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가나 뭉친다.
어제 상해에서 남편의 오랜 친구와 그의 아내를 만났다. 텍사스에서 열린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왔다는 그 친구는 타이완인 어머니와 미국 뉴저지 출신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까지 타이완에서 살다 세계 곳곳을 떠돌았고, 지금은 상해에서 교육 관련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활발하고 외향적인 성격 덕분에 대화는 금세 깊어졌다.
우리는 그의 새 AI 사업 아이디어와 교육 비즈니스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교육의 변화, 공교육과 사교육의 한계, 중국과 미국 교육의 차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기술로 대화가 흘러갔다. 그러다 결국 ‘정체성’이라는 주제에 닿았다.
그 친구는 상해에서 ‘반반 외국인(half-foreigner)’ 모임을 운영한다고 했다. 중국계 미국인, 한국계 미국인, 타이완계 미국인 같은 사람들이 모여 친목을 다지는 그룹이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두 그룹으로 갈린다는 것이었다.
하나는 자기 정체성을 찾지 못해 부모 나라의 한쪽을 혐오하거나 불편해하는 사람들. 다른 하나는 카멜레온처럼 어디서든 무난하게 적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이 얘기를 들으며 남편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이사와 전학을 반복하며 자란 그는 자신을 ‘카멜레온’이라고 표현하곤 했다. 어디서든 잘 적응했지만, 안정적으로 이어지는 초등학교·중학교 동창 관계 같은 건 없었다. 과거에는 부러움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자신을 만든 힘이었다고, 그래서 결국 자기 정체성을 찾게 되었다고 말하곤 한다.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아이가 떠올랐다.
우리 아이는 반은 한국인, 반은 외국인으로 살아갈 것이다. 과연 이 아이는 자신을 한국인으로 여길까, 아니면 미국인으로 여길까. 혹은 혼란 속에서 헤매지는 않을까.
그때 친구가 단호하게 말했다.
“네 아이는 반드시 한국어를 잘하게 가르쳐야 해.”
왜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주변의 한국계 미국인 중 한국어를 못하는 경우, 정체성을 잃거나 더 큰 혼란을 겪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얼굴은 한국인인데 한국어를 못하니, 한국 사회에서도 낯설고 미국 사회에서도 어정쩡해진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은 해외에 나와도 서로 똘똘 뭉치는 경향이 강해, 언어가 정체성을 이어주는 중요한 다리라고 했다.
그 말은 나도 공감했다. 해외에 오래 살며 나 또한 나이가 들수록 한국인을 보면 반갑고, 일부러 연락처를 교환하고 싶어진다. 한국이라는 나라의 ‘끈끈함’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린 시절 기억이 스쳤다.
한국에서 열렸던 월드컵 경기. 얼굴에 페인트칠을 하고 목이 쉬도록 응원하던 나. 골이 들어가면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던 순간들. 그땐 애국심의 의미를 몰랐지만, 한국이라는 나라를 당연히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열정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한국이라는 나라에 불타는 열정. 한국인으로서도 쉽게 설명할 수 없다.
나는 여전히 묻는다. 한국은 어떤 나라일까.
무엇이 그렇게 스페셜해서 한국 사람들은 한국을 내려놓지 못하는 걸까.
매운 불닭 때문일까, 구수한 된장국의 맛 때문일까.
끈끈한 정 때문일까, 아니면 역사 속의 아픔과 극복이 우리를 이렇게 뭉치게 만든 걸까.
한국은 나에게 중독 같은 나라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쉽게 떨쳐낼 수도 없는 맛.
나는 앞으로도 글을 쓰며 그 질문을 파헤쳐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