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사람들의 모임>
우울한 사람들의 저녁 모임
다시 뵙는 한 여성분. 저번 주는 한결 좋은 한 주를 보내신 듯했다. 작은 소소한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놀면서 즐거웠다고 말씀하셨다. 화나는 일과 속상한 일, 그리고 걱정되는 일로 가득 찼던 그분의 몇 주와는 달리 그녀의 얼굴에 미소와 폭소와 즐거움이 자리했다. 역시 감정은 전염된다. 진행자인 나는 기분이 좋았다. 늘 똑같은 일상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내고, 말로 뱉고, 그 말을 본인의 귀로 들으며 알아차릴 수 있는 성장적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냥 좋았다. 지금 이 순간, 이렇게 웃으며 즐거운 기억이 하나 더 늘어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넘치게 좋은 일이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모든 것이 감사하고 풍족했다, 그녀의 어머니의 이야기가 우리들 사이로 들어오기 전까지였지만 말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전해 들은 때, 16살 12월이라고 했다. 그때 그녀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이었다고 했다. 12월, 캐럴송이 매일같이 일터에 울려 퍼졌다고 했다. 저 멀리서 매니저가 할 말이 있다며 걸어오고 있었다고 했다. 그 방정맞은 캐럴송도 계속 들렸다고 했다. 그러다 갑자기 주변 동료들의 수다 소리가 사라졌다고 했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캐럴송, 그리고 자신에게 가까워지는 매니저의 모습만 가득했다고 했다.
"I am so sorry for your loss."
매니저는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전해주었다고 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마지막 날을 기다리고 계시던 어머니였다고 했다. 소식을 전해 들은 뒤로 한 참 동안 그 캐럴송은 멈추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12월마다 들리는 그 캐럴송 때문에 불편하다고 했다. 30년여 지난 지금까지도 그 캐럴송을 들으면 그때 그 매니저의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에게 가까워지는 장면과 온몸에 퍼지는 무력감을 느낀다고 했다.
PTSD,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떠올렸다. 충격적인 사건에 대한 내 몸의 반응. 내 몸안에 갇히는 그 충격의 감각. 시간이 흘러도 전혀 달라지지 않는 그 생생한 느낌.
노래가 가지는 힘은 잘 알고 있다. 청각과 기억은 어마 무시하게 서로를 끌어당긴다. 추억 속의 노래들. 노래를 듣다 보면 그 노래를 들었던 그때 그 현장의 배경이 떠오르는 경험들을 갖고 있을 것이다. 나는 심지어 그때 맡았던 향기까지 기억나는 경우도 있다. 그때 느낀 감정으로 내 몸이 세팅되는 경험이다. 어떤 노래를 들었을 때 그때가 고3 때였는지 고1 때였는지도 기억해낼 수 있다. (나이가 들면서 그런 기억의 날카로움은 좀 무뎌졌지만.) 그런데 그 신기한 노래의 기억력이 괴로운 기억들에 힘을 발휘할 때에는 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잊고 싶으나 떠올려지는 자신의 몸의 감각들을 또다시 경험한다는 것은 신기함을 넘어 위협적이기까지 하다.
그녀의 이야기에 나는 큰 한 숨, 속으로 그녀를 크게 안아주었다. 노래에 갇힌 기억인지, 기억 속에 묶인 노래인지, 아무튼 그 괴로움을 나도 알기 때문이다.
그녀의 캐럴송은 내게 전람회 2집 전곡이다. 고등학생 시절, 나는 전람회의 팬이 아니었다. 계속 팬이 아니었으면 좋았을 것을... 지금 나의 애정 가수는 이적과 전람회의 김동률이다. 나의 20대와 30대를 통틀어 가장 오래 나와 함께한 목소리들이다. 좋아하지 않았다면 불편하지도 않았을 전람회 김동률의 목소리. 나는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목소리 하나를 오랫동안 멀리해야 했다. 그의 목소리를 타고 넘어오는 고등학생 시절의 기억과 감각을 감당할 수 없던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고 2학년, 나는 소중한 사람을 하늘로 보냈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학교를 가지 않았다. 방안에 처박혀 밥을 먹었는지, 잠을 잤는지, 심지어 화장실을 갔는지 조차도 기억이 나지 않는 아주 긴 몇 날들이 있었다. 가족들이 말해주었다, 그렇게 내가 일주일을 방 안에서 있었노라고. 그 일주일 동안 나는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장례식장도 가지 않았고 학교도 가지 않았다. 그때 세상의 모습에 대한 기억이 없다. 하루 24시간의 흐름도, 하루하루 지나갔을 날들의 흐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내 기억에는 단지 어두움과 침대, 책상의 방 구조 그리고 커튼의 모습만 남아있다. 커튼을 치고 어두운 방 침대에 누워 내내 음악만 들은 기억밖에 없다. 그게 전람회 2집 앨범이었다. 언니의 방이었고, 언니가 가지고 있던 앨범 중 하나였다. 내가 골라 찾아 들은 것인지 그 앨범이 CD기에 이미 꽂혀있던 것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왜, 하필 그 앨범이 내가 나중에 좋아하게 될 목소리의 앨범이었던 건지, 그 운명이 맘에 들지 않을 뿐이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이후 나는 특별하다 싶은 어떤 음악도 듣지 않고 일상을 이어갔다. 원래 음악을 즐겨 듣던 고등학생 시절이 아니었으니 별 다를 게 없던 날들이었다.
대학생이 되었다. 가수 이적과 자우림, 윤도현 그리고 김동률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들의 노랫말과 목소리 모든 게 좋았다. 김동률의 목소리에 반응하지 않았다. 전람회 2집의 김동률이 아니었기 때문임을 나중에 알았다. 어느 날 우연히 길을 걷다 전람회의 2집 앨범 수록곡 중 하나를 듣게 되었다. 전주가 시작되자마자 나의 가던 걸음이 멈춰졌다. 어깨가 뻐근해지고 팔에 닭살이 돋았다. 김동률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전이었는데. 나의 고2, 그 방이 기억났다. 그리고 내가 그 방에 다시 들어가 있었다. 몸과 마음, 내 머리에 전에 없던 분위기가 감돌았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구별하지 못했다. 나는 그렇게 길 위에서 얼어버렸다. 내 몸이 굳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머리가 지끈 압박감이 점점 강하게 느껴지자 나는 그곳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노래를 끝까지 들을 수가 없었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고등학생 때 떠나보낸 그 소중한 사람과 함께한 일주일의 그 방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가사를 소화시킬 에너지가, 그 기억을 다시 겪어낼 에너지가 없었다. 내 몸의 혈류량이 부족해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혈류량이건 호흡량이건 어느 것도 흘려보낼 수가 없는, 어딘가 막힌 듯한 그런 얼음 같은 시간이었다. 그 후로 나는 전람회 노래를, 김동률의 다른 앨범도 들으려 시도하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가 나의 고등학생 시절을 가둬 안아버린 것이라 생각했다.
30살을 맞이하면서, 새로운 가수를 알게 되었다. 가사가 던지는 질문들이 중요하던 내게 영어로 된 팝송은 왠지 와 닿지 않았다. 그런 내게 손에 꼽힐 정도의 외국 가수들이 있는데 그중 한 명이 될 새 가수였다. 영국 가수 아델. 아델의 노래를 듣던 30살 초반, 오랫동안 사귀던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 여느 전 남자 친구들과 비슷한 이별일 줄 알았다. 청혼을 받았고, 나는 또 거절했다. 청혼하지 않았다면 계속 잘 지냈을 나의 오랜 친구가 될 남자였는데, 아쉬웠다. 그러나 나는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그가 아니라 그 누구와도 결혼을 할 생각이 없던 때였다. 그 사실을 알고 사귄 친구였지만 역시 또 내게 이별을 당겨냈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다. 또 그렇게 흘러갈 인연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는, 20대의 나와는 좀 달랐다. 그 친구의 특별함이라기보다 내 나이의 특별함이었다고 생각했다. 사귀던 사람과 헤어지던 20대의 날들과는 조금 달랐다. 아주 오랜 '친구'를 잃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고, 그래서 아주 많이 슬퍼했다. 일주일에 서너 번 늘 통화하고 지내던 롱디 커플 3년을 보낸 뒤였다. 연인이라기보다 너무 좋은 친구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오랜 친구를 잃는 것 같은 느낌에 생이 다 슬퍼지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때, 한 창 잘 듣고 있던 아델의 음악을 듣지 않으려 억지로 노력했었다. 음악과 기억의 가둠, 그걸 모르지 않던 나였다. 내 생에서 아델의 목소리를 잃고 싶지 않았다. 일부러 다른 노래들을 찾아 들으며 마음을 위로했다. 그런데 자꾸 나는 아델의 음악으로 달려갔다. 그녀의 노래만이 나와 함께 온전히 있을 수 있는 기분이었다. 고민했다. 지금을 살려야 하나 나중을 살려야 하나. 지금 아델의 이 노래를 들어버리면 앞으로는 이 노래를 들을 수 없게 될 지고 모르는데, 살려야 하는 순간이 지금인지 나중인지 선택하기가 어려웠다. 내 머리는 나중을 살리자, 아델의 목소리를 살리자 선택했다. 그런데 내 머릿속 의식은 내 가슴의 힘을 이기지 못했다. 내 가슴은 아델의 노래를 틀어 내 마음에 갖다 바쳐댔다. 듣고 또 듣고. 아델의 목소리가 내게 나를 만나게 해 주었다. 아델의 노래가 나의 마음을 보여주었다. 머리보다 가슴의 생명력인가, 이성보다 본능인가, 생각보다 감정인가, 생각했었다.
다행히 아델의 목소리는 그곳에 갇히지 않았다. 아니 갇혀는 있었으나 내 몸을 꼼짝 못 하게 얼려버리진 않았다. 슬픈 기분으로 끝까지 노래를 들어낼 수 있는 정도의 여유 있는 가둠이었다. 시간이 흘러 김동률의 다른 노래들을 들을 수 있게 된 것도 아마 시간을 헤쳐 나온 내 몸의 에너지 크기가 자란 것이었을까. (그래도 전람회 2집 중 몇 곡은 아직도 듣지 못한다).
아델의 그 노래를 들으면 눈 내리는 캐나다 학교 옆에 자리한 집. 내 방과 그 책상, 책상 앞에 놓인 학교 교재들과 내 옆에서 공부하던 친구가 생각난다. 그 겨울, 캐나다의 새벽 겨울밤 그리고 그 남자 친구를 생각하는 나 자신. 아델의 그 노래는 너무도 슬픈 인간의 마음을 생각하게 한다. 이후로 나는, 드라마 속 짝사랑 중인 모든 캐릭터들을 주인공으로 바꿔버렸다.
마음이 힘들 때 음악으로 위로를 완전히 받지는 못한다. 아름다운 음악, 슬픈 음악, 그 음악들이 전해주는 위로가 적지 않은 나인데... 음악을 보호하는 새로운 태도의 발현은 내 생에 큰 상실이자 아쉬움이다. 음악을 찾아 듣고 가사에 공감받고 선율에 위로도 받지만 딱 거기까지. 여전히 늘 어느 정도 가슴에서 거리를 두게 된다. 너무 사랑하여 부서질까 다가가지 못하는 그런 그림.
캐럴송에 엮인 한 여인의 상실과 절망감에 잠시 깊이 나를 들여다본 세션이었다. 그녀의 크리스마스는 늘 이렇게 슬프게 남을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아리다.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운 날들이 누군가에게는 슬픈 날이 되는 이 다양한 세상의 작은 우주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오늘 밤은, 내게 아름다움으로 다가온 베토벤의 비창을 틀어주고 싶어 졌다. 그녀에게도 아름다움을 전해줄 한 곡, 그녀의 귀가 길 어딘가에서 운명처럼 울려 퍼지길 바라본다.
Make You Feel My Love
When the rain is blowing in your face
And the whole world is on your case
I could offer you a warm embrace
To make you feel my love
When the evening shadows and the stars appear
And there is no one there to dry your tears
I will hold you for a million years
To make you feel my love
I know you haven't made your mind up yet
But I will never do you wrong
I've known it from the moment that we met
No doubt in my mind where you belong
I'd go hungry, I'd go black and blue
And I'd go crawling down the avenue
No, there's nothing that I wouldn't do
To make you feel my love, yeah
The storms are raging on the rolling sea
And on that highway of regret
The winds of change are blowing wild and free
You ain't seen nothing like me yet
I could make you happy, make your dreams come true
There's nothing that I wouldn't do
Go to the ends of this Earth for you
To make you feel my love
To make you feel my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