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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국 엄마달팽이 Dec 17. 2020

나의 20대 구호, “인생, 사바세상이야”

[많이 떫은 나]

꿈이 많았던 20대.

늘 그렇듯 하고 싶은 일 많고 호기심 많고 장난기 많은 내 모습에 나를 안다는 이들,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꿈 많았지 너.' 그러나 내가 정말 말하고 싶은 건 심리학적 꿈이 아니라 생리학적 꿈이다. 밤에 자면 꾸는 꿈.

꿈을 많이 꿨다. 그 꿈들 대부분은 새벽마다 나를 울리고 깨우는 것들이었다. 울리다 깨우던지, 깨워놓고 울리던지. 절벽에서 떨어지고 괴물을 만나고 누군가에게 쫓기는 그런 장르는 아니었다. 늘 한 사람. 내 꿈은 늘 한 사람의 출연으로 채워졌다. 소중했던 사람이 하늘로 떠난 줄 알았는데, 내 꿈으로 떠났을 줄이야. 다시 만나고 이별하기를 반복하는 밤과 새벽을 살아내는 일상이 몇 년간 이어졌다.

악몽이었다. 꿈에서 깬 직후, 딱 그 1시간이 늘 악몽이었다. 다시 만나고 싶은 그 사람, 다시 만날 수 없는 그 사람, 그런 사람을 매일 밤 만나고 매일 밤 꿈인걸 아쉬워하며 울고 울었다. 낮과 밤이 다른 생활이 계속되었다. 낮에는 에너지 넘치는 청년으로 밤에는 울보 겁보 얼음 쟁이로 옷을 갈아입었다.  

대학생활 중 스님들의 책을 집어 들었다. 친구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생이 고야.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고통인 거야. 뭐 물론 즐거운 순간들도 있지. 그건 순간이고, 생의 바탕은 늘 고야. 슬픔을 깔고 사는 거야 우린. 이놈의 사바세상.”

친구들은 웃었다. 늘 웃기고 선머슴 같은 내가 '사바세상'이라니. 그 소리'사바'때문에 제 성격처럼 웃긴 걸 골랐다 싶었을 거다. 아무도 심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좋았다. 아무도 모르게 내 마음을 가벼이 드러낼 수 있어서, 좋았다.

사바세상. 그때도 뜻을 모르진 않았을 건데. 오늘 사바세상의 뜻을 읽고 순간 멍했다. 기억은 잘못되었다. 잘못 해석을 했던 것인가. 뜻을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다.

-우리가 거주하는 이 세계를 ‘사바 娑婆’라 부른다.
‘감당할 수 있다’, ‘견딜 수 있다’라는 의미이다-

사바는 범어로 '참는 땅'이라는 뜻이다. 아, 이를 어쩐다...! 나는 견딜 수 있는 세상을, 그저 견뎌내야 하는, 참아야 하는 무지막지한 세상으로 읽어냈구나. 한 단어의 해석의 차이로 내 인생이 180도 바뀔 수 있었다는 사실을 소화시키는데 몇십 분이 걸렸다. 해석하나 잘못해서 나의 긴 생도 잘못 살아낸 것인가 생각이 들자, 멍청한 내 수준에 화가 나고, 누구에겐 지 모를 억울한 감정까지 몰려왔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는 괴로움, 어려움, 가난, 기아, 추위, 더위, 성냄, 원망을 참아야 할 뿐만 아니라, 부귀, 즐거움, 이익, 명예를 견뎌야 하기 때문에 세상살이에서 인내의 수양과 공력이 있어야 된다-

인내라는 고도의 지혜가 갖춰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참지 못할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지 못할 것도 행할 수 있는 단계를 해낼 수 있다고 한다.

마인드풀니스를 공부하고 나니 이 말이 더 쉽게 이해된다. 공부란 건 늘 이렇듯 세상을, 삶을 이해하는 데 서로 엮여있는 것이다.

-인은 인식하고, 받아들이고, 감당하고, 처리하고, 해소하는 것이다-

돌아 돌아 이제야 겨우 삶의 모습을 이해하는 시점에 와 있다. 돌아서라도 제대로 왔으니 다행이지만, 감사하기만 하기에는 오늘은 조금 슬프다. 매일 밤 울며 새벽 눈을 뜬 나의 여리고, 그래서 부서졌고, 그래서 찬란했던(지금에야 그래 보이는) 청춘이 안쓰럽기 때문. 그때 알았더라면, 아주 조금만이라도 세상사 해석에 도움을 받았더라면 나의 어린 영혼이 그렇게 발 시리게 깨어지지는 않았을 텐데.

어린 20대의 나는 '부서지는 동안 강해졌다'말하며 버텨왔는데, 40살이 된 나는 '너무했다' 다시 성토해 대고 있으니. 그 뒤로 20년간 잘 익어 온 줄 알았는데 사실 나는 떫은 감이 된 건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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