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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국 엄마달팽이 Nov 19. 2021

우리들의 외로움: 기억 때문

엄마가 보고 싶어 죽고 싶다던 아이에게 던진 개소리


문득, 갑자기.

맛있는 음식을 먹다가, 그리고 글을 읽다가, 운동을 마치고 수건을 집어 들다가 문득, 갑자기, 외롭다는 생각이 스치곤 한다.


인간.

평생 이 몸뚱아리 안에서 이러쿵저러쿵. 혼자 사는 세상이란 것을 확인받는 때. 그때가 외로움을 느끼는 때인가. 하루에서 하루를 이어나가고 있는, 결국 혼자 엮어나가는 하루들.


우리 모두는 혼자라는 사실.

경이롭지도 씁쓸하지도 않은 그저 조금 새로운 발견. 그러나 아주 가끔 부정하고픈 발견. 하나의 몸, 하나의 생각, 하나의 경험자, 우리는 결국 나 하나이기 때문에 외로운 걸까.


외로움은 기억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오늘은 그렇게 결론이 났다. 우리의 외로움의 이유는 기억 때문이다. 기억과 기억 사이, 이 기억에서 저 기억으로 전환되는 그 찰나의 순간에 우리는 아무 곳에도 속하지 못한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그 순간의 발견.

'아, 길 잃었다.'

'아, 혼자다.'

'아, 외롭다.'


할머니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학교 교정이 생각났고, 고등학교 플라타너스 나무가, 그리곤 초등학생시절 눈에 담았던 남자아이가 생각났다. 그 모든 기억이 자리를 옮기는 사이사이, 그러니까 한 기억이 끝이 나고 다음 기억이 새로 들어오기 전까지의 그 공간, 딱 그 시공간에 나는 혼자 남겨졌다. 결국 나 하나라는 것, 홀로였다. 오늘 홀로는 자유롭지 못하고 외로웠다.




추억이라는 말의 위로가 그다지 위로되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그렇게들 말했다. 사랑하는 그 사람, 우리를 떠난 게 아니다. 그 사람과의 추억으로 살아갈 수 있고, 그 추억 속에서 우리는 영원히 존재한다. 우리 안에 늘 살아있다는 망자들이라는 해석들. 그 해석들이 그때에는 참 적당히, 개소리처럼 들렸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잘도 포장하고 밀어붙인다 생각하기도 했었다.


괴로웠었다.

지나간 과거의 흔적을 부여잡고 무엇도   없는 슬픔이었다. 참아지지 않을 슬픔이었다. 어제와는 다를 내일의  새로움이 전혀 상상되지 않는 두려움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기억이 이어지지 못하고,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 선명하게 드러냈는데, 그걸 아름답게 심지어는 '감사하게'여기라며 나의 슬픔을 구석에  꽂듯 꽂아두는  같았다. '승화'라는 단어를 꾸역꾸역 들이미는  같은 어른들의 말이 나는  개소리 같다고 생각했었다.


새로운 삶에 빨리 적응하라고 어찌나 밀어대던지.

나는 그들의 그런 밀어붙임, 어깨 토닥토닥에 화가 나기도 했다. 아무런 대꾸도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나를 착각했다. 조언을  받아들이고 있구나, 하고. 개소리를 이해하지 못해 침묵시위 중인 것을 알아차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이 17 전후의 기억이다.




그런데 나는 오늘, 그때의 나보다 한 참 어린아이에게 그 개소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40대가 되었고, 20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면서 그 개소리가 진짜라고 느껴지는 길목에 있는 중이었을까.


"창문을 넘으려 했지 넌. 죽고 싶었다고 말했어. 그렇게 너의 생이 끝나버리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창문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던 걸까, 나는 그게 궁금해."

"엄마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엄마가 보고 싶어, 너무 힘들어서 그 고통을 끝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엄마를 만나기 위해 죽으려고 했다는거지? 내가 잘못 이해한거면 아니라고 말해줘."

"맞아요. 엄마를 만나고 싶었어요. 그 순간에 그냥 그 생각뿐이었어요."


"그래. 그랬구나. 그런데 우리는 네가 죽을 까 봐, 네가 왜 그랬는지는 묻지 못하고, 너를 보자마자 죽으면 안 된다는 말만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난 엄마가 보고 싶어요."

"그래.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을 보지 못하는 것은 너무 큰 고통이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이야. 참아지지 않는 그리움이야..."


그리고 뒤이어 나는 개소리를 했다.

"네가 엄마를 생각할 때, 그 순간에 너는 엄마랑 함께 있지? 그곳으로 자주, 기억을 잊지 않고 엄마를 만나고 있겠지?"

무슨 소리를 하려고 이 [기억] 따위의 단어를 들먹였을까.

'그 이야기하려는 거야? 기억, 추억으로, 언제나 영원히 함께 있는 거다? 죽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늙어서야 이해하는, 저만큼의 어린 나이에는 이해되기 어려운 그 개소리??'

그때의 어른들과 같은 말을 되풀이하지 말자, 마음먹었다.


아이는 대답했다.

"네. 그리곤 다시 현실로 돌아오죠."


나는 많은 말을 하고 싶었다.

'맞아. 너무 짧아. 그지? 그렇게 돌아오면 지금 여기가 너무 싫을 거야. 다시 거기로 가고 싶겠지. 다시 기억 속으로 추억 속으로 가고 싶을 거야. 그런데 그건 잠시라는 것을 알게 되고, 거기에서 살아지지는 않는 거란 걸 알게 되고. 그 잠시의 기억이 너를 행복하게 하지만 다시 여기로, 엄마가 없는 지금 여기로 돌아오면 넌 더 괴로울지도 모르지. 돌아오는 순간, 그 기억으로 가기 전보다 더 슬플지도 모르지. 아무도 모르지. 아무도 몰라...'


"너무 슬픈 날들이 이어지고 있구나. 너의 하루하루는 전쟁터겠어. 네 마음속 전쟁터는 얼마나 시끄러울까. 아니면 아무도 없는 적막의 고요일까..."

"무서워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요. 그러다 문득 죽고 싶어 져요. 그리곤 달려가요. 이게 조용한 건지, 시끄러운 건지, 모르겠어요."

"그렇구나. 그 전쟁터마저도 혼란스럽구나. 그런 날들을 보내고 있구나 넌..."




기억과 기억 사이.

그 사이에 설 때마다 문득문득 외로움을 느꼈다. 계단을 걷다가 떠올린 옛날 기억으로 몇 계단을 오르다가 다시 지금-여기 계단을 오르는 나로 돌아올 때, 나는 혼자임을 느꼈다. 어제 딸아이와 한 게임의 장면을 생각하며 미소를 짓다가 다시 여기 계단을 오르는 내 신발 앞꿈치로 의식이 돌아왔을 때, 나는 외로웠다. 기억 속에 머물다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는 순간, 그 순간에 외로움이 파고든다는 것을 나는 오늘 발견했다.


우리들의 외로움은, 다 그 망할 놈의 기억 때문인가 한다.

기억 속에 들어갔다 다시 다른 기억으로 들어가기 전 그 사이 공간. 그 사이 공간에서 혼자임을 확인한다. 어제의 기억도 나 하나의 일이요, 그 사이에 길을 잃는 것도 나 하나의 일. 결국 우린 혼자였음을 아주 짧은 순간에 알아버린다.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 나 하나인 그 사실, 혼자라서 좋았다가, 혼자라서 텅 빈 날들. 그런 날들.





(상담 대화 비밀보장을 위해 아이의 상황은 다르게 각색, 아이의 대답은 다소 일반적 내용으로 축소 생략되었고, 상담자의 대화에만 초점을 맞춘 점을 알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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