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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냉방병이라니

by 마음돌봄

생각보다 여행 후유증이 길다.

사실 떠나기 전날부터 일정이 피곤했다.

일이 끝나고 나니 이미 8시 40분.

바로 짐을 챙겨 시댁으로 이동, 다음 날 5시에 출발.

이것은 전투 상황도 아니건만 휴가가 아닌 의무가 된 기분이었다.

막상 도착한 장소와 가족들과의 시간은 좋았지만 돌아와서 이후 일정까지 소화하고 나니

몸은 이미 부적응상태다.


다시 돌아온 월요일에 일을 하지만 루틴이 망가진 것 같았다.

미라클 모닝도 못하고 있으며 결정타는 새벽녘 아들이 틀어놓은 에어컨 바람에 피곤했던 몸에 화룡점정을 찍어버렸다. 냉방병에 걸린 듯 머리 뒷골이 댕댕거리고 속은 울렁거렸으며 잠은 쏟아졌다.

그런 상태에서 수업 듣는 거며 일하는 거며 계속하다 보니 몸은 점점 피곤해졌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게 냉방병이라는 것이다.

감기 한 번 잘 걸리지 않는 체력의 소유자인데 이번엔 달랐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젓가락을 든 손까지 덜덜거리는 상황이었다.

냉방병에 대해 검색을 해보았다.




냉방병 : 엄밀히 말해 과학 용어는 아니지만 장시간 냉방 중인 공간에 머무를 경우 급격하게 체온이 낮아지게 되고 우리 몸에서는 외부의 차가운 환경과의 온도 차이로 적응하지 못해 몸에 이상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냉방병의 주요 증상 : 어지러움증, 갑작스러운 졸음, 두통, 콧물, 코막힘, 근육통, 재채기, 만성 피로를
느낌, 복통 및 설사




맞네, 맞아.

냉방병이 맞았다.

사실 어이없기도 했다. 물론 에어컨을 켜야 하는 상황이지만 시원하게 보내자고 틀었던 에어컨의 영향으로 냉방병이라니. 인간이 더위를 피하고자 만든 것이 아닌가. 북극의 얼음을 녹아내며 틀어대면서 냉방병에 걸린 내 모습이 좀 웃기기도 했다. 한 편으론 근력 운동을 미루고 미루던 자신에게 좀 화가 나기도 했다.

남편이 항상 나중에 재활운동 하지 않으려면 유산소와 근력 운동을 꼭 해야 한다고 했는데 또 잔소리를 들으니 그 말도 괜히 듣기 싫었다.


일단 어지러워지고 기운이 없으니 식욕도 없어졌다. 기분도 괜히 우울해지려고 하는 것 같았다.

수요일은 인문고전지도사 수업을 들어야 해서 애써 노트북 앞에 앉았다.

차가운 머리에 뜨거운 찜질팩을 올려놓으며 수업을 들었다.

책에서 이해 안 되는 부분까지 애써 질문하며 마무리를 했다.

수업이 끝나고 곧바로 청소를 하고 일할 준비를 했다.

쉴 수 없는 수요일을 보내고 목요일엔 아침 미팅을 끝내고 침대에 뻗어버렸다.


다시 생활의 루틴을 잡아가야겠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 좀 더 머리가 개운해지겠지.

친구가 복날이라고 톡을 보내왔다.

기력을 차리는 음식을 좀 먹으라고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남편과 함께 마트로 갔다.

야무지게 싸 먹을 생각에 김밥 재료를 사고 채소를 구입했다.

콩물 국수를 해먹을 요량으로 콩물도 샀다.

달걀을 사고 김을 샀다.

히말라야 소금이라는 멘트에 꽂혀 샀지만 막상 먹어보니 바삭바삭하니 뭔가 그동안 김에서 맛보지 못한 맛이다. 짜지도 않고 뭔가 건강한 느낌이다.

김 중의 김, 양반김


저녁 9시, 식탁에 앉아 된장국에 밥을 말아 두 그릇을 먹었다.

김도 잘라서 꼭꼭 씹어먹었다. 오이 고추도 쌈장에 찍어서 먹고, 후식으로 떠먹는 요구르트까지 먹었다.

먹어서 기운을 내자. 먹어야 기운이 나지.

기운이 나야 운동도 하고 기분이 나아질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하기 싫지만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병행하기로 했다.

내 나이에 벌써 다리가 힘이 없어 주저앉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고

남편 말대로 나중에 재활 운동을 하면 안 되니.


이제는 더 이상 젊음만으로 승부를 볼 나이는 아닌 것 같다.

마음은 20대이고 40대도 인생의 후기가 아닌 중반부라고 하지만 꾸준한 체력 관리만이

젊게 살 수 있는 비결인 것 같다.

젊게 산다는 말을 하는 걸 보니 꼭 폭삭 늙은 것 같다.

하지만 체력이 날 살게 할 것이므로 정말로 운동을 제대로 해야겠다.

그래야 내 꿈처럼 책 읽고 글 쓰는 할머니가 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다음 휴가는 전국 일주 말고 좀 더 시간을 즐기는 휴가를 보내고 싶다.

일주일 휴가 동안 하고 싶은 것을 천천히 생각하며 하나씩 해보고 이동하는 일정은 하나만.

쉬는 시간 하나하나를 꼭꼭 씹어가며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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