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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일생

'어떤' 여자의 일생

by 마음돌봄

취향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사실 20대에는 말도 안 되게 쉬운 일이었다.

오로지 나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기에는 가능했던 일이다.

핑계일 수 있지만 여자의 삶이란 애매모호한 부분이 많다.

정말 쓰기 싫은 말, 여자의 삶.

모파상의 소설 '여자의 일생'을 고등학교 시절에 읽었다.

당시에 친정어머니는 너무나 바쁜 분이었는데 딸에게 명작소설 전집을 사주시는 데는 돈을 아끼시는 분이

아니었다.

90년대에 근 300만 원 이상은 책을 사주시는데 너끈히 쓰는 분이셨다.

덕분에 지금도 책을 종교처럼 생각하고 집착적으로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준신 책 중에 '여자의 일생'을 읽은 날은 참 답답했다.




순수한 열일곱의 소녀였던 '쟌느'는 수녀원에서 그 시대 여성들에게 요구되던 기품 있고 정숙한 여인이 되는 교육을 받고 나왔다. 잘생긴 귀족 '쥘리앵'을 만나 일사천리로 결혼도 하고, '쟌느'의 아버지가 물려주신 '쟌느'소유의 푀플성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는데, 멋진 남편은 사실 인색하고 '쟌느'에게는 냉랭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바람둥이어서 집안의 하녀였던 로잘린과 외도를 했고, 헤어지려 했으나 아들이 생긴 '쟌느'는 이혼하지 못하고 아들만을 바라보고 산다. 이웃 백작 부인과 바람이 난 남편에게 완전히 기대를 저버리고 더욱더 아들 양육에만 집중을 하는데 결국 아들도 나중엔 어머니에게 사업 자금만을 요구하고 결국엔 찾아오지도 않는다. 쓸쓸하게 인생을 마감하는 여자의 일생을 보여준 책이다.


하나의 작품이란 작가의 생각, 시대의 부름등에 맞춰 쓰이기 마련이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쟌느'를 보며 여자의 일생이 이렇다 하고 말하기엔 정말 말도 안 된다 여겼었다. 20세기의 여고생이 봤을 땐 자기 의지도 없이 사는 사람 같았기 때문이다.

아버지에 기대어 살다가 남편에게 이양되고, 결국엔 아들에게 의지해야 하는 여인이라.

왜 그런 일이 벌어진 걸까?

문득 지금의 나를 바라보며 '쟌느'와 같이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모든 나의 레이다는 아이를 향한다.

뱃속에 품고 있었던 너와 나의 연결고리. 나의 도움 없이는 결코 생존할 수 없는 귀한 존재에 대한 사랑.

마치 처음부터 나는 없고 너만 있었던 것처럼 행해지던 육아의 삶.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지만 그렇게 온전히 나를 생각할 수 없었던 시간이었다.


어느새 시간은 흘러 나에게 커피 한 잔의 시간을 선물할 수 있는 때가 왔다.

내가 좋아하는 것, 좋아했던 것, 원하는 것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왔다.

그래서 더욱 어려운 시간이다.

빵을 좋아했던 여자는 이제 빵이 그렇게 맛있진 않다. 노란 크림이 나오는 슈크림빵의 부드러움이 좋았지만

지금은 배가 너무 고프거나 추억이 생각날 때만 먹는다.

명절 땐 고소한 전을 먹는 걸 좋아했지만 이젠 기름 냄새가 날뿐이다.

배가 고파서 먹는 식사. 음식에 대한 열망이 사라지면서 인생의 색깔이 무채색이 되었다.

다시 한번 더 찾고 싶다.

내가 뭘 좋아했더라? 뭘 먹고 싶더라?

이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야 나를 다시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냥 어른들 드시는 걸로 먹게요. 아이들 좋아하는 거 먹자.라고 했던 과거와 달리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이 뭔지 찾는 것이 시작일 것이다.

그 음식의 맛이 달콤한지 씁쓸한지 혹은 맵거나 너무 싱겁진 않은지 오로지 나의 혀의 감각으로 느끼고 이야기할 때만 진짜 음식을 먹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사소한 것부터 하나씩 찾아나간다면 나만의 취향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여자들이 자신의 삶을 더욱더 들여다보고 자신을 알기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영원히 백 퍼센트의 확률로 다 채워줄 거란 마음보다는 나 스스로가 그 백 퍼센트가 되는 방법을 찾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좋아하는 일, 먹고 싶은 음식, 듣고 싶은 음악, 가고 싶은 장소, 읽고 싶은 책, 만나고 싶은 사람들.

주변 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나 자신을 애정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나에게 오롯이 집중해 보는 것.

그것만이 진짜 행복을 가져다줄 거다. 그 조화로움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기쁨을 느끼고 싶다.

기쁨은 액체 속 잉크처럼 퍼져나가기 마련이므로 나의 사소한 결심으로 인해 다른 여자들의 일생도 이렇게 변화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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