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이었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키스를 책으로 배웠습니다처럼 운전을 너무나 바쁘게 급하게 배웠다.
새로 시작한 일에 꼭 고물차라도 한 대 필요했기에 은색 프라이드 한 대를 뽑았다.
10년 동안 서랍 속에 고이 모셔두었던 운전면허증의 사진은 본인임을 의심하게 했지만
다시 햇빛을 보게 되었다.
필기시험도 우습게 보다가 6번이나 재시험을 봐서 주변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는데
역시나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 그까짓 필기시험쯤이야 하고 우습게 보다가 보기 좋게 미끄러졌었다.
10년 만에 잡은 운전대.
도로 주행을 하는 며칠간은 옆에 선생님께 혼이 나며 배워서인지 단번에 통과하는 신공을 보여주었다.
드디어 혼자서 운전하는 시간들이 시작되고 정말이지 차를 도로에 버리고 싶었다.
다른 이들은 운전을 시작하고 난 후 날개를 단 것 같다고 얘기하던데
나에겐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한참 시내를 달리면 차선변경 전에는 가슴이 콩닥거리고 길가 어딘가에 이 아이를 놔두고 가도 되지 않을까라는 자기 합리화를 시작했다.
그러기를 몇 달, 점점 운전이 익숙해지면서 남편 없이 아이들과 미술과이나 박물과도 마음대로 가고 친정 엄마와 쇼핑이며 드라이브도 가는 맛에 빠져있던 즈음 첫 번째 사고를 냈다.
우회전을 했는데 옆에 가던 버스보다 내가 더 빨리 갈 거란 착각에 빠져 터져 턴을 하자마자 버스와 부딪히고 말았다.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터지는 눈물, 사고 5분 만에 나타난 공업사 직원들, 뒷목 잡고 나오는 버스 기사님과 병원에 입원하겠다면 소리 지르시는 버스 승객 아주머니를 보며 대혼란에 빠졌다.
손을 부들부들 떨며 남편에게 전화했고, 담당 보험회사 직원분이 와서 일은 일사천리로 해결되었다.
괜히 다른 가족들에게 알리기 싫어서 남편을 입단속 시켰는데 이미 시댁 식구며 친정 식구들이 알고 있었다.
이 입 싼 남자야.
두 번째는 집으로 가던 길, 익숙한 도로에서 일어났다.
앞의 택시 기사님이 갑자기 급정거를 하며 내 차와 살짝 부딪혔는데 기사님은 택시 지입이 처음이신지
내리시자마자 나에게 미안하다면 합의를 시도했다.
이제 겨우 택시 운전이라도 한다며 사정을 말하신 기사님의 말에 보험 회사를 부르기 위해 들었던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물론 이 또한 살 떨리는 순간이라 보험 회사에 기대고 싶었지만 기사님의 얼굴을 보니 그럴 수가 없었다. 남편은 초보인 내가 사고를 낸 게 아니냐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지만 가볍게 그 의심은 눌러주고 이번엔 내 잘못이 아니라 주장했다.
그 이후엔 마트 주차장에 얌전하게 주차했는데 문이 세게 열리는 바람에 옆의 차문을 바꿔줘야 했고, 차선을 착각하여 다른 차와 부딪히기도 했다. 한 번은 시댁에 놔두고 온 아이 우유병이 생각나 샛길을 가다가 옆고랑에 바퀴가 빠져서 아이들에게 의도치 않게 레커차를 구경시켜주기도 했다.
이렇듯 잊을만하면 한 번씩 생기는 사고 탓에 남편 이름으로 된 보험이 보험료는 최고치를 찍고 말았다.
마지막 차였던 소나타를 폐차시키면서 운전과의 인연에 잠시 쉼을 주었다.
예전처럼 걷고 버스를 타고 급할 땐 택시를 탄다.
사고도 사고지만 자동차 보험료에 기름값에 아이처럼 돌봐줘야 하는 자동차와 헤어지고 싶기도 했다.
가끔 짐이 많거나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 무거울 때는 아쉽기도 하지만 나름 제로웨이스트 삶이라 우기며 걷는 삶을 살고 있다.
최근 타 지역 학교 강의를 시작하면서 여러 지역을 다녀야 하니 운전하던 내가 또 생각난다.
조금씩 연습을 다시 해야 하는데 운전대를 잡기가 여간 쉽지 않다
최근에는 나란 사람이 얼마나 공간지각력이 없는지 알게 된 터라 더 두렵다.
운전면허 필기책을 다시 봐야 할까. 아니면 여자들의 운전과 자동차에 관련된 책을 보고 공부를 해볼까.
일단 지식으로 무장을 하면 좀 더 두렵지 않지 않을까.
운전하는 여자란 어떤 사람일까.
이 의문조차도 모순적 인지도 모른다.
운전하는 남자, 운전하는 여자가 따로 있던가.
운전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지.
운전하는 삶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어렸을 때 나이 마흔 정도면 운전기사가 있는 삶을 살 줄 알았다는 엄마의 말을 들으며
공주님처럼 회장님처럼 타인이 운전해 주는 차를 타는 게 꽤 괜찮은 삶이라고도 생각했다.
사실 남이 운전해 주면 편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혼자 운전했을 때를 생각하면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
어느 시간이든 언제든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매력적인 조건, 화장실 말고도 내가 편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공간의 출현.
이 모든 진실들을 봐서라도 운전을 하는 게 맞는 것 같지만 마음속의 깊은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한참 운전을 하며 다닐 때 눈이 너무나 피곤하여 눈을 뜨고도 눈물이 줄줄 흘렀다.
많이 피곤했고 바쁜 삶에서의 운전은 편리성 외에 신체의 피곤함을 줬었다.
운동도 제대로 하지 않은 본인 탓이기도 했지만 여유 있게 배우지 않은 운전의 시간이 쫓기는 삶을 사는 기분이기도 했다.
도로에서 달리는 기쁨도 있지만 꽉 막힌 퇴근길에서의 피곤함도 있었다.
언제 다시 운전을 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운전대를 잡는 것도 내 인생의 키를 쥐는 방법이라면
조금씩 생각의 고리를 틀어야 할 것 같다.
두렵지만 하는 걸로.
단 이번엔 천천히 배우고 연습하는 걸로 하자.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로 굳게 마음먹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정말 괜찮겠어?
김여사 안 될 자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