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꿈

원점회귀, 가 아니고 싶다.

by lotus

어릴 때 꿈이 생각났다.

소이증을 극복하고 대단한 사람이 되어 사람들 앞에서 강연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나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를 만드는 것. 내가 감독도 하고 작가도 되어, 나의 영화를 상영하는 게 나의 꿈이었다.



나는 정말 갑작스럽게 우울이 찾아올 때가 있다. 그게 바로 오늘이었다. 김창옥쇼를 정말 재밌게 보고 있었다. 다른 이들의 삶을 바라보면서 문득 내 삶에 투영했다. 어릴 적부터 늘 생각해 오던 의심이 있었다.


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갈 수 있을까?

소이증을 가진 나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이 우울이 휘몰아치는 때에도 사랑으로 감싸줄 사람이 있을까?

오른쪽으로 길을 늘 걸어주며 들리지 않아 다시 되묻는 때에도 화내지 않고 친절하게 다시 한번 이야기해 줄 사람이 있을까?

소이증이 유전이 되지 않으리라 확신하고 나는 내 아이를 가질 수 있을까?

태어난 아이에게 나의 아픔을 토로하고 이런 엄마여도 사랑해 주겠니?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올까?


사고라도 난 듯, 정말 열심히 웃다가 정말 열심히 울었다. 갑작스러운 사고흐름에 나도 당황스럽다.

온전히 나로 살아가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지금도 여전히 어린 날에 멈춰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걸 받아들이고 또 현재를 살아가야겠지마는, 지금은 눈물이 잘 멈추지 않는, 그런 때다.


2050년엔 빙하기가 온다는데, 마음에 벌써 빙하기가 왔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늘 하곤 했다. 그래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야지,라는 마음이 저절로 연결되던 어릴 적 마음을 다시 떠올릴 필요가 있다. 열 살의 나보다 서른의 내가 더 약하다니.



사실 이 생각이 갑자기 많아진 것은 아니다. 다음 주에 산정특례를 받으러 대학병원에 간다. 난청과 소이증으로 건강보험 산정특례 대상자로 신청하고 나의 안면왜소증에 조금은 기여하고자 부단히 노력 중이다. 1년 ~ 1년 반 정도 선교정을 하고 턱교정 수술을 한 다음, 1년 정도 더 후 교정을 해야 한다고 들었다.


내가 벌써 서른인데, 30에 교정 시작해서 31이나, 32살 정도에 양악수술하고, 33~34 정도 교정을 끝낸다. 와, 나는 30대 초반을 또 오랜 기간 대학병원 간 함께 해야 한다니.


마음이 참 많이 착잡해졌다. 21살에 시작한 소이증 수술이 23살에 끝났을 때에도 기나긴 세월 정말 고생했으니 다신 대학병원 오지말자,라는 생각이었다. 어차피 완벽한 대칭이란 없고 인간은 누구나 비대칭이라는 생각 때문에도 그랬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이 2배였던 소이증 수술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완벽해질 줄.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고새 10년 지났다고 아픔을 까먹었나. 또 수술을 알아보러 다니는 것도 참 기가 막혔다. 치아교정과 턱 교정을 위한 수술이 누구나 많이들 한다지만, 갈비뼈를 잘라내어 왼쪽 귀에 붙인 내가 또 아픔을 견뎌내어야 할 만큼 뭐 대단한 사람이 될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앞으로 뭐 할 건데?라는 모 대학병원 구강악안면외과 교수에 말이 가슴에 퍽 닿았다.

뭐 안 할 거긴 해요. 티브이에 나올 것도 아니고, 그냥요. 우물쭈물했다. 좀 속상했다. 말에 꽂혔다기보다 가난한 나의 마음이 애잔했다. 아 가난한 내 마음아. 이제 진정하고 오늘을 보내자. 내일은 덜 속상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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