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ep Reading and Love Youself.
천재인 줄 알았다고 하셨다. 책을 읽어주시던 어느 날, 내용을 줄줄 따라 하며 읽는 모습을 보신 엄마는.
" 네가 공부로 성공한다 해서 진짜 그럴 줄 알았지. "
부지런히도 책을 사다 나르셨다. 테이프가 딸려 있던 한국 전래동화는 아직도 기억이 난다. 테이프를 카세트 플레이어에 넣으면 팥쥐 엄마가 콩쥐를 구박하는 표독스러운 목소리와 콩쥐가 구슬프게 노래하는 소리도 실감 나게 들을 수 있었다. 장화 홍련 전을 들을 때는 무서워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듣곤 했다. 방문판매로 책을 파시던 엄마 친구분에게 300만 원을 주고 산 전집 세트는 책장에 바지런히도 꽂혀 있었다. 그중 간택을 받은 건 문학 작품이나 소설류. 좀처럼 사회. 과학 서적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고등학교 소풍날까지 소설책을 챙겨갔는데 당시 유행하던 김진명 작가의 '하늘이여 땅이여'라는 책이었다. 좀 재수 없는 여학생인 나에게 책은 재미도 있었지만 있어빌리티를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대학생 때는 때마침 맛 들인 자기 계발서를 탐독하며 뭔가 이뤄낼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친한 친구 두 명에게 독서 모임을 만들자고 제안하기도 할 만큼 꿈에 빠진 이상주의자이기도 했다.
독서의 영역이 넓어진 계기는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흔하디 흔한 집안 문제. 당시 공무원이었던 친정아버지는 다단계 사업을 하다가 끝도 없는 빚더미 속에 빠져들었고, 그건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2000년도 초반 대학생들도 신용카드쯤은 5~6개 발급해줬던 그때 내 이름으로 된 카드로 돌려막기를 시전 했었다. TV 속에선 멋진 여배우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카드 한 장이면 우아한 삶을 살 수 있다고 광고하던 때였다. 경제관념 없이 살던 대학생이 경제 개발서를 탐독하기 시작했다. '39세 100억 부자'류의 책을 시작으로 '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 '워런 버핏 평전', '바빌론 부자들의 돈 버는 지혜' 등의 책을 읽으며 독서노트를 밥먹듯이 기록했다. 집에서의 우울감을 뒤로 한채 책을 읽으며 마음속의 희망감을 키워나갔다. 집안을 일으킬 첫째 타이틀이라도 얻을 요량으로 미친 듯이 책을 읽어댔다. 카드값 독촉 전화나 캐피털 직원의 상환 요구 전화 속에서도 유일한 희망은 책을 읽는 그 시간뿐이었다. 버스비마저 아끼기 위해 직장에서 집으로 걸어가는 그 한 시간은 방금 도서관에서 한아름 빌린 책들과 함께였다.
5년여의 시간이 흐르고 빚도 갚아갈 즈음 과거의 치열함은 어느새 일상에 젖어들고 말았다. 나만의 삶의 기준을 세우기 직전, 때마침 찾아온 안도감이 그저 평범한 독서가로 나를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힘들었던 시절 긍정심을 잃지 않게 해 줬던 치열한 독서의 기억은 몸에 새겨져 있었다.
언니에겐 책이 종교 같아.
이제 어엿한 성인이 된 동생은 몇 시간이고 조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언니의 모습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책으로 얻은 긍정 감과 위기 극복 능력을 꼭 알려주고 싶다는 열망이 그렇게 행동하게 했다. 천재를 만들 욕심도 공부를 잘하게 할 두뇌를 만드는 일도 아닌(정말 아닐까?) 그냥 살면서 한 번쯤 위기가 올 때 땅 파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 동아줄을 발견하고 나올 수 있는 힘을 갖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엄마를 닮아 유약할지언정 희망의 끈은 놓지 않게 하기 위한 단 하나의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지금의 나는?
경제 개발서를 읽고 돈 많이 벌 방법을 찾지도 실천하지 못할 자기 계발서를 탐독하지도 않는다.(물론 이 분야 작가님들을 존경합니다. 제가 못했을 뿐.) 전혀 관심 없었던 분야의 책을 일부러 찾아보기도 하고 소설책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이 모든 독서의 이유는 단 하나.
내 삶의 자기 결정권을 갖기 위해서이다. 짜장이냐 짬뽕이냐를 고민하며 사이좋게 하나씩 시켜 나눠먹는 대신 짬짜면을 시켜 오롯이 혼자 다 먹어본다. 부탁을 거절하면 상대방이 싫어할까 봐 수용했던 것도 담담하게 거절해본다. 사소한 일 하나하나 내 의지대로 결정해본다.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나 스스로 행동했던 그 시간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차곡차곡 쌓이는 그 순간들은 견고한 성이 되어 또 다른 충만감을 줄 것을 이제는 안다.
오늘도 내가 책을 읽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