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를 결제하게 해주세요
티끌 모아 티끌은 틀렸다. 티끌을 열심히 모아 동산까지는 만들었다. 부동산을 만들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아직은 동산이다. 이 성취감이 묘하게 짜릿했다. 근데 이 개똥 투자 철학으로 급제동이 걸렸다. 나는 돈을 모아는 봤는데, 써보지는 못했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맛있게 먹는다고 했던가. 나는 지금 6개월째 아이패드를 고민하고 있다. 자린고비처럼 굴비를 천장에 매달아놓고 맨밥에 굴비만 뚫어져라 보는 셈이다.
타고나기를 여드름 한 번 나보지 않았던 피부가 다 뒤집어졌다. 스킨, 로션조차 돈주고 사기가 아까웠고, 선크림은 물놀이 갈 때나 바르는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피부과에 돈을 쓰고 나서야 온 몸에 바디로션을 덕지덕지 바르는 중이다. 외출할 때 선크림도 꼬박꼬박 바른다. 오랜만에 산 화장품 가격은 두손이 떨렸다.
대본을 쓰기로 했는데, 대본을 쓸 줄 모른다. 대충 끄적이며 쓰면 되지 않나. 대본에 들어가는 용어들이 생각나지 않으면 인터넷에 찾아보고 쓸 수 있지 않나. 정보의 바다에서 쓸 만한 정보를 건지지 못하고 생각했다. 수강료를 내고 수업을 듣자고. 가격을 알아보다 인터넷 창을 다 껐다.
회사 동기랑 술 한잔 하다가 매달 회사 복지카드에 돈이 들어오는데 잔액이 얼마 남았는지에 대해 얘기했다. 한푼도 안썼다. 모아서 아이패드 살라고. 판매한 책에 정산금이 입금되고 있다. 한푼도 안썼다. 아.이.패.드.살.라.고.
잔돈이 생기면 넣는 돼지저금통에 오만원권이 잔뜩이다. 아.이.패.드. 주식 배당금이 4월에 왕창 들어왔다. 한푼도 안썼다. 그놈의 아이패드 사겠다고. 이쯤되면 나도 내가 싫다.
동기가 사야지만 낫는다는 '아이패드 병'을 가만 듣더니 얘기한다. 스스로에 대한 투자도 있어야한다고.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에게 해주는 선물도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유튜브를 보다가 나처럼 짠테크를 열심히 하던 사람이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단다.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부를 쌓으면 내가 나의 한계점을 설정하게 된다고. 내 한달 생활비가 50만원이면, 나는 딱 50만원까지의 활동 범위가 생긴다. 가만 듣다가 무릎을 쳤다. 그래. 아이패드를 사자. 나한테 투자를 하자.
이러고 또 나는 사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