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사랑하는 그녀는, 왜 사람들과 멀어졌을까

좋은 마음’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by 잡생각 수집가

고양이 셋을 임시 보호한 적이 있다. 한 번에 셋이 아니고, 하나씩.
처음엔 ‘입양되기 전까지만 보살피자’는 단순한 마음이었다.


그렇게 첫 번째 고양이는 몇 주 만에 좋은 집을 찾아갔다.
두 번째 고양이도 비교적 빨리, 예쁜 무늬와 단체의 중개 덕분에 입양되었다.

세 번째는 달랐다.
선호 되지 않았고, 작지도 않았다.
배에 하얀 털이 있는 ‘턱시도 고양이’였다. 귀엽지만, 입양 문의는 없었다.
“하얀 고양이가 잘 나가요.”
“어릴수록 입양이 잘 돼요.”


처음엔 씁쓸한 농담처럼 들렸던 말들이 점점 현실처럼 느껴졌다.
결국 우리는 그 고양이를 보내지 못하고,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벌써 십 년이 넘었다.




이 세 번째 고양이는 조금 특별했다.
앞선 두 마리는 정식 구조 단체를 통해 데려왔지만,
이 아이는 내가 봉사활동 중 알게 된 한 ‘캣맘’에게서 맡은 아이였다.

그분은 생명을 구조하고, 밥을 주고, 치료하고, 입양을 보내려 했다.


내가 본 그분은 무척 따뜻해 보였고, 똑바로 살아가려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좁은 빌라 한 채에 고양이와 개가 30마리 넘게 있었다.
정리되지 않은 케이지, 벽에 긁힌 자국, 묘한 냄새와 무거운 공기.
그 공간은 동물 보호소라기보다, 무너진 마음의 피난처처럼 보였다.


“병원비가 몇백만 원 밀려 있어요.”
그분은 무심하게 말했다. 본인의 병원비가 아니라, 구조 동물들의 진료비였다.
본인의 생계는 무너져 있었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하나둘 끊긴 상태였다.


선의가 무너진 자리에는, 책임만 남아 있었다.

raw?se=2025-06-15T01%3A06%3A32Z&sp=r&sv=2024-08-04&sr=b&scid=b96f6802-22bd-5fb8-a122-a4e5c7fb4dff&skoid=e9d2f8b1-028a-4cff-8eb1-d0e66fbefcca&sktid=a48cca56-e6da-484e-a814-9c849652bcb3&skt=2025-06-14T22%3A15%3A41Z&ske=2025-06-15T22%3A15%3A41Z&sks=b&skv=2024-08-04&sig=eoYVHW97FDnOrd1PxxcVlTSMBPdd%2BOV5b0nmR7v7rAE%3D

그 책임은 언제나 혼자만의 몫이었다.
누군가에겐 ‘좋은 사람’이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이기적인 사람’이었고,
남겨진 건 수십 마리의 동물들과, 점점 말라가는 사람 하나였다.


돌이켜보면 그 선의는, 어쩌면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조용한 생명들로 덮어보려 했는지도 모른다.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 그 손길은 따뜻했지만,
사람을 대할 때의 표정은 점점 얼어붙어 있었다.
그분은 동물에게 너무나 따뜻했지만, 사람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나는 그 마음이 아주 조금은 이해됐다.
삶이 외롭고, 세상이 차갑고, 사람에 지쳤을 때
말 없이 곁에 있어주는 고양이는 얼마나 따뜻한 존재인가.
그 고요한 교감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도 안다.


하지만, 그 선함이 과해지면,
그것은 ‘구조’가 아니라 ‘중독’이 되기도 한다.
스스로를 구원하고자 한 행동이,
결국 또 다른 생명을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걸…



그땐 몰랐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그 물음을 붙잡고 있다.
이렇게 과한 돌봄은 정말 선의였을까? 아니면 감당하지 못한 외로움이었을까?
고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갈망이 만든, 너무 아픈 자기 위안은 아니었을까?

그 답은 아직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는 안다.
좋은 마음은 충분조건이 아니다.
누군가를 살리는 마음이 되려, 누군가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걸.

고양이와 함께 산 지 10년이 넘었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서로에게 적응했고, 마음을 나눴다.
아직도 누군가는 “어쩌다 고양이를 키우게 됐어요?” 하고 묻는다.
나는 그냥 웃으며 대답한다.


“그냥… 보내지 못해서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밤토끼에서 인기 작가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