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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아버지의 장례식

어두운 건 어울리지 않아요.

by 마음돌봄

순환도로를 달리던 차 안에서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여행하는 것 같고 좋다. 나무도 푸르고. 언제 손주 사위가 운전하는 차를 또 타보겠나."


할아버지가 계시는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


수술을 마치고 집에서 쉬고 계신 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 할아버지는 떠나셨다.


한 동안은 괜찮으실 줄 알았는데.


언제나 곱게 화장을 하고 계셨다.


할아버지는 화장을 곱게 하신 할머니의 모습을 좋아하셨다.


예쁜 옷을 좋아하시는 할머니는 매일 옷에 맞게 화장을 하셨다.


늘 고와 보이는 하얀 피부가 연세보다 더 젊어 보이셨다.


하지만 오늘은 화장을 하지 않으셨다. 아니 못하셨다. 침대에서 겨우 일어나 옷을 갖춰 입고 휠체어에 앉으신다. 하얀 카디건을 입혀드렸다.


핀을 꽂아달라는 할머니의 말씀에 많지 않은 머리카락에 핀을 꽂아 드렸다.


장례식장 입구에 도착하자 남편이 할머니를 안아서 휠체어에 앉혀드렸다.


무거울까 봐 미안해하는 할머니께 남편은 깃털처럼 가벼우시다며 평생 안아드릴 수 있다고 너스레를 떤다.


3층에 도착하고 할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보신 할머니는 당신과 함께 찍은 사진인데 할아버지 사진을 잘 뽑아냈다고 하셨다.


그리고 왈칵 쏟아지는 눈물.


6남매의 아버지이자 평생 소녀 같은 할머니의 남편이었던 할아버지.


항상 모닝커피를 즐기시며 외출하실 땐 멋진 모자를 항상 쓰셨던 할아버지.


셔츠를 입으신 후엔 항상 작은 메달로 포인트를 주시고 스파게티와 라쟈냐를 즐기시던 분.


하지만 할머니의 떡국을 가장 좋아하시던 분.


어렸을 적의 엄마의 기억 속엔 당신의 발등 위에 딸을 올리고 춤을 추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있다.


전문가 못지않은 포토그래퍼였던 할아버지의 전시회와 큰 아이가 아기였을 때 방문하면 항상 사진을 찍어주시던 모습.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친척들, 사촌 동생들.


큰삼촌의 얼굴에서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가장 닮은 아들, 하지만 자주 만나지 못했던 아들, 당신을 닮아 포토그래퍼가 되었던 큰삼촌.


마침 이런 일이 없었던 듯 카톡을 하고 대화를 나누고 손님에게 인사를 하고


그리고 지금 새벽, 말도 안 되게도 쏟아지는 눈물.


자식들은 손주들은 또 일상을 살아가겠지.


며칠 후 있는 대학교 기말고사를 치르고 어른들은 일을 하겠지.


천국에 가셨다는 동생의 말에 안도감이 느껴진다.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다.


할아버지, 할머니 연세를 물어보시는 말씀 속에 마음 한편이 씁쓸하다.


칠순이 넘으신 어머니.


칠순을 향해 가는 친정엄마.


내 눈엔 그대 로이신 것 같은데 혹시나 몇 년 남지 않은 인생이구나 하고 생각하실까 봐 마음이 철렁하다.


딱히 효부, 효녀도 아니면서.


추억의 깊이만큼 슬픔도 깊어진다.


슬프지 않으려면 추억도 기억도 없어야 하는 걸까.


지난겨울부터 마음의 준비를 했던 가족들.


할아버지와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몰라 다 같이 모였었다.


결국 그때에도 갑자기 몸이 안 좋아지신 할아버지는 함께 하지 못하셨지만 덕분에 가족들은 한 자리에 모였다. 그 후로 몇 차례 고비를 넘겼고 이제는 이 날이 오고야 말았다.


이 글은 그냥 자기 위안의 글, 합리화의 글.


자주 만나 뵙지 못했다는 손녀의 변명.


그리고 보고 싶다는 흔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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