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간. 헛(헛한) 소리>
나를 안다는 것은 나의 삶에서의 실험들에 대단한 경제성과 정확성과 효율성을 가져다주었다. 선택이 조금은 쉬워진 것이다. 무엇이 나를 옥죄고, 무엇은 나를 건들지 못하는지, 알고 나니 선택은 쉬웠다. 그리고 그 결과도 거의 배신하지 않았다. 결과에 대한 나의 마음만 책임지면 될 일이었다.
———-20——
자유라는 말에 구속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대 중반 어느 날, 나는 ‘자유롭고 싶어’라는 말이 계속 나를 뒤좇아 오는 것 같았다. 잡히지 않는 거리로 저만치 앞에 있던 자유가 어느 날 내 뒤를 좇아오는 듯했다.
‘뒤라니.... 내가 도망을 가는 것이었나?’
중도.
가운데.
균형을 맞추는 것이 어렵다는 것.
책을 통해 배우는 던 그 말들을, 조금씩 알아먹기 시작한 때였다.
균형이 무슨 말인지 새삼 못 알아먹었다. 뭐가 균형인지, 어디에 맞추는 게 균형이고, 내가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인지를 알려주는 척도는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저 흔들리지 않는 것이 균형인지, 반대되는 두 성향을 모두 가져서 평균을 내 가운데가 나오면 된다는 것인지. 이렇게 말도 안 되게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것이 균형이라면, 나는 말길을 못 알아먹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내 마음의 상태가 균형과는 거리가 먼 곳에 위치함을 확신했다. 진리가 그렇게 복잡할 리가 없으니까. 알아차리기 어려운 게 진리이지, 이해하기 어려운 게 진리라고 생각하지 않던 때였다.
20대. 그때 나는 자유와 균형에 관심이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한참을 잘못 갔다. 아니 너무 일찍 간 건지도. 한쪽에 확 치우치든 여기저기 흩어져 정신없이 자취를 그려내야 할 나이에 벌써 균형을 생각하다니... 자유와 균형이 나의 진짜 관심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에서의 탈출로 그것들에 꽂혔던 건지, 아무튼 나는 구별할 수 없는 그 이유들 사이에서 한참을 매달렸다, 자유에, 균형에.
흔들리지 않고 싶었다. 흔들리지 않는 그 ‘무엇’이 어떤 상태인지 궁금했었던 때였다. 나는, 밤마다 꿈속의 세상에서 아주 많이 흔들리던 20대를 살았기 때문이다.
자유로우면 흔들리지 않을 줄 알았다. 내가 자유롭지 않아서, 갇혀서, 그래서 흔들리는 건 줄 알았다. 갇혀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라 생각했었다. 기억에 갇혀 꿈속을 거닐며 매일 밤 흔들리는 내 몸 덩이에 이제 더는 흔들릴 것도 없을 것처럼 지쳐 나뒹굴었지만 그 후로도 아주 오랫동안 흔들리기는 멈추지 않았다.
차츰, 내가 흔들리는 것인지 내가 흔드는 것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나는 흔들리는 것에 지쳐, 자유롭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갇힌 것의 반대말로 ‘자유’를 생각해 낸 것이다.
늘 의문이었다. 내가 처한 상황의 반대편에서만 무엇인가가 제대로 보이는 것인지, 그 반대의 무엇인가를 보아야만 내 것이 제대로 보이는 것인지 궁금했다. 내 기억 저편 반대쪽에서 무언가를 발견해보는 것이 내게 주어진 첫 여행 일건가 싶었다.
내 기억은 한 곳에 너무 오랫동안 머물러 돌아다니지 못했다.
괴로움의 반대말이 편안함이라고 찾아내지는 못하던 때였다. 편안한 것은 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이라 생각했었기도 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 그 고요. 아무것도 느끼지 않음이 축복일 거라 착각하기도 한 때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이 평화이고, 편안이며, 자유를 위한 바탕일 거라고 생각했었는지도 모른다.
현재의 자유는 과거의 자유에서 시작인 건가 생각했었다. 그렇다면 자유롭긴 글렀구나 생각했다. 지금 자유로워야 나중도 자유로울 텐데, 나중도 글러먹었나 생각했었다.
나의 생각만으로 쌓인 괴로움인데, 나의 생각을 없애는 것으로는 해결이 되지 못했다. 또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때였지만, 나는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들로 꿈에서 괴로워했다. 새벽이면 흔들리는 몸과 마음을 잡아내느라 밤의 고요를 끝내 누려보질 못했다, 29살이 되기 전까지는.
——30——
그리고 다시 ‘자유’를 생각했다.
서른이 넘고 찾은 자유는 또 자유롭지 못했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고, 생의 순간에 별 일 없다고, 자유롭지는 않았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야 오는 게 자유인 거였나, 또 싶었다.
자유로우려니 생각보다 생각할 게 많았다. 자유 앞에는 나의 두려움도 놓여 있었다. 내가 잃을 것, 내가 얻을 것, 그 둘 사이의 공간을 알아차리는 순간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원하는 것이 많을수록, 그것 저 편의 잃을 것도 생각해야 했다. 그 잃을 것의 주인이 나만이 아닐 때, 누군가와 공유되는 것일 때 나는 자유롭지 못했다.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자유 앞에서, 마음을 가만히 둘 편안함을 가져다준 남자 친구와는 헤어질 수도 있다는 것, 앉고 싶은 자리에 앉으면 그 자리를 원하는 다른 이들의 적이 될 수도 있다는 인생사를 알아야 했다. 누군가의 악행을 바로잡고픈 자유 앞에는 내가 챙겨야 하는 또 다른 잃음들의 종류도 알아야 했다. 그리고 선택해야 했다.
‘나의 원함으로 인해 타인이 무언가를 잃어야 하는 거라면?’
내 자유의 반대쪽 정극으로 데려가는 조건이다. 이 조건 아래라면, 나는 나의 자유로 한 발짝도 가지 못했다. 공정함이 아니다. 이타심이 아니다. 내가 타인의 삶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 또 나의 밤에 찾아와 나를 흔들지도 모른다는 불안이다. 철저히 이기적인 나의 불편함이다. (두려움이었나? 아니면 오지랖이었나.)
무엇이 더 나를 자유롭게 할 것인지를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각했다. 내 미래의 가치관을 모르는 현 상태로 지금 나의 선택을 결정한다는 것은 어렵다 생각했다. 무엇이 그리도 전부 ‘연결’되어 있던 건지, 어느 순간도 홀로 존재하지 못했다. 내게 완전한 자유는 없었다.
——40——
그러나,
그렇고 그런 30대의 고민들을 경험하고 실험하면서 나의 자유에 대한 방향을 대충은 읊을 수 있는 ‘지금’에 와있다, 다행히. 무엇을 하면 자유롭고 무엇은 나를 가두는지, 나는 나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고, 생각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나를 안다는 것은 나의 삶에서의 실험들에 대단한 경제성과 정확성과 효율성을 가져다주었다. 선택이 조금은 쉬워진 것이다. 무엇이 나를 옥죄고, 무엇은 나를 건들지 못하는지, 알고 나니 선택은 쉬웠다. 그리고 그 결과도 거의 배신하지 않았다. 결과에 대한 나의 마음만 책임지면 될 일이었다.
나의 마음에 평화는 그렇게 찾아왔다. 평화가 찾아왔다고 자유가 늘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유를 하나 얻을 때마다 나는 다른 자유를 하나 내어놓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그것을 아는 것이 평화였다.
다 가지지 않으리라 맘먹는 것이 우선이었을까. 나는 '하나'만은 가지자는 마음으로 나를 위로하고 훈수 둔다. 하나의 선택에 하나의 자유만. 그리고 선택의 횟수를 여러 번 늘리면 될 일이라 여긴다.
어제 북 클럽의 한 멤버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엄마가 꿈이 크면 아이가 힘들어요.”
설명하지 않아도 난 이미 큰 고개를 끄덕였다. 하고 싶은 실험이 많은 엄마인 나는 그 실험을 하는 곳곳마다 아이와 남편의 달력을 동시 체크하며 살고 있다. 나의 꿈이 크면, 그들의 스케줄에도 큰 변화가 가해진다. 스케줄 사이에서 고민을 한다. 누구 달력의 계획을 지우고 누구 것을 그냥 둘 것인지.
큐브를 맞추기 위해 생각해야 하는 수. 나는 그 수를 몇 주에서 몇 개월, 몇 년까지 계산하며 스케줄 패를 옮기고 돌렸다. 내 실험들이 있어서, 내 계획이 있어서 힘들었다. 스케줄을 맞추는 일은 언제나 힘들었다. 내 달력의 스케줄 칸들이 늘 많이 지워졌다. 접히는 내 실험들이 괜히 꼭 유레카 실험 들일 것 같아 지우기 불안하고 아쉬웠다. 그래도 여전히 내 달력의 칸들이 접히고 사라졌다.
실험하고픈 자유를 한 둘 내어놨지만 이제는 그 여러 달력의 주인들과 시간을 ‘함께할 자유’는 내가 쥐고 있음을 인지한다. 많이 내려놓았지만 다 내려놓을 생각은 없다. 그저 하나 주고 하나 받고, 두 개 주고 하나 받고, 세 개 주고 하나 받고, 대신 그들과 함께하는 자유를 내가 선택한 것이다.
모든 걸 다 하지 않는 자유. 모든 걸 다 하는 건 또 정말 자유일까. ‘내가’ 결정하지 않음 속에서 오는 경험, 내가 선택하지는 않았을 그 경험들에서 오는 결과를 구경하는 자유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계획하지 않을 자유와 계획하는 자유, 둘 사이의 줄타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내가 잃을 것’과 ‘내가 얻을 것’ 두 가지로만 선택될 수 있던 지난날들이었다. 그런데 ‘내가 아는 것’과 ‘내가 모르는 것’으로 나눠지기 시작한다. ‘선택함’과 ‘내버려 둠’으로 가만히 바라보기 시작하니 내 한계를 넘어서는 즐거움과 경험들이 스멀스멀 늘어난다는 것도 이해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리는 그림보다 내가 그리지 못하는 그림이 더 큰 범위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 이것도 ‘나이’가 주는 것이라 퉁쳐야 하나. 절반은 내 한계 안에서 선택하고, 남은 반은 던져주는 대로 받으리라 여겨 보았더니 ‘계획하는 자유’와 ‘계획하지 않는 자유’를 다 가진 느낌이다. 여집합이 없는 상태. 자유의 모든 방향을 다 얻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또한 쓸데없는 느낌일 텐가.)
지금은 이 정도까지인 걸로.
내 인지는 이 정도에서 만족하고 있으니 그걸로 된 걸로.
40대를 마칠 때, 난 또 무어라 적을 건가.
“지금 내게 자유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