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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워지기 전에는 무너짐이 먼저 찾아온다.

스물아홉에 넘어지고 서른 즈음에 다시 일어서다. 

스물아홉, 질서도 목적도 없이 잘게 잘린 색종이처럼 삶이 흩어졌습니다.

더러 위로를 가져다주노라 회자되는 것들로 그 조각들을 이어 붙여보려고 했지만 더 잘게 부서질 뿐이었지요.

제 모양을 잃은 마음에 아기 살결보다 보드라운 바람이라도 스칠 때면 깊은 신음을 참아내기에 바쁜 날들.


'마침내 나는 사라졌구나.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채 버려져있는 비닐봉지처럼, 구겨진 삶이구나.'


무너진 자리에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공허에 공허를 더하는 울림뿐.

공허도 쌓이면 깊이가 생기는데,
움푹 파인 어느 구덩이에 들어앉아 멋대로 주어진 생(生)의 무게를 가늠하다 보면

사(死)의 영역도 내 것이 아님을 알게 되곤 했습니다.


주어진 삶에서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한 가지라도 있는가 싶어

해 넘어가는 시간에 맞춰 사방에서 함께하는 그림자를 친구 삼아 걷기 시작했어요.

지나간 날들은 발목의 모래주머니가 되어 걸음을 늦추고,

다가올 날들에 압도되어 하늘은 잊은 채 딛고 있는 한 걸음의 땅만 겨우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라도 걸을 때에는 속은 비어있을지언정 존재함에 대한 의심은 가시니 좋더라고요.


어느 날엔가, 시멘트와 대리석으로 만든 계단 틈에서 피어난 들꽃에 눈길이 갔답니다.

바늘 하나 드나들 만한 자리도 없어 뵈는 삭막함 속에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앉은 자태가 곱더군요.

고운 것이 내 안에 들어와 다시 생명의 힘을 맛보게 하니 기뻤습니다.

감동을 머금고 있자면 이내 마음의 다른 한 편에서 툭하고 던지는 소리가 발 앞에 떨어지는데,


'질기기도 하네, 봐주는 이 하나 없는 자리에서. 피려거든 꽃밭에나 필 것이지. 바보 같아.'


피부처럼 익숙하여 되받아쳐본 일이 없는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불현듯 거슬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칭찬까지는 건네지 못해도 곱게 봐주면 좋으련만.

인색하다 못해 쓸쓸한 삶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어 오래 알고 지낸 이에게 전활 걸었습니다.


"전에 제안했던 그 상담 말인데, 그거 어떻게 받을 수 있는거야?"


제대로 살아봐야겠다는 다짐 같은 건 없었어요.

살지 않을 순 없으니 살아있어야 할 이유에 대한 답을 누구라도 들고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랄까요.

이해해 보려는 시도조차 포기하게 되는 이 마음의 파편들 속에서 원래의 그림을 찾아줄 누군가를 찾아 나선 셈이지요.


내담자의 자리에서 시작된 심리 상담가와의 만남.

대부분의 시간은 필자의 일방적인 쏟아냄으로 채워졌습니다.

상담자 앞에서 입을 열어 속에 있는 것들을 꺼내 보이는 일은

단순히 '말'을 하는 행위 이상의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었답니다.

마음을 토해 내고 나면 입고 간 옷이 다 젖을 만큼 식은땀이 흐르기도 하였고,
온몸이 파르르 떨리기도 하는 게 기대했던 편안함과는 거리가 멀어 당황스럽기도 했네요.


상담가는 어떠한 평가나 조언 없이 온전한 허용으로 불안을 어루만져주었습니다.

아무렇게나 터트려대는 이야기들에 지칠 법도 할 텐데,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래요. 그랬군요."라는 추임새를 띄엄띄엄 건넬 뿐이었죠.

건네 들은 이야기를 열 손가락에 꼽아볼 수 있을 정도로 상담자는 말을 아끼더군요.

그렇게 상담가와 함께한 예닐곱 번의 만남이 이뤄진 뒤로 여러 해가 바뀐 지금,

필자는 이제 상담가의 자리에서 내담자들을 세워가는 일을 합니다.

떠밀려 흘러온 삶이 아닌, 스스로 노를 저어 아직 흐릿한 목적지를 향해 흘러가는 중이지요.

이제는 내가 나를 세우고, 또 어떤 이를 세움으로써 함께 서고자 하는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세움'에 뜻을 두어 정답이 아닌 과정으로서의 삶을 더듬어 가는 데에는
상담자가 나를 일으켜 세운 한 마디가 있었습니다.


"당신은 내면에 힘이 있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그 힘이 있다는 걸 당신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아요"

누군가 건넨 한 마디의 말이,

주고받은 한 번의 눈 맞춤이,

내밀어 준 한 번의 손길이,

사랑이 담긴 품에서 느낀 한 번의 온기가

우리를 세워주고 있는 건 아닐까요?


세워지기 전에 무너짐이 먼저 찾아옵니다.

그러니 우리는 아무개의 넘어짐을 반겨주어야 하겠지요.

흔들림을 환영하는 품이 있는 한 우리, 함께 설 수 있음을 믿습니다.


불완전한 존재,

여전히 비틀거리지만 온전함의 의미를 따라 걷는 한 사람.

상담자의 마음 일기를 시작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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