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은 시대를 비춘다
요즘 조현병은 GPT가 나옵니다
얼마 전 보안 관련 오픈톡방에서 조금 특이한 요청을 받았다.
"제 휴대폰, 노트북, 심지어 TV까지 전부 해킹당했어요. GPT가 내 생각을 읽고 있어요. 도와주세요."
처음엔 다들 웃어넘겼다. 하지만 그 사람은 진지했다.
나 역시 그런 이야기를 처음 접한 건 아니었다. 몇 년 전, 인터넷에서 우연히 마주친 블로그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전파로 감시당하고 있다"거나, "뇌 속에 누군가 말을 넣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을 현실에서 마주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위 사진처럼 "뇌해킹", "마인드컨트롤", "전파무기"에 대한 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단순한 공포나 음모론이 아니라, 이들은 정말로 자신이 공격당하고 있다고 믿는다.
오늘은 유튜브 쇼츠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접했다. 순간 궁금해졌다. 왜 조현병 환자들이 말하는 망상에는 공통적으로 "전파"라는 단어가 등장할까?
조현병의 망상은 시대를 반영한다.
과거 무당들이 정신질환을 귀신이나 신들림으로 해석했던 것처럼, 시대가 바뀌면서 귀신의 자리를 기술이 대신하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망상의 소재가 귀신이나 저주였다. 20세기에는 도청, 전화선 감청, 위성 감시가 주류였다. 그리고 현대에는 "전파"를 넘어 "AI"와 "GPT" 같은 단어들까지 등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무당의 역할도 정신질환의 해석자에서 콘텐츠 제공자나 엔터테이너로 바뀌어 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이유는 기술이 사람들의 생활 깊숙이 자리 잡으며 불확실하고 설명하기 힘든 현상들에 대한 자연스러운 해석 도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설명하기 어렵고 반박하기 힘든 현상들을 눈에 보이지 않는 기술 탓으로 돌리기에 매우 적합하기 때문이다.
전파는 실제로 존재하지만 일반인이 눈으로 볼 수도, 손으로 잡을 수도 없다. AI 역시 실제 존재하지만, 그 내부 동작 방식은 전문가가 아니면 알기 어렵다.
그리고 GPT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간다. GPT는 마치 사람처럼 질문에 답하고, 때로는 상대의 생각을 미리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알고리즘 역시 우리가 클릭하거나 봤던 콘텐츠를 기반으로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추천을 해준다. 그러니 "누가 내 생각을 읽는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친구와 했던 사소한 대화가 갑자기 유튜브 추천 영상으로 나타나면 "구글이 나를 도청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물론 대부분은 우연이나 확증편향일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망상이 종종 기술의 대중화보다 한 발 앞서 나타나기도 한다. 과거에도 도청 기술은 존재했지만, 일반 대중은 그것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기에 상상과 불안의 영역에 머물렀다. 지금은 기술이 일상화되면서, 그때의 상상이 현실로 옮겨온 듯한 감각을 준다.
결국 이 글은 조현병 환자들의 망상을 단순히 비웃거나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망상이란 단어 아래 숨어있는 현대인의 막연한 불안과 예민한 감각을 한 번쯤 진지하게 들여다보자는 취지다.
어쩌면 우리 모두 조금씩은 망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말한 내용이 갑자기 유튜브 광고로 나오거나, 생각만 했던 제품이 추천 영상으로 나타날 때, 사람들은 흔히 공감하며 웃는다.
중요한 건 이런 불확실한 느낌을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망상이 현실에 너무 깊게 스며들지 않도록 하는 태도, 어쩌면 그것이 현대인의 정신 건강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