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SP 특징 #3> 감정의 풍부함과 공감 능력
저는 눈물이 참 많습니다. 올림픽 시즌 국가대표들의 감동적인 순간들을 담은 TV 광고만 봐도 금방 눈시울이 붉어지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슬픈 장면이 나오면 아내가 민망해할 정도로 눈물이 줄줄 흘러요. 의식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공감 스위치'가 켜지면서 그 주인공의 감정에 동기화되는 느낌이랄까요.
남자는 인생에서 세 번만 울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라던 시대라, 어렸을 적에는 억지로 감정을 참아야 했던 적이 많았어요. 눈물이 날 때면 남자답지 못한 걸 부끄러워하기도 했죠. 하지만 이제는 울고 싶을 때마다 실컷 웁니다. 흐르는 감정을 억지로 막지 않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남들보다 풍부한 감정 세계를 가진 제 자신을 부끄러워하거나 미워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을 더 깊게 느끼고,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살아가니 마음도 한결 편해졌어요.
HSP에게 감정은 단순히 '느끼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 전체로 깊게 반응하는 경험에 가까워요.
행복의 짜릿함도 남들보다 크지만, 반대로 힘들 때의 고통도 두 배입니다. '찬란하면서도 버거운 삶'이라 표현하는 것도, 바로 이 감정의 풍부함 때문이에요. 좋은 것도 두 배고, 나쁜 것도 두 배면 괜찮은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특성상 부정적 감정의 여운이 훨씬 강하기 때문에 차라리 감정이 없어져버리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정보를 깊게 처리하고 반응하는 HSP 특유의 신경체계는 생각의 풍부함과 함께 '감정의 풍부함'으로도 나타납니다. 모든 감정을 남들보다 깊이 느끼고, 더 섬세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거죠. 정서적 반응성이 높기 때문에 같은 상황에서도 감정을 훨씬 깊게 느끼고, 주변의 분위기나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도 쉽게 동화됩니다.
이렇게 감정의 폭이 넓고 공감 능력이 좋다 보니, 소설, 영화, TV 속 주인공의 감정에 쉽게 몰입이 되고, 친구들의 넋두리를 듣다 보면 내 일처럼 슬프거나 화가 나기도 합니다. 스쳐가는 바람과 아름다운 풍경에서도 더 큰 감동과 행복감을 느낄 수도 있고, 동물들이나 심지어는 인형 같은 사물에도 쉽게 감정이 이입돼요. 남들이 느낄 수 없는 것들을 느끼고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은 예술적 감각이 필요한 분야에서 커다란 장점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변의 감정에 쉽게 연결되면서 감정의 경계선이 흐려지기 쉽다는 단점도 있어요. 타인의 감정을 내 감정처럼 품어줄 수 있는 다정한 사람들이지만, 그 경계를 제대로 지켜내지 못할 시에는 타인의 감정을 배려하느라 정작 자신의 마음이 희생되기도 해요. 주변의 이기적인 사람들로 인해 '감정 쓰레기통'처럼 이용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다정한 만큼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상처도 많아,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점차 남들과 거리를 두게 됩니다. 모두에게 친절하고 다정하지만, 때로는 차갑게 보이기도 하는 건 그러한 상처들 때문이에요.
'아, 나는 남들보다 감정이 섬세한 사람이구나.' 하며 스스로를 이해해 준다면 다행이지만, 보통은 '나만 왜 이렇게 예민할까?' 하며 자신을 비난하며 살아갑니다. 감정 기복도 심한 데다가 평범한 인간관계 속에서도 쉽게 상처를 받으니, 보통의 하루를 살아내는 것도 참 힘들게 느껴지니까요. 나만 유별나고 이상한 사람이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건 꼭 기억해 주세요. 섬세한 감정을 가진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그저 감정을 받아들이는 통로가 남들보다 넓게 태어난 것뿐이라는 걸. 세상을 더 깊이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타고난 거예요.
마음이 약한 게 아니라 더 세심한 것이고, 남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해 줄 수 있는 다정함을 품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 주세요.
섬세한 감정 세계를 지켜내며 마음도 다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꾸준한 연습이 필요합니다. 타인의 기분과 나의 기분을 분리하고, 내 탓부터 하는 습관을 알아차리고, 상대방의 감정보다도 나의 감정을 먼저 지켜내는 요령들, 내가 나로서 살아가는 방법들을 하나씩 익혀나가야 해요.
이 방법들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하나씩 다뤄보도록 할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