 나름 긴장이 된다.

건강에 자신 있었지만 혹시 무언가가 발견될까 봐.

왼쪽 가슴에 혹이 있는 걸 발견하고 선생님은 친절하게 설명해 주신다.

명확하고 정확하며 간호사 선생님들처럼 지나치게 다정하지도 섭섭할 정도로 건조하지도 않은 딱 중간 말투로.


"지금 보고 계신 게 혹이에요. 개수가 좀 되죠? 조직 검사를 위해 부분 마취 후 간단한 수술을 할 거예요.

큰 병원으로 보내서 결과가 나오면 전화드릴 겁니다. 별거 아니네요. 6개월 후에 재점검하시게요 하고 말씀드리면 별 일 아닌 거고요. 큰 병원으로 가셔야겠네요 하면 암일 수도 있고요. 그럼 수술 준비하실게요. 5분~10분 정도면 끝나는 수술입니다."


깨끗한 시트, 조용한 음악, 내 오른손을 잡아주는 간호사 선생님.

따끔한 주삿바늘이 느껴지고 한 시간처럼 느껴지는 5분여의 시간이 흐른 후, 가슴 전체에 붕대를 감았다.

혹시 열이 오르면 타이레놀을 먹으라는 말고 함께 회복실로 향했다.

하루 종일 붕대를 하고 있어야 하고 무리한 운동이나 샤워는 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과 함께 문을 닫고 간호사 선생님은 나갔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 유방암으로 수술을 해야 했던 동생이 떠오르기도 하고 다음 주 결과 전화를 벌써부터 기다리는 내가 느껴지기도 했다. 그 어떤 결론도 내려지지 않았지만 붕대에 칭칭 감긴 가슴을 생각하니 야구공만 한 우울감이 생겼다. 철이 없을 정도로 긍정적인 나지만 가끔은 굴을 팔 정도로 우울해지기도 했던 나이기에 오늘은 동굴 입구 정도에는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자기 전에 붕대를 풀고 남편에게 주사 부위를 봤다. 시퍼렇게 멍이 든 가슴 주변이 보였다. 점점 보라색으로 변하게 될 자리가 낯설게 보였다. 이 신체 부위가 날 슬프게 할까? 그렇게 잠깐 생각하다가 얼른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저 현생에 집중하며 생활하다 보면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며 애써 잊으려고 노력했다. 가슴, 너 뭔데 이런 기분 느끼게 하는 건데. 외쳐봤자 대답할리 만무하고 무르고 보란 빛을 띠는 가슴을 애써 보지 않은 채 일사 생활에 집중했다.


역시 인간은 망각의 동물. 잊고 지내던 며칠이 흐르고 금요일 오후 걸려온 전화는 병원이었다.


"네, 병원이에요. 검사 결과 이상 없으시고요. 6개월 후 점검하러 오세요. 미리 문자 보내드리니까 예약하시면 됩니다. "


내심 걱정했지만 당연히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 당연함이 사실화되니 안심이 되었다.

참 감사하다. 아무 일도 아니어서.

여자에게 가슴이란 무엇일까. 바로 여자를 기쁘게도 슬프게도 하는 것.

욕망과 모성의 대상으로 소비되기도 하고, 자랑이나 부담, 숨기고 싶은 그 무엇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보이고 평가받기도 했던 것.

내 것이지만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는 것.

오랫동안 함께 해왔고, 앞으로도 같이 있어야 하는 그것.

내 몸의 일부이므로 권리는 나에게 있다.

가슴 하나로 평가받지 않고, 일희일비하지 않고 계속 무탈하게 함께 있기를.

여자의 좋은 친구로 남아있어 주기를.

가슴 '아픈' 일은 이 세상의 '여자', 그 누구에게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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