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록다운. 2020년 12월 20일
다시 봉쇄령.
가족의 연이 어렵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갑작스러운 봉쇄령 조치에 만 5세 딸아이도, 만 62세 할머니도 울어버렸다. 며칠 뒤 만날 크리스마스만을 기다리던 견우직녀. 딸아이의 눈물과 시부모님의 아쉬움은 내 안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티끌 들어가 흐르는 눈물처럼 보아지는 것일까. 아이와 같은 배에 올라타는 수밖에, 내가 해 줄 것은 없다. 그것이면 된다.
“너무 슬프겠다. 엄마도 슬프네.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네, 사촌들이랑 고양이랑 놀려고 한참 기다렸는데, 그지? 너무 슬프다 그지.”
“어 엄마. 너무 슬퍼.”
“그래, 얼마나 슬플까... 엄마도 같이 좀 울까?”
“응, 엄마.”
“그래, 같이 좀 울자.”
가정 폭력의 피해자들,
정신건강 취약자들,
가족의 연이 끊기다
길거리 노숙자들, 가정폭력의 피해자들(짐승 같은 사람과 한 공간에 오래 있어야 하는 고통을 참아내는 이들), 그리고 정신질환을 겪는 남녀노소의 소식들이 이메일을 통해 끊임없이 전달되어 온다. 스토리는 넘쳐난다. 영국, 한국, 전 세계에 스토리는 끝이 없다. 너무 넘쳐나서 무뎌지는 것이 아쉽다고도 하지만 무뎌지지 않으면 버티지 못할 양의 슬픈 이야기들이다.
20대 젊은 노숙자. 코로나 한파로 인한 경제적 타격은 이 젊은 청년의 일자리를 앗아갔다. 집세를 내지 못해 거리로 나왔다. 노숙자센터를 전전긍긍한다. 부모가 없는 혈혈단신도 아니다. 그러나 홀로 계신 어머니는 아들을 거부했다. 답답한 환경에 갇히면 불안함을 넘어서 터져 나오는 청년의 과격한 행동. 신체 건장한 젊은 아들의 행동적 반응을 버텨낼 자신이 없던 노모는 아들과의 칩거를 두려워했다. (경미하든 아니든) 정신질환을 겪는 아들과 한 집에서 오래 지낼 수 없는 또 한 명의 연약한 이가 내린 힘든 결정이었다.
갈 곳 없는 아들을 버린 부모라고 단칼에 판단해 버릴 것인가?
시대적 비극. 어미는 노약자였고 아들은 정신적 취약자였다. 누가 더 약자인가 비교해야 하는 것일까? 누구를 위해 누구를 포기하라, 무엇을 포기하라 말해야 하는 것일까? 포기해야 하는 것의 수준이 보편적 사고로 판단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다. 본인이 되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다. 슬픈 일이다.
실내 생활이 어려운 8살 꼬마
그 아이 생각이 계속 났다. 실내생활이 어려운 그 아이. 자유로운 하늘과 공간으로의 사랑이 깊은 아이일까. 사방 건물 천지인 현대사회에서는 생활이 어려운 8살 소년. 그 아이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 아이를 돌보는 어머니의 얼굴도 스친다. 문을 닫은 학교, 밖으로 나가는 것이 어려운 어머니. 몇 달을, 몇 주를, 며칠을, 하루를, 1시간을, 10분을, 그들은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전쟁터가 되어가는 집
수많은 정신건강 지원센터들이 문을 닫았다. 센터에서 도움을 받던 정신건강 취약자들이 갈 곳을 잃었고 도움도 잃었다. 전문적 지식이 없는(전문지식이 있다 해도) 가족들이 돌봄을 이어나간다. 하루 24시간, 일주일, 한 달, 두 달, 달, 달, 달. 시간이 쌓인다. 그들의 오랜 지침도 쌓인다. 오랜 병간호에 같이, 혹은 먼저 쓰러지는 간병인 가족. 인간의 극기의 한계를 알아보는 실험실일까, 수많은 사람들이 작은 박스, ‘집’이라는 공간에서 쓰러지고 있다. 쓰러진 이들을 받아줄 곳들의 문은 닫혔다. 쓰러진 채로 시간은 흐른다, 잘도 흐른다.
나의 한숨의 깊이가 차원을 달리하는 코로나 시대를 보내고 있다. 내가 잃은 자유에 아쉬워하던 때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전쟁터가 이럴까, 타인의 고통이 나의 머릿속을 채우고 나의 가슴을 물들인다. 가상현실 기계로 전쟁터를 구경하는 느낌이다.
“너, 괜찮아?”
“어 괜찮아. 이상하게 괜찮다. 오히려 좋네, 가만있는 이 생활이.”
코로나 바이러스 발발로 봄을 놓치고 여름의 한가운데를 지나던 시점, 친구의 안부에 건네준 나의 대답이었다.
“나는 괜찮지. 근데, 그래서, 괜찮지 않네...”
코로나 바이러스로 약 1년을 통째로 날린 12월 현재, 나의 대답이다. 나의 안녕이 감사함을 지나 불편해지는 시점을 지나고 있다.
나만의 안녕이 편하지 않은 시점이다. 우리 모두는 지쳐가고 있다. 지친 그들을 보는 나의 눈도, 나의 귀도 지쳐간다. 1년째 고인 물. 그 안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물고기들을 본다. 알아차린다. 내가 즐기던 삶의 모든 모습들은 내 옆의 그들이 만들어 준 환경과 섞여있었다. 그들이 만들어 주었던 가든, 찻 집, 수영장, 책방, 극장, 갤러리, 스포츠센터, 등 등 등. 그들이 떠난 물에서 내가 살아남는다 치자, 다시 새로운 환경으로 적응하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마음과 몸이 적응해야 하는 그 시간.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버티고 버틴다. 추운 겨울 한파에 담요를 싸매고 동굴에서 열심히 버티는 모양새지만, 이 동굴조차 없는 이들, 이 동굴에서는 숨조차 쉴 수 없는 이들을 생각하며 나의 동굴을 조용히 돌아다닌다. 요란 떨지 못하는 감사함이다.
- 푸드뱅크에 음식을 가져다준다.
- 정신적 어려움으로 힘들어하는 주변인들을 살핀다. 대화를 건네고 전화를 하고 메시지를 전한다.
-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위생수칙을 철저히 지키고, 집 밖으로 나가기를 자제한다.
- 나 자신과 가족의 안녕을 유심히 지켜본다.
- 행여 사회가 필요로 할 직접적 인력이 될 날을 대비해 나 자신을 건강하게 지킨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게 전부다.
오늘은 크리스마스다. 2020년 12월 25일.
시댁에서 보내던 따뜻한 크리스마스가 그리워진다. 그래도 건강하게 가족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선물을 풀고 웃을 수 있어서 감사한다.
모두에게 크리스마스의 따뜻함과 축복이 가득하길 기도한다.
메리 크리스마스.
(2019년의 크리스마스를 그리워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