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모인 이유는 비슷하시죠?
서로가 누구인지 알리는 그 순간, 들려온 질문 하나.
어느 누구를 특정지은 것이 아닌 모인 사람 모두에게 한 말이었다.
코로나 시대의 끝자락에 너무나 궁금한 아이들의 중학교 생활
그것보다 더 궁금한 학교의 은밀한 내부 사항이 엄마들은 다들 궁금했던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매주 둘째 주 목요일 10시는 엄마들이 책을 읽기 위해 모이는 시간이다.
더불어 나눌 수 있는 교육 정보를 나누고 고등학교를 먼저 보내거나 대학을 보낸 자녀가 있는
선배 엄마들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볼 수 있는 시간이다.
혼자라면 읽지 않았을 다양한 책들을 읽어볼 수 있다는 것은 역시나 독서 모임의 큰 장점이다.
게다가 학부모 독서회실은 꽤나 깔끔한 공간이었다.
사서 선생님이 미리 준비해 주신 전기포트의 따뜻한 물과 여분의 생수.
아메리카노, 라테부터 과일차까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는 tea.
남이 해준 밥이 제일 맛있는 엄마들은 나를 위해 준비해 준 티세트에 이미 마음을 뺏긴 후다.
학교 여기저기를 합법적으로 둘러볼 수 있는 시간, 엄마들은 학교 도서관을 보며 그림책부터 소설책까지 다양한 컬렉션들을 보고 만족해했다. 긴 스툴이 있는 창가 자리와 원형 탁자로 배치된 도서관은 누구라도 책 속에 빠져들게 생겼고, 사서 선생님 또한 성우 같은 잔잔한 목소리에 따뜻한 눈빛을 가진 분이었다.
학부모 독서회는 예산이 따로 나와서 운영되는데 작년엔 마지막 독서 모임 때는 각자 원하는 책을 23000원 내에서 살 수 있었고 남은 비용으론 멋들어진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식사까지 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 운영되는 예산이기에 기록과 셈은 정확히 했다.
23000원이라는 애매모호한 가격 속에서 각자 최선을 선택을 다했는데 정확히 23000원이었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집어 들고 쾌재를 외쳤었다.
올해도 마찬가지로 독서 모임이 시작되었고 벌써 한 학기의 마무리이다.
학부모 출석부에 적힌 순서대로 책을 선정한다.
읽고 오지 않아도 부담 없이 올 수 있고, 발제문도 미리 올리거나 정하지 않는다.
각자 읽고 좋았던 부분을 나누며 이야기하다가 아이들 이야기로 빠지기도 하고 일 이야기로 빠지기도 한다.
작년에 '마녀체력'을 읽고는 한 달간 단톡방에 운동 인증을 진행하기도 했다.
계단 타기든 걷기든 각자 할 수 있는 영역 내에서 운동을 하고 사진을 찍어 올렸다.
그러다가 각자 골프 이야기와 골프 옷 이야기에 빠져들기도 했다.
옷이 이뻐서 골프를 포기할 수 없는 엄마들도 부지기수다.
'다들 골프정도는 치시죠'의 분위기 속에서 저는 아니올시다를 외쳐본다.
너무 재미가 없어요, 저는 관심이 없어요. 우리 책 이야기 해볼까요?
결국엔 마무리는 자식 이야기, 옆 고등학교 이야기.
사실 랜선이 아닌 오프라인이니 얻는 이야기도 많다.
이 고등학교가 이렇구나. 우리 애들 중학교는 정말 예산이 없나 보다.
불과 10분 거리의 사립학교와 이렇게도 차이가 나다니 하면서 썰을 풀어낸다.
올해 초 새로 부임하신 교장 선생님과의 만남 속에서 놀란 이야기가 있다.
경기도나 서울의 중학교 학부모 독서 모임 멤버는 그 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엄마들이 많단다.
내 눈으로 보지 않고 경험하지 않았으니 믿을랑 말랑이지만 마치 독서 모임의 위상이 이렇습니다를 말씀하시는 교장 선생님의 모습을 보니, 저기 그냥 저희 애들 체육 대회나 취소하시지 말고 잘 좀 해주세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공부도 중하지만 중학교 시절 추억이 없다면 나중에 아이들이 커서 무엇을 기억할까 싶다.
7월 마지막 독서 모임을 끝으로 마무리가 되고 9월 첫 모임을 기다리고 있다.
이땐 교감 선생님이 존경하시는 작가님을 모신다고 한다.
늘 엄마들이 알아서 책을 샀는데 이번엔 제공까지 해주신다.
책도 내 취향이고 좋다.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원래 독서모임 시간이 아닌 아이들이 하교한 오후 시간, 아이들은 학교에 남아야 하고 엄마들은 올 수 없는 애매모호한 시간이라 엄마들의 볼멘소리가 있다.
교감 선생님의 작가와의 초청은 좋지만 독서회에서 계획한 일정은 미뤄두시고 일단 예산을 교감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작가님께 먼저 써야 한다고 하시니 학부모 독서회의 자율성을 잃은 기분, 우리의 목소리가 닿지 않은 것 같아 살짝 마음이 상하기도 한다.
내년에 큰아이가 중3이 되어도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지만 어찌 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뭔가 끈기 있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 주고 싶어서 시작한 것도 있고, 독서 모임이니 계속하고 싶기도 하다. 아울러 아이가 고등학교에 가도 그곳에서 독서 모임에 참여도 하고 싶다.
어쨌든 평생에 학부모 독서회를 할 수 있는 시간도 기회도 한정되어 있으니 그 장점을 충분히 누리고 싶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시절엔 옆집 엄마와 만나서 할 일이 뭐 있냐며 그 시간에 내 아이들에게 집중하겠다 생각했었다. 적당한 거리 두기는 사람을 예의 있게 대하게 하니까. 하지만 지금은 이 정도의 만남은 유지해도 되겠다 생각한다. 실제 삶 속에서 또래 엄마들과의 만남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더 이상 편견을 갖지 말고 아줌마들과 만나봐야겠다.
그들은 나처럼 아줌마, 직장인, 사업가 혹은 사유하는 사람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