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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민지 Jul 17. 2023

꼰대의 날씨 흐림

사회초년생들은 입사와 함께 직장 분위기를 파악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체계를 갖춘 회사의 경우 신입사원들을 모아 오리엔테이션과 업무 교육을 진행한다. 하지만 소규모 회사는 이런 교육들을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 채용 규모도 워낙 작고, 회사에 대한 간단한 소개 정도로 교육을 마무리해야 한다. 왜냐하면 밀려있는 업무 과제가 있고, 교육 보다 업무 인수인계를 먼저 해줘야 회사를 떠나는 사람이 하루빨리 퇴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도 없는 회사가 많다.


‘닥눈삼’이라는 커뮤니티 용어가 있다. 커뮤니티에 처음 왔으면 닥치고 3일 동안은 눈치를 보며 분위기를 익히라는 것이다. 요즘은 닥눈삼을 ‘맑눈광’의 신입이 에어팟과 함께 어떠한 눈치도 보지 않고 일하는 분위기인 것처럼 매체에 나오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회초년생들은 직장 분위기를 파악하는 데에 애를 좀 많이 쓴다. 채용 시장이 좁아진 탓에 어렵게 회사에 취직한 신입사원들은 눈 밖에 나기는 무섭고, 그렇다고 너무 무난하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과 능력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조바심을 안고 출근을 하게 된다.

그렇게 출근한 사회초년생들은 그동안 초, 중, 고 그리고 대학교를 통해 학습한 눈치 레이더를 장착한다. 그동안 어려운 학업과 무적의 스펙들을 쌓으며 치열하게 살아왔지만, 사실 우리의 생존 본능은 ‘눈치’에 있다. 우리가 그간 여러 만난 ‘넌씨눈’ 친구들은 다 회사 생활을 잘하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신입사원의 9할은 좋은 성과를 쌓는 멋진 회사원이 될 확률보다 파티션 사이를 넘나드는 감정의 파도를 캐치하며 꼰대의 기분을 살피는 ‘기상캐스터’로 성장할 확률이 높다.


협업했던 많은 상사들이 있었지만 감정기복이 전혀 없거나, 수시로 변하던 분들은 특히 어려웠다. 극한의 밸런스 게임을 해보자면 ‘비밀의 숲’ 황시목과 서동재로 나눌 수 있겠다. 내 사수가 누구였으면 좋겠는가?


감정기복이 없는 상사들과 일 할 때는 하루의 흐름이 평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특별한 이슈가 없는 이상 그들의 톤과 기분은 내 업무 과정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진행사항을 보고해도 별다른 감정이 없고, 성과를 보고했을 때도 떨떠름하다.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로다. 네 일은 네 것이고, 내 일은 내 것이다. 아무런 피드백이 없는 상사와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하면 재미가 없다. 일이 잘 굴러가고 있는지, 잘못된 길로 흘러가는 것은 아닌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A안과 B안 중 어느 것이 좋은지를 물어도 미지근한 표정으로 반문한다. OO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렇게 나오니 이런 선배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당혹스럽다. 내가 제시한 의견이 모두 별로인가? 나랑 일 하는 게 재미가 없나? 내가 하는 이 일이 그렇게 가치 있는 일은 아닌가?


하루를 굿모닝으로 시작해도, 퇴근 때는 지구멸망이 온 듯한 표정이신 선배님들도 어렵다. 상큼하게 아침을 시작하더라도 곧 언제 폭풍이 올지 모르니 온 신경이 상사에게 가있다. 또는 반대로 아침부터 쑥대밭을 만들고 언제 그랬냐는 듯 상냥하게 다가오면 아침에 잠시 꿈을 꿨나 싶게 허무하다. 진행사항을 보고할 때도 그들의 날씨가 자칫 흐리거나, 비가 오는지를 살펴야 한다. 날씨와 상관없이 성과 보고를 해야 할 때는 날씨요정이 무지개라도 그려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브리핑해야 한다. 그들의 기분이 화창할 때 어려운 업무에 대해 말씀드리면 따뜻한 격려를 받을 수 있지만, 그들의 기분이 자칫 흐릴 때에는 쉬운 업무를 빨리 끝내서 꾸지람을 들어야 할 때도 있다. 회사 밖은 지옥이라는데 차라리 계속 비가 오는 지옥에서 살아가볼까 하는 용기가 생긴다.


‘감정습관‘이라는 말이 있다. 감정도 습관 같은 거라 감정을 느끼는 것을 연습하지 못하면 슬플 때 슬퍼하지 못하고, 기쁠 때 기뻐하지 못한다고 한다. 중년의 아버지들에게 많이 보이는 모습인데, 슬퍼도 속으로 울거나, 기쁜 일에도 크게 감흥을 못 느낀다. 그리고 긍정적인 감정을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긍정적인 감정을 느껴도 부정적인 감정이 습관이 된 사람의 경우 빠르게 다시 그 감정을 캐치해서 유지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기쁜 마음으로 의욕적으로 일 하다가도 이내 다시 기분이 가라앉거나 좌절하는 감정을 디폴트 값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는 도대체 얼마나 고된 환경에서 살았기에 감정을 억누르거나, 부정적인 감정이 더 편한 상태가 된 걸까?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라’는 유명한 말이 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다. 푹푹 찌는 여름, 쏟아지는 폭우를 뚫고 축축한 상태로 회사에 출근한 사람이 100% 긍정적인 마음으로 ‘좋은 아침~’하며 들어오는 것은 보통 멘탈이 아니다. 유 부장이 무한상사 사무실에 들어오기 바로 전 문 앞에서 입 꼬리를 한 껏 치켜올리며 출근하는 것도 긍정적인 감정을 잡기 위한 연습처럼 보인다. 웃는 연습을 하고 출근을 하는 한국 직장인은 몇이나 될까?


나는 요즘 감정이 없는 선배에 가까운 것 같다. 후배가 뭘 물어봐도 시큰둥하고, 멋지게 해낸 일에도 관심이 없다. 핑곗거리야 차고 넘치지만, 어쩌면 감정 기복이 심한 선배보다는 감정이 없는 선배 포지션이 더 쉽고 상대에게 노잼일 뿐 타격이 별로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후배들도 나와 협업하는 것이 퍽 재미가 없을 것이다. 그 점을 잘 알면서도 나는 어떠한 피드백도 주기가 두려워진다. 회사생활 동안 업무 피드백이 긍정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본 적이 사실 별로 없다. 어떤 선배는 하루종일 타인이 한 일에 대해서 부정적인 피드백을 당사자가 아닌 나에게 쏟아냈다. 일을 너무 대충 했다, 업무 마감 시기가 너무 촉박하다, 글에 가독성이 떨어진다 등을 업무일지 보다 더 빼곡하게 이야기하면 나는 또 시큰둥하게 받아친다. 나는 당신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닙니다. 나에게 쏟는다고 일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런 태도로 일관하는 것인데, 그 선배도 나에게 토해내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는 재미 없어진 것 같다. 어쩌면 우리는 피드백을 마치 샌드백처럼 생각하거나, 일방적이고도 감정적이고 주관적인 피드백에만 익숙해져 너, 나 할 것 없이 피드백하기를 주저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회사 생활에서 찾고자 하는 것은 일의 ‘진정성’이다. 파티션 너머로 오가는 분위기를 후배들이 체크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 업무에 대한 실수에는 ’일‘에 대한 피드백만 하고, ’사람‘에 대한 피드백은 하지 않는 것, 하이텐션으로 활기차게 굿모닝을 외칠 수는 없어도, 기운 빠지는 인사는 하지 않는 것, 그래서 우리의 협업을 방해하지 않고, ’가족‘같은 회사를 지양하고, ’일‘하는 회사가 되는 것. 그래서 모두의 노동의 가치가 진짜 ’가치‘가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이런 진정성을 바란다면 우리 꼰대님들이 이상주의자라 흉보겠지만, 사회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그래서 10년 안에는 많은 것들이 자동화로 대체되고, ‘진짜 그리고 제대로’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회사에 남아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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